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순수한 10살이면 성적 수치심 못 느껴”…‘온라인 그루밍’ 가해자 상고이유서

입력 2024.09.12 (06:02)

수정 2024.09.12 (09:10)


10살 여자아이를 상대로 여러 종류의 사진을 요구하고 결혼 서약까지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성인 남성 A 씨.

A 씨는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동학대만 유죄로 인정한 1심과 달리, 항소심은 성착취 목적 대화까지 인정하며 형을 늘렸습니다.

이에 A 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KBS는 해당 남성의 상고이유서를 입수했습니다.

■ "'성 인식' 없기에…표현 들어도 '성적인 것' 연결 못 해"

A 씨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사건이 발생한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에 대한 무지한 상태에서 상식에 반하는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에 대해 A 씨 측은 "나이 어린 이용자들이 주로 가입하고 활동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4~5세 아이들이 소꿉놀이로 '남편' '여보'이라는 표현을 쓰며 '뽀뽀'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 부분을 재구성한 자료입니다.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 부분을 재구성한 자료입니다.

A 씨 측은 "원심은 피해자가 성에 대한 인식 등이 미숙한 아동이라고 봤는데, 어떻게 '뽀뽀' 등의 표현을 듣고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피해자는 '성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관련 표현을 듣더라도 곧바로 '성적인 것'으로 연결 지을 수 없다"면서 "10살을 넘어서 성적인 것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이나 인식이 없다면, 즉 그 나이에 맞는 순수함을 갖고 있다면,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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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영주권 걸려 있어' '할아버지 6.25 참전용사' 호소

A 씨는 자신의 사정을 대법원에 호소했습니다.

A 씨 측은 상고이유서에 "피고인(A 씨)은 생활과 생업 근거지 모두 미국에 두고 있다"면서 "영주권 나아가 시민권 심사 과정에서 성범죄 전과 여부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피고인의 전 인생이 모두 걸려 있는 사건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2년 반에 걸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미국의 생활 기반이 거의 무너졌으며, 재기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조부가 6.25 참전 용사로서 화랑무공훈장 유공자라는 점 등도 고려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A 씨 측은 이런 이유 등으로 성착취 목적 대화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 환송해 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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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가족 "상고이유서 제출에 분개"

피해자 가족은 대법원에 상고한 사실과 이 같은 내용의 상고이유서를 접하고 분개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KBS 취재진에 "저희 가족은 그 사건 이후로 모든 삶이 무너지고,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피해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구체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대화 등에 대해 경계하게 되고, 피해 아이도 매사 움츠러드는 등 소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혹여나 우리 아이에게 또 다른 범죄가 있을까 항상 불안해하는 상황이다"면서 "(피해자는)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는 폐쇄적인 상황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남성 A 씨에 대해 피해자 아버지는 "(항소심) 판결문에 아동 성에 대해 착취 목적으로 접근했다고 명백히 나왔다"면서 "1심과 항소심에서 반성한다면서 본인의 알량한 인생만 보고 상고한다는 자체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A 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 주요 내용(지난 6월)A 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 주요 내용(지난 6월)

이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의 근본 취지는 아직 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으로 알고 있다"면서 "성관계 등 노골적인 요구가 없을지라도, 입을 벌린 구강 사진과 '목소리를 들으면 흥분된다'면서 녹음을 요구하는 내용 등은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 전문가 "10살 아동에게 결혼 서약, 상식적으로 맞나?"

온라인그루밍과 스토킹 등 가해자 연구를 수행한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고이유서 등 A 씨 항변과 주장의 타당성 등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요구한 '결혼 서약'에 주목하며, A 씨 대화가 성착취 목적 대화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A 씨는 성인인데 피해자 10살 어린이와 상식적으로 결혼 서약을 할 수 있나? 10살은 결혼을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나이다"면서 "결혼을 서약한 것이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포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결혼 서약과 '서로를 소유한다' 식의 대화 등이 굉장히 통제적이고 주종 관계로 나아가는 조짐이 보인다"면서 "이렇게 어른이 과도하게 설정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대화를 유도해 나가는 과정이 온라인 그루머에게 많이 나타나는 패턴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 해당 법에서 말하는'성적인 것'은 굉장히 포괄적인 '성적인 것'을 의미하는 거다"면서 "피해자에게 '존댓말을 쓸 때 흥분돼' 등도 일종의 성적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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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당시 38살이던 A 씨는 10살 여자아이에게 네이버 메타버스 제페토를 통해 결혼 서약과 여러 사진 등을 요구했고, 이후 수사 끝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해 10월 1심은 아동학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올해 6월 항소심은 성착취 목적 대화까지 인정된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가 상고함에 따라 대법원의 판단이 남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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