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마가타현의 한국인 며느리들

입력 2007.01.28 (08:26) 수정 2007.01.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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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북부의 야마가타현에 한국인 며느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아시는지요?

지난 80년대 중반 야마가타현 자치단체가 한일간 국제 결혼 사업을 추진한 결관데요. 한국 여성들은 특유의 강인함과 적응력으로 현지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마가타현의 한국인 며느리들을 양지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4시간쯤 걸리는 은세계 야마가타현.

인구 10만의 츠루오카시는 야마가타현 서부 지역 도시로, 근교엔 유다가와라는 온천지가 있습니다. 천3백년 긴 역사를 가진 온천지로, 온천탕을 갖춘 여관이 12곳 들어서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다미야 여관은 일본 왕족 등 유명 인사들이 찾는 곳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씨의 단골 여관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2년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작품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다미야 여관의 건물 구조를 참고해 영화 속 여관을 그렸다는 말도 있을 정돕니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온천 여관의 젊은 여주인은 한국인입니다. 3년 전 결혼한 우민숙 씨는 시댁이 수 백 년 된 전통 여관이란 걸 알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대를 이어가는 전통 여관에 한국인 며느리가 왠말이나며 결혼에 반대하는 시댁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뷰>우민숙 (다미야여관 여주인): "5백 년 가까운 여관이니까 한국인인 제가 잘 할 수 있을 지 염려스러웠습니다."

손님을 맞고 종업원들을 지휘하고 여관 여주인이 갖춰야할 까다로운 예의범절을 익혀야하는 일은 매일 아침 6시부터 시작돼 밤 10시가 넘어야 끝났습니다.

<인터뷰>우민숙: "저는 팔자걸음인데 기모노를 입으면 안짱걸음을 해야 해요. 그래서 시할머니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어요. 크게 웃지 말라, 팔자걸음 걷지 말라고...."

이제는 여관 운영 능력을 인정받는 우씨에게 여관 총지휘자인 시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주장 강한 며느리에 눌려 비틀거리기도 한다는 시어머니는 우씨를 자신의 딸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시댁 식구들의 지원 속에 우씨는 유다가와 온천지 홍보 등 지역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뷰>오오쓰카 세쓰코 (유다가와 진나이 여관 여주인): "(우씨가)여러가지 일을 생각해 제안해주기 때문에 우리들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껴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츠루오카시 도심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김치 공장. 올해 매출 목표를 1억엔으로 잡고 있는 기업인 김매영씨의 출발은 산골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도에서 한참 떨어진 눈 쌓인 이 산골이 지난 91년 결혼 후 15년을 살아 온 김씨의 터전입니다. 1년 전 츠루오카시에 있는 번듯한 집으로 이사했지만, 옛 추억에 김씨는 가끔 이 곳을 찾습니다.

<인터뷰>김매영 (우매짱김치 사장): "시집 와 봤는데 이렇게 산골인 줄 몰랐습니다. 야 너무 산골이구나 그랬는데.."

김씨의 김치 판매는 이 산골 집에서 시작됐습니다. 김씨는 산골 집으로 초대한 사람들에게 김치를 대접하면서 장사 밑천인 인맥을 넓혀갔습니다. 시부모와 남편은 이런 자신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인터뷰>김매영: "시어머니가 무슨 재료든 사다 주곤해서 사람들을 많이 초대할 수 있었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이 잘하니까 여기서 살았지 그렇지 않으면 김치도 못했고...."

신혼 시절 일본어를 배우려는 김씨를 차에 태우고 매주 한 번씩 왕복 5시간 걸리는 길을 달렸던 남편은 아내를 노력가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아베 쓰기오 (김매영씨 남편):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애쓰고 있는데, 그럴 때엔 아이들도 잘 하니까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마가타에는 한국 며느리들의 성공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과 많지 않는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결국 파국을 맞는 한국인 며느리들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 80년 대 중반 야마가타현 기초자치단체인 도자와무라가 농촌 총각과 한국 여성의 국제 결혼 사업을 추진한 후, 현재 야마가타에는 중국 조선족까지 포함한 한국계 여성이 2천 명 넘게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잘사는 나라 일본'이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월 소득 20-30만엔 밖에 안 되는 농가 현실을 보고 나서 이상한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인터뷰>김진희 (도호쿠공익문과대학 대학원생): "다시 한 번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보겠다고 오지만 한국보다 살기 힘들거든요. 그런 현실을 보고 술집이나 파칭코에 가고 거기서 만난 일본 남성에 빠져 가정이 파괴되고."

하지만 힘든 현실에 부딪힐수록 잊지 말아야할 것이 '외국인'이란 자산이라고 야마가타현에 뿌리를 내린 한국인들은 입을 모읍니다. 외국인에 쏠린 현지인들의 이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김매영: "외국에서 시집왔다고 하니까 저 사람은 어디에 장단점이 있는 지 살피잖아요. 열심히 사니까 또 일본 사람들도 성실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협조를 해줘요."

야마가타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인 며느리들은 자신이 외국인이란 점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외국인 며느리란 사실이 오히려 자산이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깨달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화. 역사적 장벽을 넘어 일본인들을 감동시키는 한국인 며느리들이야말로 바로 최고의 문화사절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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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야마가타현의 한국인 며느리들
    • 입력 2007-01-28 07:58:15
    • 수정2007-01-28 08:30:2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일본 북부의 야마가타현에 한국인 며느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아시는지요? 지난 80년대 중반 야마가타현 자치단체가 한일간 국제 결혼 사업을 추진한 결관데요. 한국 여성들은 특유의 강인함과 적응력으로 현지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마가타현의 한국인 며느리들을 양지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4시간쯤 걸리는 은세계 야마가타현. 인구 10만의 츠루오카시는 야마가타현 서부 지역 도시로, 근교엔 유다가와라는 온천지가 있습니다. 천3백년 긴 역사를 가진 온천지로, 온천탕을 갖춘 여관이 12곳 들어서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다미야 여관은 일본 왕족 등 유명 인사들이 찾는 곳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씨의 단골 여관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2년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작품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다미야 여관의 건물 구조를 참고해 영화 속 여관을 그렸다는 말도 있을 정돕니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온천 여관의 젊은 여주인은 한국인입니다. 3년 전 결혼한 우민숙 씨는 시댁이 수 백 년 된 전통 여관이란 걸 알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대를 이어가는 전통 여관에 한국인 며느리가 왠말이나며 결혼에 반대하는 시댁 친척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뷰>우민숙 (다미야여관 여주인): "5백 년 가까운 여관이니까 한국인인 제가 잘 할 수 있을 지 염려스러웠습니다." 손님을 맞고 종업원들을 지휘하고 여관 여주인이 갖춰야할 까다로운 예의범절을 익혀야하는 일은 매일 아침 6시부터 시작돼 밤 10시가 넘어야 끝났습니다. <인터뷰>우민숙: "저는 팔자걸음인데 기모노를 입으면 안짱걸음을 해야 해요. 그래서 시할머니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어요. 크게 웃지 말라, 팔자걸음 걷지 말라고...." 이제는 여관 운영 능력을 인정받는 우씨에게 여관 총지휘자인 시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주장 강한 며느리에 눌려 비틀거리기도 한다는 시어머니는 우씨를 자신의 딸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시댁 식구들의 지원 속에 우씨는 유다가와 온천지 홍보 등 지역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뷰>오오쓰카 세쓰코 (유다가와 진나이 여관 여주인): "(우씨가)여러가지 일을 생각해 제안해주기 때문에 우리들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껴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츠루오카시 도심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김치 공장. 올해 매출 목표를 1억엔으로 잡고 있는 기업인 김매영씨의 출발은 산골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도에서 한참 떨어진 눈 쌓인 이 산골이 지난 91년 결혼 후 15년을 살아 온 김씨의 터전입니다. 1년 전 츠루오카시에 있는 번듯한 집으로 이사했지만, 옛 추억에 김씨는 가끔 이 곳을 찾습니다. <인터뷰>김매영 (우매짱김치 사장): "시집 와 봤는데 이렇게 산골인 줄 몰랐습니다. 야 너무 산골이구나 그랬는데.." 김씨의 김치 판매는 이 산골 집에서 시작됐습니다. 김씨는 산골 집으로 초대한 사람들에게 김치를 대접하면서 장사 밑천인 인맥을 넓혀갔습니다. 시부모와 남편은 이런 자신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인터뷰>김매영: "시어머니가 무슨 재료든 사다 주곤해서 사람들을 많이 초대할 수 있었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이 잘하니까 여기서 살았지 그렇지 않으면 김치도 못했고...." 신혼 시절 일본어를 배우려는 김씨를 차에 태우고 매주 한 번씩 왕복 5시간 걸리는 길을 달렸던 남편은 아내를 노력가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아베 쓰기오 (김매영씨 남편): "생활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애쓰고 있는데, 그럴 때엔 아이들도 잘 하니까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마가타에는 한국 며느리들의 성공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과 많지 않는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결국 파국을 맞는 한국인 며느리들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 80년 대 중반 야마가타현 기초자치단체인 도자와무라가 농촌 총각과 한국 여성의 국제 결혼 사업을 추진한 후, 현재 야마가타에는 중국 조선족까지 포함한 한국계 여성이 2천 명 넘게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잘사는 나라 일본'이란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월 소득 20-30만엔 밖에 안 되는 농가 현실을 보고 나서 이상한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인터뷰>김진희 (도호쿠공익문과대학 대학원생): "다시 한 번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보겠다고 오지만 한국보다 살기 힘들거든요. 그런 현실을 보고 술집이나 파칭코에 가고 거기서 만난 일본 남성에 빠져 가정이 파괴되고." 하지만 힘든 현실에 부딪힐수록 잊지 말아야할 것이 '외국인'이란 자산이라고 야마가타현에 뿌리를 내린 한국인들은 입을 모읍니다. 외국인에 쏠린 현지인들의 이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김매영: "외국에서 시집왔다고 하니까 저 사람은 어디에 장단점이 있는 지 살피잖아요. 열심히 사니까 또 일본 사람들도 성실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협조를 해줘요." 야마가타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인 며느리들은 자신이 외국인이란 점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외국인 며느리란 사실이 오히려 자산이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깨달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화. 역사적 장벽을 넘어 일본인들을 감동시키는 한국인 며느리들이야말로 바로 최고의 문화사절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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