[심층 인터뷰] ‘괴짜’ 감독 이정효 “전북 감독님 연봉이요? 알아냈죠 하하”

입력 2023.11.03 (14:45)


이번 시즌 K리그의 최고 히트상품은 누가 뭐래도 '정효 매직'을 앞세워 승격 첫 해 리그 3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광주FC의 이정효 감독일 것이다.

뛰어난 전술뿐 아니라 톡톡 튀는 언행으로 'K-모리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정효 감독을 향한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은 연일 뜨겁기만 하다.

리그 3경기가 남은 현재, 이정효 감독의 광주는 2위 포항을 3점 차로 바짝 추격하며 아시아 무대까지 넘볼 기세다.

단순한 돌풍이라고 말하기엔 '정효볼'은 K리그1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큼 꾸준했고, 강력했다.

한 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 인터뷰 섭외까지 한 달 넘게 걸린 이정효 감독의 감독실을 찾아 1시간 가까이 이정효의 축구 철학과 꿈, 그리고 이번 시즌 K리그를 뒤흔들었던 수많은 이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정효 감독과의 일문일답.

Q. 정효볼이 1부 무대에서도 통했다. 소감이 어떤가.
A. 사실 동계훈련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FC안양과 동계훈련 마지막 연습 경기를 하는 데 딱 느꼈죠. 우리 선수들은 성장했다. 더는 2부 선수가 아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봤죠. 전술적으로도 이해를 많이 한 것 같아서 적어도 강등은 안 들겠다 확신했죠. 제 유명세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써요. "제 축구를 이제 조금 알렸다." 정도? 이제 시작인 거죠. 한 51점 주고 싶네요.

Q. 도대체 정효볼이란 무엇인가?
A. 저는 공간을 소유하는 축구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공간을 소유하고 좋은 위치에 있으면 찬스가 많아지니깐요. 제 축구는 수시로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포메이션에 구애받지 않아요. 공을 소유하는 것보다 공간을 소유해서 공이 나에게 오게끔 하죠. 그만큼 상대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 하는 게 중요해요.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선 일단 많이 뛰어야 해요. 그런데 시즌이 지날수록 데이터상 선수들이 뛰는 양이 줄었어요. 점점 효율적으로 뛴다는 거고 제 축구를 이해한다는 거죠. 정효볼을 이해하는 시간은 선수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제가 인내심은 좋아요. 기다려줄 수 있어요.


Q. 이기도 있어도 왜 얼굴엔 화가 가득한가?
A. 제가 원하는 만큼, 준비한 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싫은 거예요. 몇 골을 넣든 상관없이 그게 싫어서 뭐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한테 또 선수들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아요.

Q.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데도, 선수들이 감독을 잘 따르는 비결이 뭔가?
A. 제가 훈련하고 사생활은 딱 구분 지어요. 골프도 같이 치고요. 공약 지킨 선수는 운동화도 사주고요. 경기에서 진 다음 날 골프칠때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안 좋은 거예요. 제가 그랬죠 "야 경기는 경기고 오늘은 즐겁게 치고 가자"라고 했죠. 득점 공약을 건 선수들이 목표 달성하면 비싼 운동화 사주기도 해요. 몇몇 선수들이 지금 또 사달라고 연락오는데 '리미티드 에디션' 그런 건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제가 무서울 것 같죠? 선수들이 저한테 얼마나 편하게 전화하는데요. 하루는 모 선수가 서점을 갔나 봐요. 제가 책을 좋아하니깐 저한테 다짜고짜 전화해서 "감독님 책 뭐 사요?"라고 묻길래, "OO야 전화를 했으면 인사부터 하고 용건을 말해야지"라고 알려줬 죠...애들이 그만큼 저를 편하게 생각해요.

Q. 스타플레이어를 지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있는데?
A. 제 은사님 중에 저를 향한 호칭을 바꿔주는 분이 있어요. "정효야", "이 감독", "이 선생". 저는 그 은사님을 정말 존경하죠. 예를 들어 정호연이 금메달을 따고 왔잖아요. 저는 호연이를 향한 제 대우가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위상에 맞게끔 저도 대우를 해야죠. 스타 선수들을 맡게 되더라도 그 선수들에 대한 대우를 해줘야죠. 대신 그 누가 되든 노력은 해야 돼요. 어떤 선수라도. 그게 없으면 제 팀엔 필요 없죠.


Q. 이번엔 이정효의 '말·말·말'에 관해 묻고 싶다. 가장 먼저 미디어 데이 당시 일명 'X 무시' 발언이 화제였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달라.
A. 지난해 감독 처음 부임하고 K리그2 개막 미디어데이 대기실에 딱 들어갔어요. 그런데 2부리그 몇몇 감독님들이 저를 쳐다도 안 보고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더라고요. 속으로 "어라 그렇지, 당신들이 보기엔 내가 감독도 아니겠지. 내가 보여줄게 1~3라운드 안에"라고 다짐했죠. 선배는 선배고 경기장에선 선후배가 어디 있어요. 그라운드 내에선 모두 다 경쟁자들인데, 되갚아 주자 생각했죠. 정말 리그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인사 하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죠.

Q. 올 시즌 K리그1 미디어데이는 어땠나?
A. 제가 어디를 가더라도 중앙에 앉아요. 그 날도 그랬거든요. 홍명보 감독, 김기동 감독님이 다 있는데 제가 정 가운데 자리에 딱 앉은 거죠. 그런데 최용수 전 강원 감독님이 슬쩍 저를 부르더니 "이 감독 미디어데이 몇 번째야?"라고 묻더라고요. "처음인데요"라고 했더니 "한 여섯 번은 와본 것 같아" 하시더라고요. 조심해야할 것 같아 여유가 넘친다, 자신감이 넘친다."라고 충고를 해주셨어요 하하.

Q. 기자회견 폭탄 발언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런 축구" 발언은 왜 나온 건가?
A. 3월 초에 FC서울이랑 광주 홈 개막전을 하는 데 그때 광주 팬 분들이 정말 많이 오셨어요. 그런데 결국 2대 0으로 지고 말았죠. 경기를 못 한 것도 아닌데 지니깐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기자회견에서 축구 이야기를 하기 싫더라고요. 문득 든 생각이 "왜 우리하고 하는 데 내려서서 축구를 하지?" 화가 많이 났죠. 그래서 "저런 축구를 하는 팀에 져서 기분이 안 좋다"라고 한거죠. 난리가 났더라고요. 속으로 "과했나?" 생각했는데, 난 우리 팀이 중요하지 상대방 신경 안쓰거든요 어차피 전쟁터인데, 굳이 뭐 다른 팀까지 신경써야 하나? 그때는 그랬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른 팀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안익수 전 감독님께 사과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광주를 잘 알렸네 내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뱉은 말이 있으니 책임져야 하잖아요.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낭떠러지로 밀어 넣었으니 저는 '저렇게' 축구하면 안 되잖아요, 계속 공격적으로 해야 하잖아요. "잘됐다 차라리"라고 생각하고 넘겼죠.

Q. "전북 페트레스쿠 감독 연봉 얼마 받아요?" 발언도 화제였는데?
A. 지난 9월 전북전도 잘 싸웠는데 1대 0으로 졌잖아요. 또 축구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라커룸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데 "전북 외국인 감독님은 도대체 얼마를 받길래 저런 좋은 선수를 가지고 내려설까?" 문뜩 궁금한 거예요. 에이 기자회견장가서 연봉이나 물어보자 하고 간 거죠. 하하. 알아보니깐 저보다 한 다섯 배 넘게 받던 데요? 제가 그 정도 받으면 상대 팀 무조건 가둬놓고 때려야죠. 저도 대신 받는 만큼 날 새서 공부해야죠. 사실 지금도 그만큼 일은 하고 있어요.

Q. 일각에선 예의가 없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경기장에 딱 들어갔는데, 저도 인사를 안 가고 나이 드신 상대 팀 어떤 감독님도 인사를 안 했어요. 누가 잘못한 걸까요? 제가 어리니깐 제가 잘못한 걸까요? 그 감독님도 저한테 인사를 안 온 거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정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여기는 일반 사회도 아니고 전쟁터잖아요. 누가 먼저 인사하고 안 하고가 어디 있어요. 존중하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되죠. 젊은 감독이 인사 안 한다고 잘나간다고 "X가지 없는 놈?" 잣대가 잘못된 거 같아요. 제가 한번은 인사 하지 않으려고 했었죠. 인사 안 가려고 했는데... 결국, 하긴 했어요.

Q. 이정효의 축구는 이제 시작일 것 같다. 앞으로의 야망은?
언어가 된다면 해외에 나가고 싶죠. 언어 공부를 하긴 하는데 쉽진 않더라고요. 일단 일본에 가고 싶죠. 바로 영국 나가면 어디서 아시아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감독이 와서 나를 가르쳐 하면서 무시하겠죠. 그러니깐 변방에서 일단 성과를 거두어야겠죠. 제가 선수들한테 더 큰 꿈을 꾸라고 하는데 저도 큰 꿈을 꾸면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 꿈도 있으니깐요.

Q. 광주FC 팬들은 이정효 감독이 떠나는 걸 벌써 두려워한다.
제가 몇 가지를 말씀드렸어요. 구단에. 먼저 훈련장 공사요. 그런데 공사가 아직도 안 들어갔더라고요. 지금 하지 않으면 내년, 후년 제가 아닌 다른 누가 와도 못한다 생각해요. 언제까지 나상호, 엄원상 좋은 선수들 팔 수만은 없잖아요. 계속 이 팀에 머무르게 하고 국가대표도 보내고 해외도 보내고, 또 나가고도 먼 훗날 다시 친정팀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줘야죠. 그러기 위해선 인프라가 갖춰져야 해요. 이런 것처럼 구단에서 기본적인, 또 적잖은 대우는 해줘야 해요. 맨땅에 헤딩하라 하면 저도 이마에서 피 나요. 저도 지치고 다치면 못 버티죠. 최소한의 버틸 수 있는 환경과 대우는 해줘야 한다는 거죠. 저도 그럼 여기서 더 해볼 생각이 있는 거죠.

Q. 마지막으로 이정효의 꿈은 무엇인가?
A. 이름값이 없어도, 저렇게 노력하고 발전하기 위해 또 성장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나도 프로 감독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젊은 지도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길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런 분들에게 롤모델이되고 싶은 거죠.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 어려운 곳에서 지도자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더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를 보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에게 힘을 더 주고 싶어요.

1시간가량의 인터뷰 내내 이정효 감독의 목소리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축구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다. 자신의 축구는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다는 이정효 감독. 10년 후 모습이 더 기대되는 한국 축구에 신선하고 독특한 괴짜 감독 한 명이 제대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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