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갈 수 없는 고향, 차고시안의 눈물

입력 2007.01.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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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에 의해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양 한 가운데 있는 섬, 지금은 미군의 최대 전략 요충으로 변한 디에고 가르시아에 살던 원주민, 차고시안들 얘긴데요. 세계인, 오늘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추방당해 40년 가까이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차고스 원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김종명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살았을 때 나는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새와 같았습니다.'

런던 남쪽의 중소도시 크롤리의 사회복지센터 낡은 이불과 허름한 침낭만으로 건물 입구, 밖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닥에는 빈 종이상자를 겹겹이 깔았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썼지만 벌써 매서워진 바람을 이겨내기엔 힘겨워 보입니다.

이곳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 째 접어든 66살의 레지나 할머니.

52살의 호크 에두아씨.

모두들 집 없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간다고 합니다.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 섬에서 강제로, 혹은 영문도 모른 채 추방당한 통한과 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지나(66살) : "우리의 고향은 낙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쫓아내 가난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우리는 뭉쳐있었지만 영국 정부가 갈라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중간에 놓인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 64개의 아름다운 산호섬 가운데 한 곳인 디에고 가르시아가 이들 차고시안의 고향입니다.

지난 60년대 초까지 영국령의 이 작은 섬 원주민들은 코코넛 재배를 주로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들이닥친 미군들은 2천 여명 주민들을 차례로 내쫓았고, 섬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에두아드 오노(63살) : "(우리를 협박하기 위해) 애완동물들을 트럭에 실은 뒤 배기통을 막아 질식 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군사 시설물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1년, 그리고 2003년에 이라크 상공에 폭탄을 퍼부은 B-52, 그리고 스텔스 폭격기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한 전폭기, 모두 차고시안을 몰아낸 후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건설한 미군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2천명 원주민의 고향이 미군의 최대 전략요충지로 바뀐 것입니다.

넓은 활주로와 폭격기, 수십 대의 군함, 2천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이 기지를 미군들은 캠프 저스티스,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내 차고시안 대표) : "'그들은 우리의 섬을 그들의 전쟁을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안전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강제로 고향을 내주고 낯선 땅 모리셔스 항구의 선창에 내던져진 차고시안, 그들 앞에는 기나긴 가난과 절망,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52살) : "어떤 사람들은 모리셔스에서 살기 싫다며 자살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고통의 세월이 30년,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졌던 이들의 존재와 추방과정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정부 비밀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 ITV는 영국 정부가 군사기지를 찾고 있던 미국 정부에 섬을 빌려주는 대가로 폴라리스 핵 미사일을 싸게 사기로 비밀 협정을 맺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녹취> ITV 보도 내용 : "그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 방문은 수십억 달러의 군사기지를 짓기 위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극비 사전 조사가 시작됨을 뜻합니다."

당시 작성됐던 영국 정부의 문건에는 2천명 원주민의 보금자리가 '갈매기만 살고 있는 섬'으로 묘사돼있습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영국정부는 당시 유엔에서 원주민들을 이유로 (기지 건설) 계획을 막을까 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섬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작다는 점을 이용해 원주민의 성격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최강대국 미국과 영국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차고시안을 도우려는 영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고향을 찾기 위한 힘겨운 법정투쟁도 시작됐습니다.

2000년 영국의 대법원은 차고시안 추방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서광이 비쳤지만 2003년에 다시 뒤집어졌습니다.

이어(2004년)영국 정부는 왕실칙령을 발동해 차고시안의 귀환을 원천적으로 막았습니다.

미군들이 천혜의 자연조건이라며 자랑하는 이 섬을 홍수 피해 때문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홍수 우려 때문에) 미군이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 차고시안들이 귀향 요구를 철회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4월 백여 명의 차고시안이 영국 해군의 배를 타고 그리던 고향땅을 밟았습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영국 정부가 백 명에 한해, 단 며칠간만, 그것도 영국 해군의 철저한 통제아래 방문을 허락한 것입니다.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쁨은 잠시, 모두들 통한을 남겨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영국군 군함에 올려야했습니다.

추방 당시 2천 명이었던 차고시안은 이제 5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대부분 모리셔스의 슬럼가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부근 섬으로, 혹은 영국으로 흩어졌습니다.

비록 일부는 영국 정부의 뒤늦은 보상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차고시안들은 이방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생계수단도 심지어 잠잘 곳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 : "날은 춥고 비도 오는데 노숙해야하는 딸이 걱정입니다. 내 딸은 아직 어린데 길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고 문제가 될 것같아..."

일주일에 한번, 이들은 고향을 빼앗아간 영국 땅에서 최소한의 삶이라도 먼저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 거주 차고시안 대표) : "지난 40년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원합니다. 영국내 안전과 임대주택을 바랍니다."

<인터뷰> 크롤리 카운실(담당관) : "그들은 영국시민이고 영주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임대주택)대기명단에 오를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기다려야합니다."

차고시안들의 사연은 이제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돼 영국 법원을 넘어섰습니다.

영국 대법원앞에서..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차고스 원주민에 행한 일들은 그들이 강조하는 인권, 정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입니다.

차고스 사람들은 이를 두 강대국의 위선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 우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요. 우리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앵커 멘트>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선의에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차고시안에서 이라크인들에 이르기까지, 고향에서의 안온한 삶을 빼앗긴 이들에게 강대국들의 대의명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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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 갈 수 없는 고향, 차고시안의 눈물
    • 입력 2007-01-14 09:52:0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에 의해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도양 한 가운데 있는 섬, 지금은 미군의 최대 전략 요충으로 변한 디에고 가르시아에 살던 원주민, 차고시안들 얘긴데요. 세계인, 오늘은 아름다운 낙원에서 추방당해 40년 가까이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차고스 원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김종명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살았을 때 나는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새와 같았습니다.' 런던 남쪽의 중소도시 크롤리의 사회복지센터 낡은 이불과 허름한 침낭만으로 건물 입구, 밖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닥에는 빈 종이상자를 겹겹이 깔았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썼지만 벌써 매서워진 바람을 이겨내기엔 힘겨워 보입니다. 이곳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 째 접어든 66살의 레지나 할머니. 52살의 호크 에두아씨. 모두들 집 없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간다고 합니다.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 섬에서 강제로, 혹은 영문도 모른 채 추방당한 통한과 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지나(66살) : "우리의 고향은 낙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쫓아내 가난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우리는 뭉쳐있었지만 영국 정부가 갈라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중간에 놓인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 64개의 아름다운 산호섬 가운데 한 곳인 디에고 가르시아가 이들 차고시안의 고향입니다. 지난 60년대 초까지 영국령의 이 작은 섬 원주민들은 코코넛 재배를 주로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들이닥친 미군들은 2천 여명 주민들을 차례로 내쫓았고, 섬에는 군사기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에두아드 오노(63살) : "(우리를 협박하기 위해) 애완동물들을 트럭에 실은 뒤 배기통을 막아 질식 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군사 시설물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91년, 그리고 2003년에 이라크 상공에 폭탄을 퍼부은 B-52, 그리고 스텔스 폭격기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한 전폭기, 모두 차고시안을 몰아낸 후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건설한 미군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2천명 원주민의 고향이 미군의 최대 전략요충지로 바뀐 것입니다. 넓은 활주로와 폭격기, 수십 대의 군함, 2천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이 기지를 미군들은 캠프 저스티스,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내 차고시안 대표) : "'그들은 우리의 섬을 그들의 전쟁을 위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안전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강제로 고향을 내주고 낯선 땅 모리셔스 항구의 선창에 내던져진 차고시안, 그들 앞에는 기나긴 가난과 절망,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52살) : "어떤 사람들은 모리셔스에서 살기 싫다며 자살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고통의 세월이 30년,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졌던 이들의 존재와 추방과정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정부 비밀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 ITV는 영국 정부가 군사기지를 찾고 있던 미국 정부에 섬을 빌려주는 대가로 폴라리스 핵 미사일을 싸게 사기로 비밀 협정을 맺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녹취> ITV 보도 내용 : "그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 방문은 수십억 달러의 군사기지를 짓기 위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극비 사전 조사가 시작됨을 뜻합니다." 당시 작성됐던 영국 정부의 문건에는 2천명 원주민의 보금자리가 '갈매기만 살고 있는 섬'으로 묘사돼있습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영국정부는 당시 유엔에서 원주민들을 이유로 (기지 건설) 계획을 막을까 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섬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작다는 점을 이용해 원주민의 성격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최강대국 미국과 영국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차고시안을 도우려는 영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고향을 찾기 위한 힘겨운 법정투쟁도 시작됐습니다. 2000년 영국의 대법원은 차고시안 추방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려 서광이 비쳤지만 2003년에 다시 뒤집어졌습니다. 이어(2004년)영국 정부는 왕실칙령을 발동해 차고시안의 귀환을 원천적으로 막았습니다. 미군들이 천혜의 자연조건이라며 자랑하는 이 섬을 홍수 피해 때문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인터뷰> 리처드 기포드(차고시안 지원 변호사) : "(홍수 우려 때문에) 미군이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 차고시안들이 귀향 요구를 철회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 4월 백여 명의 차고시안이 영국 해군의 배를 타고 그리던 고향땅을 밟았습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영국 정부가 백 명에 한해, 단 며칠간만, 그것도 영국 해군의 철저한 통제아래 방문을 허락한 것입니다.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쁨은 잠시, 모두들 통한을 남겨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영국군 군함에 올려야했습니다. 추방 당시 2천 명이었던 차고시안은 이제 5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대부분 모리셔스의 슬럼가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부근 섬으로, 혹은 영국으로 흩어졌습니다. 비록 일부는 영국 정부의 뒤늦은 보상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차고시안들은 이방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생계수단도 심지어 잠잘 곳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뷰> 호크 에두아 : "날은 춥고 비도 오는데 노숙해야하는 딸이 걱정입니다. 내 딸은 아직 어린데 길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고 문제가 될 것같아..." 일주일에 한번, 이들은 고향을 빼앗아간 영국 땅에서 최소한의 삶이라도 먼저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잉그리드 허말(영국 거주 차고시안 대표) : "지난 40년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원합니다. 영국내 안전과 임대주택을 바랍니다." <인터뷰> 크롤리 카운실(담당관) : "그들은 영국시민이고 영주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임대주택)대기명단에 오를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기다려야합니다." 차고시안들의 사연은 이제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돼 영국 법원을 넘어섰습니다. 영국 대법원앞에서.. 미국과 영국, 두 강대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차고스 원주민에 행한 일들은 그들이 강조하는 인권, 정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입니다. 차고스 사람들은 이를 두 강대국의 위선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도와주세요. 우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요. 우리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앵커 멘트>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선의에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차고시안에서 이라크인들에 이르기까지, 고향에서의 안온한 삶을 빼앗긴 이들에게 강대국들의 대의명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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