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 씨

입력 2006.07.20 (23:19) 수정 2006.07.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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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귀국해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
"어린이들에게 널리 불리는 노래 되길"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독도는 우리땅~'.('독도는 우리땅')
1982년 작곡돼 전 국민적인 노래가 된 '독도는 우리땅'의 작곡가 박인호(52. 본명 박문영)씨가 24년 만에 '신 독도는 우리땅'을 발표했다. 미국서 거주중인 그는 가수 마법전설이 부른 록 비트의 '신 독도는 우리땅' 작업을 위해 2개월 전 귀국했다.
박 씨는 '논두렁 밭두렁' 창단 멤버이자 1977년 TBC에 입사, KBS와 SBS를 거친 라디오 PD 겸 코미디 방송 작가 출신. 작곡가로서 이력도 화려하다. 1989년 발표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광복절 경축식 때마다 부르는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비롯해 '도요새의 비밀' '김치주제가' '짜라빠빠'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1998년 IMF 당시 SBS에서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 가 현재 가족과 함께 텍사스에서 살고 있다. 20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반백의 박 씨를 만났다. 그가 왜, 지금 사비까지 털어 이 곡을 만들었는지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신독도는 우리땅'은 정신무장 위한 노래
박 씨는 독도를 "자신의 업보"라고 했다. 또 "아들 딸"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홀로 '독도 십자군 운동'을 벌였어요.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내용의 e-메일을 백악관에 꾸준히 보내기도 했죠.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며 제가 뿌린 씨를 제 손으로 거두고 싶었어요. 이 노래는 '독도는 우리땅'의 완결편입니다."
'신 독도는 우리땅'은 노랫말이 직설적이고 일본어 가사도 담겨 눈길을 끈다.
'사천팔백만 이천삼백만 남북의 연합군(국민을 의미)/최후의 한 사람까지 일어나리라/우리 땅은 우리땅 우리가 지킨다/완전무장 정신통일 근무중 이상무/(중략)도쿠도와 강고쿠노 료오도 데스(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도오카 도오카(제발 제발) 우기지 좀 마~'('신 독도는 우리땅')

'신 독도는 우리땅' 악보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씨가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사진=연합뉴스]

록 스타일의 더욱 빠르고 박력 있는 노래로 완성된 데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ㆍ일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핵으로 무장할 경우 독도는 정말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이에 대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정신 무장'입니다. 우리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 7개월에 걸쳐 이 곡을 만들었어요. 이 노래로 한국인의 머리 속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박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자아정체성을 위한 정신 개조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 가사에 대해 노래를 부른 마법전설은 "가슴이 뭉클하고 통쾌했다. '독도는 우리땅'을 우리끼리 부르면 뭐하느냐. 일본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이번 노래는 일본인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으니 속 시원하다. 돈을 벌 목적으로 부르고 만든 것이 아니니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씨 역시 어린이들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년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강의를 다녔다는 그는 이 노래 역시 유치원, 초등학생이 줄줄 외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의 소프트웨어를 깔아줘야 되요. 이런 노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신 무장을 하는 토대를 마련해 줄 겁니다."
◇탄생에서 히트까지 고초 겪은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의 탄생과 히트는 우연이었다. 박 씨가 KBS 라디오 PD 겸 코미디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당시 김웅래 PD가 연출한 '유머 일번지'에서 작가로 일한 그는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어 프로그램에서 포졸복을 입은 정광태, 임하룡, 심형래, 김학래에게 부르게 했다. 머리 속에 있던 한국의 정신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
미국에 체류중인 작곡가 박인호씨가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를 위해 귀국했다.[사진=연합뉴스]

"전지에 쓴 가사지를 녹화가 끝난 후 휴지통에 버렸어요. 그때 정광태가 노래가 재미있다며 휴지통에서 꺼내 가사를 베끼더군요. 잊어 버렸는데 정광태가 이 노래를 녹음했나 봐요. 신형원의 '불씨'가 담긴 옴니버스 LP 판 A 면에 2분 길이가 모자랐데요. 그래서 맨 끝 트랙에 이 노래를 수록했는데 히트가 됐죠. 정광태는 당시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어요. 전 곡을 준 적이 없는데 정광태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웃음)
처음 이 노래는 '우리 땅을 왜 우리 땅이라고 하냐'며 대중에게 비웃음을 당했고 가사 내용 때문에 정부로부터 금지곡이 됐다. 여기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독도는 우리땅' 출시 후 히트하려던 즈음, KBS에서 방송 금지가 됐어요. 1주일 후 당시 전두환 정권 실세인 허 모 장관이 정광태와 함께 저를 청와대 인근으로 부르더군요. '각하께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애로 사항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정광태가 'KBS에서 방송을 금지했다'고 하자 허 장관은 바로 어딘가로 3~4통의 전화를 돌렸어요.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프로그램 전체가 이 노래로 도배됐더군요. 여의도까지 오는데 10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 이 노래는 당시 일본과의 외교 관계 때문에 다시 금지곡이 됐다.
'신 독도는 우리땅'을 쓰며 박 씨의 가슴 한 켠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독도 의용수비대 고(故) 홍순칠 대장이다. 그는 '독도는 우리땅' 보급을 위해 앞장 선 홍 대장은 국가기관에 의해 노래 보급에 대한 중지 압력을 받았다"며 "고초를 당한 후 사망해 무척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8월 초 출국한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 "영화 '한반도'에 감동받았다. 강우석 감독과 한번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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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 씨
    • 입력 2006-07-20 23:19:16
    • 수정2006-07-21 08:44:49
    연합뉴스
미국서 귀국해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 "어린이들에게 널리 불리는 노래 되길"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독도는 우리땅~'.('독도는 우리땅') 1982년 작곡돼 전 국민적인 노래가 된 '독도는 우리땅'의 작곡가 박인호(52. 본명 박문영)씨가 24년 만에 '신 독도는 우리땅'을 발표했다. 미국서 거주중인 그는 가수 마법전설이 부른 록 비트의 '신 독도는 우리땅' 작업을 위해 2개월 전 귀국했다. 박 씨는 '논두렁 밭두렁' 창단 멤버이자 1977년 TBC에 입사, KBS와 SBS를 거친 라디오 PD 겸 코미디 방송 작가 출신. 작곡가로서 이력도 화려하다. 1989년 발표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광복절 경축식 때마다 부르는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비롯해 '도요새의 비밀' '김치주제가' '짜라빠빠'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1998년 IMF 당시 SBS에서 해직된 후 미국으로 이민 가 현재 가족과 함께 텍사스에서 살고 있다. 20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반백의 박 씨를 만났다. 그가 왜, 지금 사비까지 털어 이 곡을 만들었는지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신독도는 우리땅'은 정신무장 위한 노래 박 씨는 독도를 "자신의 업보"라고 했다. 또 "아들 딸"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홀로 '독도 십자군 운동'을 벌였어요.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내용의 e-메일을 백악관에 꾸준히 보내기도 했죠.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며 제가 뿌린 씨를 제 손으로 거두고 싶었어요. 이 노래는 '독도는 우리땅'의 완결편입니다." '신 독도는 우리땅'은 노랫말이 직설적이고 일본어 가사도 담겨 눈길을 끈다. '사천팔백만 이천삼백만 남북의 연합군(국민을 의미)/최후의 한 사람까지 일어나리라/우리 땅은 우리땅 우리가 지킨다/완전무장 정신통일 근무중 이상무/(중략)도쿠도와 강고쿠노 료오도 데스(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도오카 도오카(제발 제발) 우기지 좀 마~'('신 독도는 우리땅')
'신 독도는 우리땅' 악보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씨가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사진=연합뉴스]
록 스타일의 더욱 빠르고 박력 있는 노래로 완성된 데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는 한ㆍ일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핵으로 무장할 경우 독도는 정말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이에 대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정신 무장'입니다. 우리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 7개월에 걸쳐 이 곡을 만들었어요. 이 노래로 한국인의 머리 속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박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자아정체성을 위한 정신 개조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 가사에 대해 노래를 부른 마법전설은 "가슴이 뭉클하고 통쾌했다. '독도는 우리땅'을 우리끼리 부르면 뭐하느냐. 일본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이번 노래는 일본인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으니 속 시원하다. 돈을 벌 목적으로 부르고 만든 것이 아니니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씨 역시 어린이들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년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강의를 다녔다는 그는 이 노래 역시 유치원, 초등학생이 줄줄 외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의 소프트웨어를 깔아줘야 되요. 이런 노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신 무장을 하는 토대를 마련해 줄 겁니다." ◇탄생에서 히트까지 고초 겪은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의 탄생과 히트는 우연이었다. 박 씨가 KBS 라디오 PD 겸 코미디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당시 김웅래 PD가 연출한 '유머 일번지'에서 작가로 일한 그는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어 프로그램에서 포졸복을 입은 정광태, 임하룡, 심형래, 김학래에게 부르게 했다. 머리 속에 있던 한국의 정신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박인호
미국에 체류중인 작곡가 박인호씨가 '신 독도는 우리땅' 발표를 위해 귀국했다.[사진=연합뉴스]
"전지에 쓴 가사지를 녹화가 끝난 후 휴지통에 버렸어요. 그때 정광태가 노래가 재미있다며 휴지통에서 꺼내 가사를 베끼더군요. 잊어 버렸는데 정광태가 이 노래를 녹음했나 봐요. 신형원의 '불씨'가 담긴 옴니버스 LP 판 A 면에 2분 길이가 모자랐데요. 그래서 맨 끝 트랙에 이 노래를 수록했는데 히트가 됐죠. 정광태는 당시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어요. 전 곡을 준 적이 없는데 정광태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웃음) 처음 이 노래는 '우리 땅을 왜 우리 땅이라고 하냐'며 대중에게 비웃음을 당했고 가사 내용 때문에 정부로부터 금지곡이 됐다. 여기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독도는 우리땅' 출시 후 히트하려던 즈음, KBS에서 방송 금지가 됐어요. 1주일 후 당시 전두환 정권 실세인 허 모 장관이 정광태와 함께 저를 청와대 인근으로 부르더군요. '각하께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애로 사항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정광태가 'KBS에서 방송을 금지했다'고 하자 허 장관은 바로 어딘가로 3~4통의 전화를 돌렸어요.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프로그램 전체가 이 노래로 도배됐더군요. 여의도까지 오는데 10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 이 노래는 당시 일본과의 외교 관계 때문에 다시 금지곡이 됐다. '신 독도는 우리땅'을 쓰며 박 씨의 가슴 한 켠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독도 의용수비대 고(故) 홍순칠 대장이다. 그는 '독도는 우리땅' 보급을 위해 앞장 선 홍 대장은 국가기관에 의해 노래 보급에 대한 중지 압력을 받았다"며 "고초를 당한 후 사망해 무척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8월 초 출국한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 "영화 '한반도'에 감동받았다. 강우석 감독과 한번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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