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 대국’ 이란의 고민

입력 2007.05.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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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산유국들이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4위의 원유 생산국인 이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국가 수입의 80%를 석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란은 그러나 국내 휘발유 소비량의 40%를 수입해야 하는 세계 2위의 휘발유 수입국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로 정유시설이 부족해 휘발유를 역수입해야 하는 산유 대국, 이란의 고민을 이영석 순회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심각한 교통 체증은 하루 종일 도시 전체에서 이어집니다.

3차로인 도로가 금세 5개 차로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긴 줄을 참지 못하고 빈틈을 파고드는 차량들 때문입니다.

<인터뷰> 알리 네자드(택시 기사) : "교통이 아주 복잡합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굉장히 나빠졌습니다. 차가 많이 막혀 힘듭니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에선 차량 2부제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 차량 밀집 지역엔 영업용 택시와 거주자 차량 등 한정된 차량만 진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기 오염도 심각합니다. 운행 차량의 절반 이상이 생산된 지 20년이 넘는 노후 차량들로 연료 소모가 많은 데다 배기가스의 양도 정상치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인터뷰> 알리 로라스피(택시 기사) : (이 차 몇 년 됐습니까?) "한 30년 됐습니다." (매연 문제없나요?) "문제없어요. 28년 동안 차를 몰았는데 요즘 차보다 낫습니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테헤란은 오염된 공기가 쉽게 순환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기 오염이 최악이던 지난해 10월 한 달에만 대기 오염 관련 질병으로 3천6백 명이 숨졌습니다.

<인터뷰> 앤테사리(테헤란 시민) : "시 외곽에 사는데 아침에 중심가로 들어오면 눈이 따갑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테헤란 북쪽을 감싸고 있는 해발 4천여 미터의 알 보르즈 산. 겨우내 내린 눈이 한여름인 7월까지 녹지 않는 테헤란의 상징적 산입니다. 휴일이면 알 보르즈 산은 시내의 대기 오염을 피해 신선한 공기를 찾아 나선 사람들로 붐빕니다.

<인터뷰> 알리 레자(등산객) : "평일엔 바빠서 못 오고 주로 휴일에 옵니다. 좋은 공기도 마시고 피곤함도 풀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인구 천2백만 명인 테헤란의 차량 수는 4백만 대. 인구 3명에 1대 꼴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자동차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렇게 차량 수가 급증한 데에는 값싼 휘발유 값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란의 휘발유는 1리터에 800리얄, 우리 돈 80원 정도입니다.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50리터를 넘게 가득 주유해도 4만 리얄, 우리 돈 4천원이 조금 넘습니다. 휘발유의 수입 원가는 1리터에 6백원 정도 원가의 7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휘발유 값이 쌀 수 있는 것은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가격 보조 정책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보조금 정책은 엄청난 부작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란의 한 국경 지역. 휘발유 통을 실은 트럭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향합니다. 대부분 번호판을 교묘하게 가렸습니다. 값싼 휘발유를 터키와 파키스탄 등 이웃 나라에 밀수출하는 차량들입니다. 대형 선박이 동원되기도 하고, 아예 대규모 저장 시설에서 휘발유를 빼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밀수출 되는 휘발유는 하루 8백만 리터에 이릅니다. 휘발유 값 보조 정책은 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 수출국이지만 국내 휘발유 사용량의 40%를 해외에서 역수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1년 동안 이렇게 휘발유 보조에 들어가는 돈만 50억 달러. 우리 돈 5조 원에 이릅니다.

이 같은 휘발유 부족 현상은 급증하는 휘발유 수요를 국내 정유 능력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 등으로 이란은 국내 정유 시설을 제대로 확충하지 못했습니다.

산유 대국이지만 에너지 부족에 대한 이란의 강박관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란은 국가 수입의 8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5위인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30여 년 뒤인 오는 2040년이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와의 대치를 무릅쓰고 이란이 핵 개발에 필사적인 것도 핵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인터뷰> 키라야시(전 오스트리아 주재 이란 대사) : "국가 발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가 핵 에너지 입니다. 특히 다른 에너지들이 고갈되고 있어 (이란의) 발전을 위해 핵 에너지가 꼭 필요합니다."

테헤란에서 열린 석유와 가스 국제 박람회 35개 나라 5백여 개 해외 업체가 참가한 이 박람회에 이란 정부도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란은 오는 2010년까지 140억 달러를 투입해 부족한 석유 정제 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 아래 재원 마련을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이야드 카짐 바지리(이란 석유장관) :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따로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더 원할 경우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이란 국영 방송이 홍보 영상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는 21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시범 실시에 들어간 '스마트카드'제도를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집마다 보급될 '스마트 카드'는 휘발유 배급제를 위해 주유량을 계산하는 장치입니다. 한 달에 90리터까지만 저렴한 가격에 휘발유를 공급하고, 그 이상은 수입 원가인 600원을 다 받겠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하산 모리디(국회 에너지위원회 의원) : "휘발유 보조금을 없애면 그 돈으로 작은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고 교통 환경에도 투자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이 제도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휘발유 값 인상으로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 때문입니다

<인터뷰> 테헤란 시민 : "아직 기름값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헤쉬마트(테헤란 시민) : "서민들은 차를 못 타겠지만 돈 있는 사람들, 차 몇 대씩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차를 사용할 것입니다."

어렵게 내놓은 휘발유 수요 감소 정책은 시행 전부터 반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완전한 정착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산유 대국이면서도 만성적인 휘발유 부족에 시달리는 이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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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유 대국’ 이란의 고민
    • 입력 2007-05-20 07:24:1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산유국들이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 4위의 원유 생산국인 이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국가 수입의 80%를 석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란은 그러나 국내 휘발유 소비량의 40%를 수입해야 하는 세계 2위의 휘발유 수입국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로 정유시설이 부족해 휘발유를 역수입해야 하는 산유 대국, 이란의 고민을 이영석 순회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심각한 교통 체증은 하루 종일 도시 전체에서 이어집니다. 3차로인 도로가 금세 5개 차로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긴 줄을 참지 못하고 빈틈을 파고드는 차량들 때문입니다. <인터뷰> 알리 네자드(택시 기사) : "교통이 아주 복잡합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굉장히 나빠졌습니다. 차가 많이 막혀 힘듭니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에선 차량 2부제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 차량 밀집 지역엔 영업용 택시와 거주자 차량 등 한정된 차량만 진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기 오염도 심각합니다. 운행 차량의 절반 이상이 생산된 지 20년이 넘는 노후 차량들로 연료 소모가 많은 데다 배기가스의 양도 정상치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인터뷰> 알리 로라스피(택시 기사) : (이 차 몇 년 됐습니까?) "한 30년 됐습니다." (매연 문제없나요?) "문제없어요. 28년 동안 차를 몰았는데 요즘 차보다 낫습니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테헤란은 오염된 공기가 쉽게 순환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기 오염이 최악이던 지난해 10월 한 달에만 대기 오염 관련 질병으로 3천6백 명이 숨졌습니다. <인터뷰> 앤테사리(테헤란 시민) : "시 외곽에 사는데 아침에 중심가로 들어오면 눈이 따갑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테헤란 북쪽을 감싸고 있는 해발 4천여 미터의 알 보르즈 산. 겨우내 내린 눈이 한여름인 7월까지 녹지 않는 테헤란의 상징적 산입니다. 휴일이면 알 보르즈 산은 시내의 대기 오염을 피해 신선한 공기를 찾아 나선 사람들로 붐빕니다. <인터뷰> 알리 레자(등산객) : "평일엔 바빠서 못 오고 주로 휴일에 옵니다. 좋은 공기도 마시고 피곤함도 풀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인구 천2백만 명인 테헤란의 차량 수는 4백만 대. 인구 3명에 1대 꼴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자동차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렇게 차량 수가 급증한 데에는 값싼 휘발유 값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란의 휘발유는 1리터에 800리얄, 우리 돈 80원 정도입니다.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50리터를 넘게 가득 주유해도 4만 리얄, 우리 돈 4천원이 조금 넘습니다. 휘발유의 수입 원가는 1리터에 6백원 정도 원가의 7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휘발유 값이 쌀 수 있는 것은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가격 보조 정책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보조금 정책은 엄청난 부작용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란의 한 국경 지역. 휘발유 통을 실은 트럭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향합니다. 대부분 번호판을 교묘하게 가렸습니다. 값싼 휘발유를 터키와 파키스탄 등 이웃 나라에 밀수출하는 차량들입니다. 대형 선박이 동원되기도 하고, 아예 대규모 저장 시설에서 휘발유를 빼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밀수출 되는 휘발유는 하루 8백만 리터에 이릅니다. 휘발유 값 보조 정책은 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 수출국이지만 국내 휘발유 사용량의 40%를 해외에서 역수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1년 동안 이렇게 휘발유 보조에 들어가는 돈만 50억 달러. 우리 돈 5조 원에 이릅니다. 이 같은 휘발유 부족 현상은 급증하는 휘발유 수요를 국내 정유 능력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 등으로 이란은 국내 정유 시설을 제대로 확충하지 못했습니다. 산유 대국이지만 에너지 부족에 대한 이란의 강박관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란은 국가 수입의 80%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5위인 이란의 원유 매장량은 30여 년 뒤인 오는 2040년이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와의 대치를 무릅쓰고 이란이 핵 개발에 필사적인 것도 핵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인터뷰> 키라야시(전 오스트리아 주재 이란 대사) : "국가 발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가 핵 에너지 입니다. 특히 다른 에너지들이 고갈되고 있어 (이란의) 발전을 위해 핵 에너지가 꼭 필요합니다." 테헤란에서 열린 석유와 가스 국제 박람회 35개 나라 5백여 개 해외 업체가 참가한 이 박람회에 이란 정부도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란은 오는 2010년까지 140억 달러를 투입해 부족한 석유 정제 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 아래 재원 마련을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이야드 카짐 바지리(이란 석유장관) :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따로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더 원할 경우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이란 국영 방송이 홍보 영상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오는 21일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시범 실시에 들어간 '스마트카드'제도를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집마다 보급될 '스마트 카드'는 휘발유 배급제를 위해 주유량을 계산하는 장치입니다. 한 달에 90리터까지만 저렴한 가격에 휘발유를 공급하고, 그 이상은 수입 원가인 600원을 다 받겠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하산 모리디(국회 에너지위원회 의원) : "휘발유 보조금을 없애면 그 돈으로 작은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고 교통 환경에도 투자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이 제도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휘발유 값 인상으로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걱정 때문입니다 <인터뷰> 테헤란 시민 : "아직 기름값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헤쉬마트(테헤란 시민) : "서민들은 차를 못 타겠지만 돈 있는 사람들, 차 몇 대씩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차를 사용할 것입니다." 어렵게 내놓은 휘발유 수요 감소 정책은 시행 전부터 반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완전한 정착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산유 대국이면서도 만성적인 휘발유 부족에 시달리는 이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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