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30년 째 행진 중인 ‘마요 광장의 어머니들’

입력 2007.05.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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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어제는 5.18 광주 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27주년이 되는 날이었죠. 우리가 광주에서 아픔을 겪던 당시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군부 독재에 의한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됐습니다.

군정에 반대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군부에 의해 납치됐고 이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애달픈 시위는 30년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아직도 자식들을 기다리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아르헨티나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을 만나봅니다.

황동진 순회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이 거대한 춤판으로 변했습니다. 대통령궁 앞 광장은 마치 거대한 축제장을 방불케 합니다. 지난해부터 인권의 날로 지정된 이 날은 31년 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날입니다.

<인터뷰> 다니엘 피레스 :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감동적이고 31년 전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은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더 이상 아르헨티나에서 군정이 있어서 안 된다며 목소리를 함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또, 군정 당시 사라진 사람들을 기리며,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원했습니다.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는 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할머니들의 시위가 펼쳐졌습니다. 군정 당시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인 이들은 마요 광장, 5월 광장의 어머니들로 불립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이 되면 탑 주변을 행진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인터뷰> 에바 보나피니(마요광장의 어머니회장) : "우리 자식들의 목숨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살인자들을 처벌해줄 것도 요구합니다."

실종된 자식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들이 대통령궁 앞 광장에 모인 것이 목요 집회의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명이 모이는 것이 금지돼 서너 명씩 짝을 이뤘고, 대통령궁 앞에 서있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탑 주위를 돌게 됐습니다.

<인터뷰> 나디아 레크네(마요광장의 어머니) : "저는 아들과 며느리를 잃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30년 전부터 우리는 매주 목요일 이곳에 나옵니다."

이 행진은 이후 점점 더 많은 어머니들이 동참하면서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습니다.

올해 81살의 오캄포 바스케스 할머니. 바스케스 할머니는 30년이 지났지만, 실종된 딸과 사위의 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각각 심리상담사와 수의사였던 딸과 사위는 지난 76년 5월 군인들에게 불법 연행됐습니다.

<인터뷰> 오캄포 바스케스(81살) : "무엇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집회 3년째인 지난 79년에는 일부 어머니가 비밀리에 경찰에 붙잡혀가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시위를 중단하고 있을 수 없다. 다시 나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이때 전 총리 부인이 방문하고 있을 때인데, 우리가 함께 나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동참해 주었기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목요일 오후가 되면 행진에 참여하는 바스케스 할머니는 마지막 바람이 있습니다. 실종 당시 임신 중이었던 딸의 아이를 찾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캄포 바스케스 :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딸과 사위가 살아 있었으면 훌륭한 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나의 손자가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하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당시 군부에 붙잡혀갔던 사람들 중에는 5백여 명의 임산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태어난 직후 군 간부와 경찰관 등에게 입양됐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부모를 살해한 가해자들에 의해 길러진 것입니다.

지난 2000년 초 이 같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아르헨티나에는 혈육을 되찾아주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82명이 DNA 검사를 통해 혈육을 찾았습니다. 부스카리아 로아 할머니도 혈육을 찾은 가족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 부스카리아 로아(69살) :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했습니다. 손녀는 찾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끝내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손녀를 찾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로아 할머니는 이제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손녀를 가끔 만나 살아온 얘기도 듣고, 친부모의 얘기도 들려줍니다. 로아 할머니는 이 같은 불행한 상황을 만든 독재자들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우리 자식들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데도 군부 독재자들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엘 올림포. 이곳은 군부가 들어서기 전 각종 체육 경기가 열리던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부가 집권한 뒤 이곳은 시민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살해하는 장소로 전락했습니다.

<인터뷰> 루벤 팔라스(엘 올림포 주민/30년 거주) : "구금하고 고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형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이들을 비행기에 싣고 가 플라타 강에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시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도 수십 개, 전국적으로 3백 개가 넘습니다.

군부시절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이곳 엘 올림포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됩니다. 희생자 단체와 아르헨티나 정부는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박물관과 문화시설을 세울 예정입니다.

지난 2005년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사면은 없다고 판결하면서 과거사 정리는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해 9월 군정시대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법정에서 최종진술할 예정이었던 훌리오 로페즈가 재판 하루 전 갑자기 실종됐습니다.

<인터뷰> 프랭크(시민단체 간사) : "훌리오 로페즈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 명확한 경고입니다. 만약, 군정에 대한 재판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군정시대 인권을 유린했던 군 관계자와 기업인 등, 적게는 5백 명, 많게는 천 명이 사법 처리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은 잠시 수면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실종된 로페즈를 찾아야 하고 진실을 더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실종자 문제는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임자 처벌 문제와 함께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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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 30년 째 행진 중인 ‘마요 광장의 어머니들’
    • 입력 2007-05-20 07:25:16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어제는 5.18 광주 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27주년이 되는 날이었죠. 우리가 광주에서 아픔을 겪던 당시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군부 독재에 의한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됐습니다. 군정에 반대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군부에 의해 납치됐고 이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애달픈 시위는 30년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인 오늘은 아직도 자식들을 기다리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아르헨티나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을 만나봅니다. 황동진 순회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이 거대한 춤판으로 변했습니다. 대통령궁 앞 광장은 마치 거대한 축제장을 방불케 합니다. 지난해부터 인권의 날로 지정된 이 날은 31년 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날입니다. <인터뷰> 다니엘 피레스 :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감동적이고 31년 전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은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더 이상 아르헨티나에서 군정이 있어서 안 된다며 목소리를 함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또, 군정 당시 사라진 사람들을 기리며,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원했습니다.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는 하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할머니들의 시위가 펼쳐졌습니다. 군정 당시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인 이들은 마요 광장, 5월 광장의 어머니들로 불립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이 되면 탑 주변을 행진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인터뷰> 에바 보나피니(마요광장의 어머니회장) : "우리 자식들의 목숨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살인자들을 처벌해줄 것도 요구합니다." 실종된 자식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들이 대통령궁 앞 광장에 모인 것이 목요 집회의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명이 모이는 것이 금지돼 서너 명씩 짝을 이뤘고, 대통령궁 앞에 서있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탑 주위를 돌게 됐습니다. <인터뷰> 나디아 레크네(마요광장의 어머니) : "저는 아들과 며느리를 잃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30년 전부터 우리는 매주 목요일 이곳에 나옵니다." 이 행진은 이후 점점 더 많은 어머니들이 동참하면서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습니다. 올해 81살의 오캄포 바스케스 할머니. 바스케스 할머니는 30년이 지났지만, 실종된 딸과 사위의 사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각각 심리상담사와 수의사였던 딸과 사위는 지난 76년 5월 군인들에게 불법 연행됐습니다. <인터뷰> 오캄포 바스케스(81살) : "무엇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집회 3년째인 지난 79년에는 일부 어머니가 비밀리에 경찰에 붙잡혀가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시위를 중단하고 있을 수 없다. 다시 나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이때 전 총리 부인이 방문하고 있을 때인데, 우리가 함께 나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동참해 주었기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목요일 오후가 되면 행진에 참여하는 바스케스 할머니는 마지막 바람이 있습니다. 실종 당시 임신 중이었던 딸의 아이를 찾는 것입니다. <인터뷰> 오캄포 바스케스 :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딸과 사위가 살아 있었으면 훌륭한 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나의 손자가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하는 것, 그것 하나입니다." 당시 군부에 붙잡혀갔던 사람들 중에는 5백여 명의 임산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태어난 직후 군 간부와 경찰관 등에게 입양됐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부모를 살해한 가해자들에 의해 길러진 것입니다. 지난 2000년 초 이 같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아르헨티나에는 혈육을 되찾아주는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82명이 DNA 검사를 통해 혈육을 찾았습니다. 부스카리아 로아 할머니도 혈육을 찾은 가족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인터뷰> 부스카리아 로아(69살) :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했습니다. 손녀는 찾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끝내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손녀를 찾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로아 할머니는 이제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손녀를 가끔 만나 살아온 얘기도 듣고, 친부모의 얘기도 들려줍니다. 로아 할머니는 이 같은 불행한 상황을 만든 독재자들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우리 자식들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데도 군부 독재자들은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엘 올림포. 이곳은 군부가 들어서기 전 각종 체육 경기가 열리던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부가 집권한 뒤 이곳은 시민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살해하는 장소로 전락했습니다. <인터뷰> 루벤 팔라스(엘 올림포 주민/30년 거주) : "구금하고 고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형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이들을 비행기에 싣고 가 플라타 강에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시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도 수십 개, 전국적으로 3백 개가 넘습니다. 군부시절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이곳 엘 올림포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됩니다. 희생자 단체와 아르헨티나 정부는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박물관과 문화시설을 세울 예정입니다. 지난 2005년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사면은 없다고 판결하면서 과거사 정리는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해 9월 군정시대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법정에서 최종진술할 예정이었던 훌리오 로페즈가 재판 하루 전 갑자기 실종됐습니다. <인터뷰> 프랭크(시민단체 간사) : "훌리오 로페즈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 명확한 경고입니다. 만약, 군정에 대한 재판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군정시대 인권을 유린했던 군 관계자와 기업인 등, 적게는 5백 명, 많게는 천 명이 사법 처리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은 잠시 수면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실종된 로페즈를 찾아야 하고 진실을 더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실종자 문제는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임자 처벌 문제와 함께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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