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악기는 다채로운 가락과 소리로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표현해 왔습니다.
분단 이후, 남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국악기와 전통 음악을 계승해 오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북측에서 활발하게 계승되던 음악과 악기 중에는, 분단과 함께 남측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경우도 있었는데요.
함경도 지역에서 대중적으로 연주되던 ‘퉁소’라는 악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선 분단 70년 세월 속에서 퉁소를 통해 민족 문화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담아왔습니다.
[리포트]
흥겨운 부채춤 공연과, 풍물패의 사물놀이가 신명 나게 펼쳐집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이곳 민속촌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있었는데요.
삼삼오오 모인 초등학생들이 한껏 집중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살펴봅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퉁소라는 악기인데 단소하고 똑같은 재질로 만들었죠, 대나무로. 구멍을 보세요. 구멍이 하나, 둘, 셋, 넷. 퉁소도 하나, 둘, 셋, 넷. 취구(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를 볼까요. 취구는 똑같죠. 크기가 다를 뿐이에요."]
[김동훈/초등학생 : "(알고 있었어요? 퉁소가 뭔지?) 아니요. 오늘 처음 알았어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네."]
새롭게 알게 된 악기인 만큼, 궁금증도 커집니다.
[김동훈/초등학생 : "퉁소는 소리가 어떻게 나요?"]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퉁소 소리 (내는 방법은) 단소와 똑같아요. 소리 나죠?"]
학생들에게 퉁소 소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김동현/초등학생 : "퉁소는 단소보다 소리가 굵어요."]
[황서연/초등학생 : "뭔가 (소리가) 묵직하고 굵고 웅장한 느낌..."]
단소나 피리보다 크고 긴 이 악기는 퉁소입니다.
분단 이전에 함경도 지역에선 마을 행사 때마다 퉁소가 연주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악기였다고 하는데요.
함경도 퉁소 음률의 명맥을 잇는 명인의 공방으로 함께 떠나보실까요.
오랜 시간 퉁소를 만들고 연주해 온 동선본 선생과 함께 공방을 찾았습니다.
그가 한결같이 악기를 만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대나무를 선별하고 건조해, 악기로 다듬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 걸릴 만큼 퉁소 제작에는 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데요.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퉁소 몇 년 동안 만드셨어요?) 퉁소는 50년, 햇수로 벌써 50년 되네요."]
악기에 내는 이 작은 구멍들이 소리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지공(악기 구멍)의 간격에 따라서 음정의 차이가 있고요. 또 지공의 직경에 따라서 음높이가 결정돼요. 굉장히 민감한 악기라고 볼 수 있죠."]
완성된 악기가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박가해/초등학생 : "소리가 두껍고 음악적이었어요. 단소 배우듯이 퉁소도 학교에서 배워보고 싶어요."]
동선본 선생에게, 함경도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종종 함경도 지방의 너와집을 재연한 가옥에 들러본다고 하는데요.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함경도 지역은 워낙 날씨가 추운 지역이라 방에 들어가서 식사하기보다는 사람이 나와서 부엌에 와서 같이 음식을 나누는. (따뜻한 곳에서.) 네, 그렇죠."]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동 선생의 아버지는 1.4 후퇴 당시 남한에 정착했고, 고향의 문화를 기억하며 향수를 달랬다고 합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아버님이 자라면서 듣고 또 배웠던 것이 함경도 문화이다 보니까 아마 월남하고 나서도 저에게 퉁소란 악기를 쥐여주지 않았나..."]
동선본 선생은 열 살 무렵부터 함경도 실향민 1세대였던 스승들에게서 퉁소를 배우며 함경도 지역의 퉁소 음악을 섭렵해 나갔습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대표적으로 ‘북청사자놀음’에서 사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퉁소란 악기죠. 함경도 민요 ‘돈돌라리’에도 퉁소가 많이 연주되고 그 외에도 ‘영산길주 도드름’, 그다음에 ‘(검무)삼현육각 기악곡’이 있고..."]
특히 함경도 지역에서 명절이나 행사 때마다 연주됐던 '신아우'는 대표적인 퉁소 기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퉁소 신아우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남한의 시나위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함경남도는 방언으로 ‘신아우’라고 해요. 보통 독주 내지는 합주 형태로 해서 북과 징이 반주 악기로 해서 연주됐는데요.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음악들이 거의 매몰되고 잊어버리게 됐죠."]
동선본 선생은 분단 이후, 조금씩 잊혀져 가던 퉁소 신아우를 재현하기 위해 연주자로 활동하며 연구를 지속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2017년 퉁소 신아우가 함경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동 선생도 퉁소 신아우 '보유자'가 됐습니다.
그가 본 적 없는 아버지의 고향을 그리며 퉁소 신아우를 불어봅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북녘의 음율 퉁소 신아우가 2017년 함경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는 동선본 선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퉁소와 함께 이들이 꿈꾸는 미래 무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늦은 오후 시간이 되자, 명인이 공방 문을 닫고 특별한 장소로 갈 채비를 합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선생님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오늘 일정 끝내고 매주 한 번씩 우리 퉁소 신아우 보존회 회원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장소로 갑니다."]
퉁소 신아우 보존과 복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회원들.
함경도 민요 연주가 한창인 연습실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습니다.
한평생 퉁소 신아우의 북 반주를 맡아온 동선백 선생을 비롯해 20년째 먼 길을 달려온다는 병인 씨의 열정은 놀라웠습니다.
[정병인/퉁소 신아우 보존회 회원 : "(오늘 어디에서 오셨어요?) 진해에서 왔습니다. 퉁소 소리는 여느 악기와 달리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나서 그 소리에 매료가 됐죠."]
7년째 퉁소를 배우는 가족도 함께 했습니다.
특히, 딸 채윤 양의 수준급 연주 실력은 가족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민숙/퉁소 신아우 보존회 회원 : "퉁소로 지역에 있는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해서 퉁소로도 좋은 상도 많이 받고 그렇게 인정을 받아서 감개무량합니다."]
이들에게 스승은 50여 년간 갈고 닦은 퉁소 연주법을 아낌없이 전수합니다.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호흡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연주의 질이 달라집니다. 제가 선곡을 할 테니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분단 이전, 함경도의 마당을 울린 퉁소 소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는 동선본 선생.
[동선본/‘퉁소 신아우’ 예능보유자 : "남북 문화가 오고 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고 또한 퉁소가 북청 내지는 함경도에서 (연주됐던) 분단 이전 음악의 경지까지 올 수 있도록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고요."]
퉁소로 통하고 퉁소와 함께 하며, 한민족의 음악을 한마음으로 지키는 이들과 우리 민족의 선율이, 오늘도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