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부부 몰래 녹음 정당”…‘아동학대’ 유죄 인정된 교사 발언은?

입력 2024.02.01 (14:11)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던 지난해 여름.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 씨 부부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은 뒤 몰래 녹음해 알게 된 아동학대 정황으로 특수교사 A 씨를 고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려지면서 또 한 차례 갑론을박이 일었습니다.

재판 중에는 실제로 2시간 30분 분량의 녹음파일 전체를 재생하기까지 했는데, 해를 넘겨 오늘(1일) 내려진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A 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녹음 파일 증거능력 인정…"녹음 행위에 정당한 이유 있어"

이번 선고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주 씨 부부가 교사 A 씨 모르게 수업 중 발언을 녹음한 파일이 아동학대의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특히 최근 대법원에서 비슷한 사례를 두고 "피해 아동의 부모가 몰래 녹음한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한다"며 "(학부모가 몰래 녹취한 녹음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도 대법원 판례처럼 주 씨 부부가 몰래 녹음한 A 씨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엔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녹음 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해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즉, 주 씨 부부가 녹음한 행위는 그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 겁니다.


종합하면 주 씨 아들이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어 학대를 직접 방어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CCTV 없이 소수의 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말의 형태로 이뤄지는 수업에 부모가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녹음이 불가피했다는 겁니다.

■발언 중 일부만 '유죄'…"부정적 표현 반복해 의미 전달"

녹음 파일이 증거로 인정됐다면, 그 파일에 담긴 여러 발언 중 주 씨 아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한 발언이 있었는지가 다음 쟁점입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 중 한 부분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너가 싫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반복적으로 전달한 부분입니다.


해당 발언은 '연음 읽기' 수업 중 나온 건데, 앞선 공판에서 A 씨 측 변호인은 "(피해 아동이) 읽기 교재에 전혀 없는 말을 하며 딴청을 피워 교사가 혼잣말한 것"이란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발언이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들"이라며 "그 의미와 피고인의 부정적 감정 상태가 그대로 피해자에게 전달돼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존재하고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다만 다른 발언들은 부적절하긴 해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해자에게 정신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거나 학대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체 수업이 교육적 목적으로 진행된 점, 실제 해당 발언들로 피해자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이 선처를 희망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 2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특수교사 측 "항소할 것"…주호민 "여전히 무거운 마음"

선고 이후 항소 의사를 밝힌 A 씨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선고 이후 항소 의사를 밝힌 A 씨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

선고 직후 A 씨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A 씨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몰래 녹음한 파일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면 교사와 학생 간 신뢰 관계가 무너진다"며 "이를 통해 특수교사들의 교육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발언 중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등의 부분은 무죄인데, 유죄로 인정된 발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아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역시 선고 이후 브리핑을 열고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아쉽다"며 유죄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현했습니다.

선고 이후 입장을 밝힌 웹툰 작가 주호민 씨선고 이후 입장을 밝힌 웹툰 작가 주호민 씨

논란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주호민 씨는 "자기 자식이 학대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 반갑거나 기쁘지 않고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라며 " 이 사건이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특수교사 선생님의 사정상 혼자 많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와 과밀 학급, 제도적 미비함 등이 겹쳐서 일어난 것"이라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주 씨는 오늘 저녁 9시 개인방송을 통해 자세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뉴스 이미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