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30%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으며, 2030년에는 그 수가 2천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제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사랑을 받는 만큼, 쉽게 버려지기도 합니다.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 동물이 생겨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런 가운데 특별한 봉사단이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았습니다.
남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탈북민들이 바로 그들인데요.
단순한 봉사를 넘어, 생명을 돌보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며 유기동물과 마음을 나누는 현장에 장예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86명의 봉사 단원들이 모인 남북통합문화센터.
빗길을 뚫고 현장으로 달려간 단원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합니다.
[백우주/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오늘 어떤 봉사 하러 오셨어요?) 유기 동물 관련해서 동물들을 씻기고 또 산책로 정비하고 이런 활동을 하러 왔습니다."]
[이민아/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대구에서 오늘 첫차 타고 올라왔습니다. 남북 주민들이 같이 모여서 봉사한다는 게 뜻깊다고 생각해서 멀리서 오게 됐어요."]
강아지들도 꼬리를 흔들며 낯선 손님들을 반깁니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하는 봉사단.
든든하게 배를 채우며 활동에 나설 채비를 하는데요.
[문도준/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오늘 밥 많이 먹고 열심히 할 거예요. (열심히 하고 가요.) 네. 아빠 나 TV에 나왔어."]
황해도 출신 탈북민 조영대 씨에게 이런 시간은 무척이나 뜻깊다고 합니다.
[조영대/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탈북민 : "서로가 남을 위해서 배려하는 게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북한에서는) 타인을 위해 챙겨준다는 게 드물어요."]
봉사활동은 단순한 ’도움주기‘를 넘어, 남북의 삶을 이해하고 배워가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김보연/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장 : "북한이탈주민 같은 경우에는 반려 문화가 익숙하지 않으실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바로 갖고, (남한에) 처음 오셨을 때 가족도 없고 지인도 없었을 때, 오히려 유기견에게 정서적으로 돌봄을 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약 1,500만 명.
주위에 4명 중 1명이 동물과 함께 사는 남녘의 문화는 탈북민들에게 낯설기만 한데요.
반려동물이라는 말조차 어색한 이들에게 유기견 봉사활동은 이곳에 정착하는데 또 다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단원들이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안전 수칙과 주의사항을 귀담아듣습니다.
["다치거나 그러면 안 되니까..."]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전달받습니다.
[고경희/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선생님 이건 어떤 물품이에요?) 실내 청소하는 거 관련해서 손 다치지 말라고 비닐장갑하고 일반 장갑들입니다."]
방진복과 마스크, 상비약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에는 먼저 산책로 정비에 나섭니다.
[장효성/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생각보다 많네요. 숨어있는 쓰레기들이 많아요."]
엉킨 넝쿨도 척척, 실타래 풀 듯 정리해 나가는데요.
["저희가 봉사도 전투적으로 합니다."]
궂은일 앞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하영/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탈북민 : "저희가 봉사하면서 만난 인연이 좋아서 부르는 겁니다."]
단원들의 손길이 더해질수록, 주변 환경이 한층 쾌적해지는데요.
이러한 활동이 보호소에는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임장춘/(사)한국유기동물복지협회 대표 : "탈북민들이 작년에도 와서 해주셨어요. 그런데 너무 진짜 열심히 해주시고 해서 참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고맙고요. 이렇게 해주면 유기 동물을 더 많이 돌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탈북민들은 봉사를 통해 반려동물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해나갔는데요.
20여 년 전, 함경북도에서 한국에 온 미영 씨도 처음엔 동물과 함께하는 문화가 낯설기만 했다고 합니다.
[강미영/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탈북민 : "그쪽은 거의 식용으로 많이 키우잖아요. 아니면 식용으로 키웠다가 파는 분들도 있고 그런 식으로 하고요. 한국에 와서 반려동물 문화를 접했거든요."]
한국에 정착하는 내내 미영 씨의 곁을 지켜주었다는 반려견 삼백이.
[강미영/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외롭고 고향이 생각나고 부모님 보고 싶을 때 항상 강아지하고 같이 한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울고불고..."]
18년간 함께 살아온 삼백이는 이제 미영 씨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 되었습니다.
["개는 저한테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이 되어버린 거예요."]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유기 동물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보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려견들과 함께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따뜻한 위안까지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단원들은 강아지 훈련 과정에 참여하며 동물과의 소통을 배워나갔습니다.
["‘앉아’ 해야지. 먹이로 ‘앉아’ 해. (앉아.) 그렇지."]
훈련사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강아지들이 움직일 때마다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오고,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에 대한 의미를 느끼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한 바퀴, 두 바퀴, 한 바퀴 더."]
길거리나 학대 현장에서 구조된 유기견들을 깨끗이 단장하는 목욕 시간입니다.
[주시현/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목욕시키고 나서 말리고 있어요."]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모습에 마음이 전달됩니다.
["이름이 안 정해졌어요. 온 지 얼마 안 돼서."]
천천히 물을 적시고, 놀라지 않도록 살며시 다가가는 단원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살아온 유기견에게 따뜻한 손길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 듯했는데요.
[이보현/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너무 마음이 아파요. 마음이 아픈데 애들이 깨끗해지면 좋으니까."]
사람의 품 안에 살포시 안긴 모습에선 그간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너무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게 느껴져요"]
봉사단원들은 유기견들이 하루빨리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습니다.
["얘는 태풍이고요.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안겨서 목욕을 잘하는데 아마 가족을 만나면 더 착하고 좋은 강아지가 되지 않을까. 빨리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봉사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가고 있다는 탈북민 지희 씨에게도, 이 시간은 매우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한지희/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탈북민 : "몸이 아파도 봉사할 때만큼은 마음이 너무 건강해지는 그런 느낌이고 실제로 작년까지도 힘들었는데 올해는 점점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
짧지만 깊었던 만남은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이 됐습니다.
[한지희/남북통합문화센터 자원봉사단 : "엄마, 아빠 만나서 우리 마음까지 치유하면서 살자. 아프지마."]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명을 돌보고, 마음을 나눈 하루.
낯설었던 문화는 이해로, 어색했던 거리는 따뜻한 공감으로 조금씩 채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