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 조명

입력 2007.08.13 (22:23) 수정 2007.08.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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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모레가 62주년 광복절입니다.

나라잃은 설움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는데요.

이충형 기자가 이들의 발자취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중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강.

상하이에서 자싱과 난징을 거쳐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26년 동안 중국 대륙을 떠돌던 고난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자료영상>정정화(여사/'장강 일기' 中): "우리는 목선 하나를 세내었다. 그목선은 백명이 넘는 식구가 잠을 잘수 있을 정도로 넓었으며, 강물을 퍼올려 씻을수도 있는 세수소도 있었다."

회고록 <장강일기>를 쓴 정정화 여사는 임시정부의 밀사로서 여섯번이나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오며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렸습니다.

임시정부가 충칭에서 창설한 광복군.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이 건물의 앞뜰은 광복군의 연병장이었습니다.

이곳 광복군에 참여한 또 다른 조선 여인.

박차정 여사는 조선의용대의 여성복무 단장이었습니다.

중국 대륙 중심의 타이항산맥.

이 산골 마을에서 조선의용대의 발자취를 찾았습니다.

<녹취>상룽성(조선의용대 연구가): "이것 보세요. 무궁화입니다. 당시 조선의용군이 살던 마을 대부분의 집에는 이 무궁화가 있습니다."


마을 입구 2층 누각에 한글로 씌여진 글자들이 암호처럼 나타납니다.

누각 옆면으로 돌아서자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자들.

항일 선전구호입니다.

<녹취>주민: "저 벽에 있는 글씨가 잘 안보여서 마을의 한 교사가 다시 썼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이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습니다.

<인터뷰>허하이번(주민): "70~80명 중 16명 정도 여자대원이 있었던 것 같고 20명은 채 안됐습니다."

그러나 박차정 여사는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35살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박차정 여사 등 수십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충칭의 조선인 공동묘지터.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쓰레기산으로 변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습니다.

<녹취>이선자(임정기념과 부관장): "여기에 들국화씨를 뿌렸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여기에 묻혔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 노란꽃을 조선화로 불렀습니다."

해방을 맞아 임정식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그러나 이 자리에 서지 못했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영혼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충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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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 조명
    • 입력 2007-08-13 21:24:07
    • 수정2007-08-13 22:42:26
    뉴스 9
<앵커 멘트> 모레가 62주년 광복절입니다. 나라잃은 설움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는데요. 이충형 기자가 이들의 발자취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중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강. 상하이에서 자싱과 난징을 거쳐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26년 동안 중국 대륙을 떠돌던 고난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자료영상>정정화(여사/'장강 일기' 中): "우리는 목선 하나를 세내었다. 그목선은 백명이 넘는 식구가 잠을 잘수 있을 정도로 넓었으며, 강물을 퍼올려 씻을수도 있는 세수소도 있었다." 회고록 <장강일기>를 쓴 정정화 여사는 임시정부의 밀사로서 여섯번이나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오며 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렸습니다. 임시정부가 충칭에서 창설한 광복군.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이 건물의 앞뜰은 광복군의 연병장이었습니다. 이곳 광복군에 참여한 또 다른 조선 여인. 박차정 여사는 조선의용대의 여성복무 단장이었습니다. 중국 대륙 중심의 타이항산맥. 이 산골 마을에서 조선의용대의 발자취를 찾았습니다. <녹취>상룽성(조선의용대 연구가): "이것 보세요. 무궁화입니다. 당시 조선의용군이 살던 마을 대부분의 집에는 이 무궁화가 있습니다." 마을 입구 2층 누각에 한글로 씌여진 글자들이 암호처럼 나타납니다. 누각 옆면으로 돌아서자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자들. 항일 선전구호입니다. <녹취>주민: "저 벽에 있는 글씨가 잘 안보여서 마을의 한 교사가 다시 썼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이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습니다. <인터뷰>허하이번(주민): "70~80명 중 16명 정도 여자대원이 있었던 것 같고 20명은 채 안됐습니다." 그러나 박차정 여사는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35살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박차정 여사 등 수십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된 충칭의 조선인 공동묘지터.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쓰레기산으로 변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습니다. <녹취>이선자(임정기념과 부관장): "여기에 들국화씨를 뿌렸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여기에 묻혔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 노란꽃을 조선화로 불렀습니다." 해방을 맞아 임정식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그러나 이 자리에 서지 못했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영혼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충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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