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임 현장] ‘나무 말뚝’의 정체는?

입력 2007.05.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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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일본이 강점기 때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둔 것 기억하시죠? 얼마전 서울 개화산에서는 거대한 나무말뚝들이 발견 됐는데 역시 일본이 박아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쇠말뚝이 아닌 나무말뚝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풍수 침략 용도까지... 일제의 지배 야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를 새삼 돌이켜보 게 해주고 있습니다.

김학재 기자 나왔습니다. 나무말뚝은 처음인데, 앞서 쇠말뚝과 석침도 함께 발견 됐었다구요?

<리포트>

그렇습니다. 개화산에서는 16개의 나무말뚝과 쇠말뚝 27개, 그리고 돌로 만든 석침 2개가 발견됐는데요. 이 가운데 쇠말뚝과 석침은 겨우 제거했지만, 뒤늦게 발견된 나무말뚝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현재 제거 작업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누가 어떻게 왜 심어놨는지... 개화산의 나무말뚝을 취재했습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과 마주보고 있는 해발 130여 미터의 개화산.산 정상에 정체불명의 굵직한 나무말뚝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녹취."길이가 2m 85cm. 둘레가 83cm. 밑으로 갈수록 더 굵어요.?"

길이와 폭이 조금씩 다른 개화산 나무말뚝의 총 개수는 열 여섯 개. 쇠말뚝 전문가가 지난달부터 이 말뚝들의 제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소윤영(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 "그동안 저는 쇠말뚝은 많이 뽑았죠. 하지만, 나무말뚝이 이렇게 박힌 것은 처음 보거든요. 목적은 쇠말뚝과 석침을 박은 것과 같은 목적이 아니겠는가..."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날도 땅 속 깊이 박혀있던 긴 나무말뚝이 그 실체를 드러냈는데요.

<녹취>"이제 빠졌다. 이제 너의 역할은 다 끝났다. 이 독침아!"

이 곳은 지난해 9월, 쇠말뚝과 석침이 먼저 발견되어 이미 모두 제거를 마친 상태인데요. 쇠말뚝과 쇠말뚝을 연결해 칭칭 감았던 흉물스러운 굵은 철사까지 발견됐습니다.

<인터뷰>소윤영(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 "우리를 못살게 하고, 여기서 큰 인물 못 나오게 만들고, 이런 목적을 위해 몹시 나쁘게 자연을 이용했다는 것이죠. 전율을 느끼죠."

쇠말뚝 27개, 돌로 만든 석침 2개, 그리고 전국 최초로 발견된 나무말뚝 16개. 개화산에서 혈침으로 추정되는 말뚝들이 박혀있던 위치입니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은 그동안 쇠말뚝과는 달리, 나무말뚝의 정체엔 별다른 의심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오래전부터 군사 훈련용 말뚝이라고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정훈(61살/서울시 방화동): "여기가 옛날에 군 훈련장이었대요. 그전에는 (나무말뚝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당시 밧줄 메고 훈련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의문이 제기된 후 해당 부대에서 3회에 걸쳐 현장 확인 작업을 진행했고, 그 후 취재진에게 군 관계자는 개화산의 나무말뚝이 군사시설과는 무관하다는 회신을 보내왔는데요. 위치상으로 말뚝이훈련 목적엔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당시 군대 기술로는 나무말뚝을 이처럼 정교하게 박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인터뷰>소윤영(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 "시멘트고 돌이고, 시멘트고 돌이고, 지금 돌이 12층이고 시멘트가 12층입니다. 두 개 합치면 24층인데 왜, 누가 이렇게 정교하게 이런 숫자까지 염두에 두고 말뚝을 박았는지..."

또 나무 밑 부분과 바닥 사이엔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만들어놨고, 부식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기름이 흥건했습니다.

<녹취>"냄새가 아주 독합니다. 속에 기름으로 꽉 찼어요."

풍수지리학자들은 특히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과 마주하고 있는 개화산이 서울 의 중요한 관문이었다는 점을 주목하는데요.

<인터뷰>신상윤(아시아풍수지리연구소 소장): "서북 동북아시대에서 서북으로 나가는 기운을 막고자 했기 때문에 개화산에서 기운이 상승하는 곳에 쇠말뚝과 석침, 나무말뚝을 세움으로써..."

그동안 전국 산천의 명당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말뚝들이 무더기로 발견돼 왔는데요.

<인터뷰>서길수(서경대 교수): "전국에 적어도 몇백 군데 이런 사례가 나왔다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그런 작업량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당히 계획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어떤 정신침략의 방법으로서 풍수지리설을 이용한 것입니다."

개화산에서 발견된 것들과 비슷한 나무말뚝들이 얼마나 더 많은 곳에... 또 어떤 형태로... 일본 강점기 시절의 잔재로 남아있을지! 그 궁금증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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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5-29 08: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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