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돈 가져오라” 고무 호스로 무차별 구타

입력 2007.11.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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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1일. 예멘 아덴 부근에서 심해 가재를 잡기 위해 케냐 몸바사항을 떠나 소말리아 근해를 평화롭게 항해하던 139t급 마부노 1,2호 앞에 출항 나흘만인 15일 해적이 나타났다.
그들의 여섯달에 걸친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중화기로 위력시위를 하며 마부노 1,2호를 순식간에 장악한 해적들은 배 안에 있던 식료품과 의약품을 모두 빼앗고 자신들의 근거지인 소말리아 북동부 하라데레 부근 1.2마일(약 2㎞) 해상으로 배 2척을 끌고 갔다.
이들은 이 배의 선주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납치 3개월여 만인 8월20일께부터 해적들은 한석호(40) 선장을 비롯, 한국인 선원 4명을 집중적으로 무차별 구타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해 "빨리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윽박질렀고 그럴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눈엔 피눈물이 흘렀다.
조문갑(54) 마부노 1호 기관장은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라며 지옥 같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해적들이 산소용접기 호스를 1m로 잘라 두 가닥으로 머리, 가슴 할 것 없이 때렸습니다. 가슴엔 피멍이 들기도 했고요. 한 번은 40대까지 맞기도 했고…다 합쳐 100대는 넘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그의 깊은 주름살과 지친 표정에서 그간의 고단함을 다소나마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구타당하고 총으로 협박할 때가 가장 무서웠다"며 "8월부터 돈을 내놓으라고 본격적으로 볶기 시작했고 9월 말엔 없는 기름을 내놓으라고 (도망치던 나를) 기관실까지 쫓아와서 때리더라"라고 말했다.
해적들은 초기에 몸값을 500만 달러를 요구하다 300만 달러까지 낮췄지만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조씨 등 한국 선원들은 선주 안현수씨나 외부와 연락을 할 때마다 `차라리 미군에 부탁해 포를 쏴 함께 죽여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는 "8월 쯤 외교통상부에서 연락이 와 `조금만 참으라. 곧 해결된다'고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10월에 모금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 풀려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월20일부터 3박4일간 해적들은 조씨 등 한국 선원 3명을 무장한 군용트럭에 태워 사막에 있는 자신들의 마을로 데려가기도 했다.
하루에 빵 한 조각 또는 양고기 한 점으로 연명했고 식수가 없어 고인 빗물을 셔츠로 걸러 손바닥에 담아 마셨다.
해적들은 매일 10여 명씩 교대로 마부노 1,2호를 감시했고 선원들은 해적들로부터 아프리카에서 나는 가장 질이 좋지 않은 쌀을 얻어 밥을 지어 먹었다고 했다.
반찬은 낚시로 잡은 생선을 말려 찌개를 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순간 감정이 북받친 듯 "집사람이 너무 고생을 해서…매일 울고…"라고 말하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부노호 선장 한석호(40) 씨는 "정부도 포기한 일이었는데 국민의 힘으로 풀려났다"며 "국민의 힘이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양칠태(55) 기관장은 주먹으로 맞아 앞니 2개가 흔들리고 나도 많이 맞아 한 달을 누워있기도 했다"며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맞았는데 잘 참아준 선원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10월 말께 선주 안씨로부터 "11월3∼4일 쯤 풀려날 거 같다"는 연락을 받고 석방을 감지했다고 조씨는 말했다.
안씨의 말대로 11월4일 오후 3시30분, 해적들이 카누를 타고 모두 빠져 나갔고 오후 5시께 마부노 1,2호는 피랍 173일 만에 생지옥과 같았던 소말리아 하라데레를 출발했다. 3시간 뒤 미 해군 군함이 옆에 따라 붙었다.
그들의 6개월에 걸친 악몽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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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 “돈 가져오라” 고무 호스로 무차별 구타
    • 입력 2007-11-13 20:45:52
    연합뉴스
지난 5월11일. 예멘 아덴 부근에서 심해 가재를 잡기 위해 케냐 몸바사항을 떠나 소말리아 근해를 평화롭게 항해하던 139t급 마부노 1,2호 앞에 출항 나흘만인 15일 해적이 나타났다. 그들의 여섯달에 걸친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중화기로 위력시위를 하며 마부노 1,2호를 순식간에 장악한 해적들은 배 안에 있던 식료품과 의약품을 모두 빼앗고 자신들의 근거지인 소말리아 북동부 하라데레 부근 1.2마일(약 2㎞) 해상으로 배 2척을 끌고 갔다. 이들은 이 배의 선주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납치 3개월여 만인 8월20일께부터 해적들은 한석호(40) 선장을 비롯, 한국인 선원 4명을 집중적으로 무차별 구타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해 "빨리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윽박질렀고 그럴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눈엔 피눈물이 흘렀다. 조문갑(54) 마부노 1호 기관장은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라며 지옥 같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해적들이 산소용접기 호스를 1m로 잘라 두 가닥으로 머리, 가슴 할 것 없이 때렸습니다. 가슴엔 피멍이 들기도 했고요. 한 번은 40대까지 맞기도 했고…다 합쳐 100대는 넘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그의 깊은 주름살과 지친 표정에서 그간의 고단함을 다소나마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구타당하고 총으로 협박할 때가 가장 무서웠다"며 "8월부터 돈을 내놓으라고 본격적으로 볶기 시작했고 9월 말엔 없는 기름을 내놓으라고 (도망치던 나를) 기관실까지 쫓아와서 때리더라"라고 말했다. 해적들은 초기에 몸값을 500만 달러를 요구하다 300만 달러까지 낮췄지만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조씨 등 한국 선원들은 선주 안현수씨나 외부와 연락을 할 때마다 `차라리 미군에 부탁해 포를 쏴 함께 죽여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는 "8월 쯤 외교통상부에서 연락이 와 `조금만 참으라. 곧 해결된다'고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10월에 모금운동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 풀려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월20일부터 3박4일간 해적들은 조씨 등 한국 선원 3명을 무장한 군용트럭에 태워 사막에 있는 자신들의 마을로 데려가기도 했다. 하루에 빵 한 조각 또는 양고기 한 점으로 연명했고 식수가 없어 고인 빗물을 셔츠로 걸러 손바닥에 담아 마셨다. 해적들은 매일 10여 명씩 교대로 마부노 1,2호를 감시했고 선원들은 해적들로부터 아프리카에서 나는 가장 질이 좋지 않은 쌀을 얻어 밥을 지어 먹었다고 했다. 반찬은 낚시로 잡은 생선을 말려 찌개를 해 먹는 게 고작이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순간 감정이 북받친 듯 "집사람이 너무 고생을 해서…매일 울고…"라고 말하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부노호 선장 한석호(40) 씨는 "정부도 포기한 일이었는데 국민의 힘으로 풀려났다"며 "국민의 힘이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는 "양칠태(55) 기관장은 주먹으로 맞아 앞니 2개가 흔들리고 나도 많이 맞아 한 달을 누워있기도 했다"며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맞았는데 잘 참아준 선원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10월 말께 선주 안씨로부터 "11월3∼4일 쯤 풀려날 거 같다"는 연락을 받고 석방을 감지했다고 조씨는 말했다. 안씨의 말대로 11월4일 오후 3시30분, 해적들이 카누를 타고 모두 빠져 나갔고 오후 5시께 마부노 1,2호는 피랍 173일 만에 생지옥과 같았던 소말리아 하라데레를 출발했다. 3시간 뒤 미 해군 군함이 옆에 따라 붙었다. 그들의 6개월에 걸친 악몽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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