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일) 오전 국무위원 및 대통령실 참모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을 찾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1일) 헌법재판관 임명 발표에 항의하는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월권했다는 것을 알지만 재판관은 임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거로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은 새해 첫날 수석비서관 이상 전원 사의 표명으로 재판관 임명에 항의했습니다. 결국 정진석 비서실장 사표는 수리됐는데, 이 과정에서 최상목 권한대행과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기싸움도 벌어졌습니다.
■방통위원장 대행·노동부 장관·법제처장·권익위원장 등 "재판관 임명 반대"회의에 배석했던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부위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국무회의에서 저와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헌법재판관 임명 발표에 반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최 대행이 '제가 월권한 것은 맞다'며 '항공 사고만 아니었다면, 사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성도 높아졌습니다. 김태규 방송위원장 대행은 "이후에도 나와 김문수 장관이 계속 항의하니
최 대행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느냐. 회의록에 기록이 되고 있다'고 말했고, 나도 '기록이 되는 걸 알고 말씀드 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가 사직서를 제출할 테니, 권한대행도 사직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국무회의 종료 후 열린 비공식 간담회에선 법제처장 등 더 많은 참석자들이 반대했고, 최 대행은 이같은 얘기를 듣다가 중간에 퇴장했다. 같이 따라나선 참석자들이 거의 없었는데, 다들 앉은 자리에서 통보받은 상황에 불만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께 유철환 권익위원장도 반대 뜻을 밝힌 거로 확인됐는데, 두 사람은 모두 윤 대통령 서울대 법대 동기입니다.
그러나 다른 국무회의 참석자는
"대다수가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몇 몇 참석자가 큰 소리를 내며 항의했다"며
"최 대행이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정이며,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KBS에 전했습니다.
실제로 최 대행이 어제 오후 4시 반 국무회의 시작 직후 헌법재판관 임명을 전격 발표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던 국무위원들은 거의 없었던 거로 전해집니다.
발언문 초안에도 재판관 임명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던 거로 알려졌습니다.
당일 오후부터 최 대행이 재판관 임명을 깜짝 발표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대통령실과 총리실, 기재부 모두 '들어본 적 없다', '설마 바로 임명하겠느냐'는 반응들이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오늘(1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 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강한 유감"…'3실장'·수석비서관 전원 사의표명
대통령실은 강하게 반발 중입니다.
새해 첫날인 오늘(1일) 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최 대행에게 사의를 밝혔습니다.
최 대행이 사의를 반려했지만, 정진석 비서실장은 "최 대행에게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사표가 수리된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직을 내려놨습니다.
다른 참모들도 동반 사직을 예고하는 거로 알려지는 등, 이미 '기능부전'이었던 대통령실이 최 대행의 보좌에서 사실상 손을 떼는 수순입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참모들은 국무회의 직전까지도 "성급한 임명은 안 된다.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해달라"며 재판관 임명에 반대했던 거로 전해졌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 대행이 재판관 임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상의나 사전 통보는 일절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모를까, 이렇게 예민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도 되느냐"며 최 대행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당일 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말한 참모도 있었습니다.
"국무총리였던 한덕수 권한대행도 행사하지 않은 권한을, 최 대행이 쓰는 건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대통령실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반발은 재판관이 충원되면 탄핵 심판에 속도가 붙고,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입니다.
기존 6인 체제라면 재판관 전원 찬성이 있어야만 탄핵이 확정되지만, 재판관 충원 이후에는 8명 중 6명만 찬성해도 탄핵 인용이 가능합니다.
어제(12월 31일) 윤 대통령 한남동 관저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대통령실이 믿는 구석은 '보수 결집'…"탄핵 반대도 30%"윤 대통령 권한정지 이후 말을 아끼던 대통령실이 재판관 문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보수층 결집'이 꼽힙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과 탄핵심판 본격화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이 뚜렷하게 결집하는 현상을 주시 중입니다.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70% 전후로 집계되는 중인데, 대통령실은 탄핵 반대·보류로 응답한 사람들에 주목하는 겁니다.
대통령실은 최근 내부 여론조사에선 탄핵 반대 여론이 30% 중반을 기록했단 결과값을 받아본 거로도 전해집니다.
윤 대통령 측이 모든 소환요구와 압수수색 등에 불응하며 여론전에 나서고 있는데다 또다시 탄핵으로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친윤'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오늘(1일) 서울 명동거리 환전소 현황판에 표시된 원-달러 환율. ■시장 불안 원인으로 '재판관 임명 보류' 지목한 최상목…"국정안정 전력"최 대행의 '월권했다'는 발언도, 보수층 주장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고 밝혀왔고, 지난해 12월 30일에는 헌법재판관들이 "헌재의 조속한 완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은 헌법재판관 임명과 같은 '대통령 고유 권한'은 권한대행이 대신 행사할 수 없다며 탄핵 여부가 확정되기 전엔 재판관을 임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습니다.여당은 이같은 이유로 헌법재판관 후보를 추천해놓고도 청문회에는 불참했습니다.한덕수 국무총리도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는 자제돼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이같은 권한을 행사하려면 여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26일 재판관 임명을 보류했습니다.불안정한 시기에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며 탄핵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재판관을 임명해선 안 된다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압박이 거셌던 거로 알려졌습니다.그럼에도 최 권한대행은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도 재판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거로 보입니다.
최 대행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의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 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종식시켜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 차단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임명을 결정한 이유로 밝혔습니다.
'계엄 사태'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를 시장 불안의 원인으로 명확히 지목한 겁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오늘(1일)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최영길 해병대 2사단장(왼쪽)의 안내를 받고 있다. 최 권한대행 오른쪽은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다만 여야는 각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공세 수위는 조절 중입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재판관 임명 직후 "우리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럽고 대단히 유감"이라고 반발했지만, 오늘 "대통령실과 총리실, 내각 모두 국정 안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며 용산 참모진 사의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연이틀 비판하면서도, 보수 진영에 또다른 균열이 생기는 상황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풀이됩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재판관 3명 중 2명만 임명한 결정이 "위헌"이라고 반발하면서도, 최 대행의 탄핵은 거론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정치적 난제를 일부 풀어낸 최 대행은, 신년사를 통해 "정부는 국민 여러분이 안심하실 수 있도록 국방, 외교,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안정된 국정운영에 전력을 다하겠다"며 향후 경제와 안보 등 정책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