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대형 토목 공사가,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환경 파괴 논란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현상인데요.
지금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유로 바다에 뱃길을 내는 운하 사업이 중단돼 있습니다. 공사가 벌어지는 곳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이윱니다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도 현장보고, 오늘은 신화와 싸우는 국책사업을 이재강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푸른 물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와 스리랑카 사이의 바다입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인도 남부의 정취가 그대로 배어납니다. 바다의 깊이는 1미터에서 10미터 사이... 수심이 얕아 작은 어선을 제외한 큰 여객선이나 상선은 운항하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5천7백억 원을 들여 바다 바닥의 흙을 파내 뱃길을 만드는 운하 공사를 재작년 말 시작했습니다.
예정대로 내년 말 공사가 완료되면 지금까지 스리랑카 바깥을 우회하던 선박의 운항 길이는 최대 780킬로미터 단축되고 운항 시간도 30시간 정도 줄어듭니다.
<인터뷰> 아바스카반(타밀나두주 집권정당 간부) : "어업을 주로 하는 이 지역에 경제 발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공사 현장에 인접한 어촌 마을을 찾아가봤습니다. 도로도 없는 모래바닥을 아슬아슬하게 운행하는 트럭이 이 마을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1964년 사이클론으로 파괴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고기잡이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하가 생기면 마을은 선박의 중간 기착지가 돼 크게 발전할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칼리(주민) : "공사가 잘 된다면 마을이 예전처럼 활기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80% 정도 진행된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돼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주정부 모두 열의를 갖고 추진하던 이 사업이 중단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인도 신화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힌두교의 대표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따르면, 운하 공사가 벌어지는 현장에는 먼 옛날 라마 신이 놓은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스리랑카에 사는 악마 라바나가 라마 신의 부인을 납치해가자, 라마는 부인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스리랑카까지 다리를 건설합니다. 라마의 군대는 다리를 건너
스리랑카의 라바나를 물리치고 납치된 부인을 구출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힌두교도들은, 바다 바닥을 파내고 운하를 만들면 라마 신이 건설한 다리가 파괴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샹크차리(힌두교 사제) : "후세의 모든 왕이 다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라마 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라마 신에 대한 믿음은 힌두교도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마가 악마를 물리친 후 시바 신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는 곳에는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옵니다. 라마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사원에도 힌두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에 뜨는 돌을 전시하며 라마가 실제로 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원도 있습니다.
<인터뷰> 쿠시부 : "(라마는) 수양을 가장 많이 한 신이어서 모든 힌두교도가 숭배합니다."
이곳의 지형적 특성도 라마의 다리에 대한 믿음을 더하는 데 한 몫 합니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연결하는 것 같은 지형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음을 육안으로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은 마치 인도와 스리랑카가 연결된 것처럼 돼 있습니다.
<인터뷰> 비제이 :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봤는데 확실히 양 쪽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 같은 힌두교도의 믿음은 헌법소원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은 지난 8월 공사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공사를 두고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라마의 다리가 힌두교도의 믿음대로 실제로 건설된 다리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지형에 불과한 지에 대해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부터입니다.
지난 9월 인도 정부는 라마의 다리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명서를 법원에 제출하자 전국에서 규탄 시위가 이어졌고, 정부는 곧바로 소명서를 철회했습니다. 이후에도 라마의 다리는 제1야당이자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인 BJP가 정부를 공격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중요한 정치 갈등으로 비화됐습니다.
<인터뷰> 아디티나스(BJP 간부) : "정부가 너무 서두릅니다. 건설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입니다."
바위와 모래덩어리로 이뤄진 자연적 지형이라는 것이 라마의 다리에 대한 과학계와 고고학계의 정설입니다. 일부 힌두교도들도 라마 신이 실제 다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소수 의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라티남 : "라마를 믿지만 '라마의 다리'는 자연적인 지형일 뿐이다."
운하 공사 현장에서 멀지 않는 한 바닷가... 이른 새벽 힌두교도들이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며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11억 인구 가운데 힌두교도는 약 9억 명, 이들에게 수많은 힌두 신들은 삶의 안내자이자 죽음 후의 환생을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라마의 다리는 신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인터뷰> 스리고팔 : "'라마의 다리'를 파괴하는 것은 힌두교도의 정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추진되는 국책 사업이, 수천 년 전 형성된 신화를 뛰어넘지 못하는 나라 인도... IT 강국이자 인공위성을 쏘는 나라의 이 같은 현실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인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인도,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대규모 국책사업까지 중단시킨 인도 신화의 힘이 대단합니다. 첨단과학기술과 수천 년 신화의 충돌은 과거와 현재의 혼재 속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인도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대형 토목 공사가,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환경 파괴 논란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현상인데요.
지금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유로 바다에 뱃길을 내는 운하 사업이 중단돼 있습니다. 공사가 벌어지는 곳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이윱니다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도 현장보고, 오늘은 신화와 싸우는 국책사업을 이재강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푸른 물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와 스리랑카 사이의 바다입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인도 남부의 정취가 그대로 배어납니다. 바다의 깊이는 1미터에서 10미터 사이... 수심이 얕아 작은 어선을 제외한 큰 여객선이나 상선은 운항하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5천7백억 원을 들여 바다 바닥의 흙을 파내 뱃길을 만드는 운하 공사를 재작년 말 시작했습니다.
예정대로 내년 말 공사가 완료되면 지금까지 스리랑카 바깥을 우회하던 선박의 운항 길이는 최대 780킬로미터 단축되고 운항 시간도 30시간 정도 줄어듭니다.
<인터뷰> 아바스카반(타밀나두주 집권정당 간부) : "어업을 주로 하는 이 지역에 경제 발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공사 현장에 인접한 어촌 마을을 찾아가봤습니다. 도로도 없는 모래바닥을 아슬아슬하게 운행하는 트럭이 이 마을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1964년 사이클론으로 파괴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고기잡이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하가 생기면 마을은 선박의 중간 기착지가 돼 크게 발전할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칼리(주민) : "공사가 잘 된다면 마을이 예전처럼 활기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80% 정도 진행된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돼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주정부 모두 열의를 갖고 추진하던 이 사업이 중단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인도 신화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힌두교의 대표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따르면, 운하 공사가 벌어지는 현장에는 먼 옛날 라마 신이 놓은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스리랑카에 사는 악마 라바나가 라마 신의 부인을 납치해가자, 라마는 부인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스리랑카까지 다리를 건설합니다. 라마의 군대는 다리를 건너
스리랑카의 라바나를 물리치고 납치된 부인을 구출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힌두교도들은, 바다 바닥을 파내고 운하를 만들면 라마 신이 건설한 다리가 파괴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샹크차리(힌두교 사제) : "후세의 모든 왕이 다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라마 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라마 신에 대한 믿음은 힌두교도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마가 악마를 물리친 후 시바 신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는 곳에는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옵니다. 라마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사원에도 힌두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에 뜨는 돌을 전시하며 라마가 실제로 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원도 있습니다.
<인터뷰> 쿠시부 : "(라마는) 수양을 가장 많이 한 신이어서 모든 힌두교도가 숭배합니다."
이곳의 지형적 특성도 라마의 다리에 대한 믿음을 더하는 데 한 몫 합니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연결하는 것 같은 지형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음을 육안으로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은 마치 인도와 스리랑카가 연결된 것처럼 돼 있습니다.
<인터뷰> 비제이 :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봤는데 확실히 양 쪽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 같은 힌두교도의 믿음은 헌법소원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은 지난 8월 공사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공사를 두고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라마의 다리가 힌두교도의 믿음대로 실제로 건설된 다리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지형에 불과한 지에 대해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부터입니다.
지난 9월 인도 정부는 라마의 다리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명서를 법원에 제출하자 전국에서 규탄 시위가 이어졌고, 정부는 곧바로 소명서를 철회했습니다. 이후에도 라마의 다리는 제1야당이자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인 BJP가 정부를 공격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중요한 정치 갈등으로 비화됐습니다.
<인터뷰> 아디티나스(BJP 간부) : "정부가 너무 서두릅니다. 건설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입니다."
바위와 모래덩어리로 이뤄진 자연적 지형이라는 것이 라마의 다리에 대한 과학계와 고고학계의 정설입니다. 일부 힌두교도들도 라마 신이 실제 다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소수 의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라티남 : "라마를 믿지만 '라마의 다리'는 자연적인 지형일 뿐이다."
운하 공사 현장에서 멀지 않는 한 바닷가... 이른 새벽 힌두교도들이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며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11억 인구 가운데 힌두교도는 약 9억 명, 이들에게 수많은 힌두 신들은 삶의 안내자이자 죽음 후의 환생을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라마의 다리는 신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인터뷰> 스리고팔 : "'라마의 다리'를 파괴하는 것은 힌두교도의 정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추진되는 국책 사업이, 수천 년 전 형성된 신화를 뛰어넘지 못하는 나라 인도... IT 강국이자 인공위성을 쏘는 나라의 이 같은 현실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인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인도,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대규모 국책사업까지 중단시킨 인도 신화의 힘이 대단합니다. 첨단과학기술과 수천 년 신화의 충돌은 과거와 현재의 혼재 속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인도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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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현장보고] 신화와 싸우는 국책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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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7-12-02 08:17:57
<앵커 멘트>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대형 토목 공사가,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환경 파괴 논란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현상인데요.
지금 인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유로 바다에 뱃길을 내는 운하 사업이 중단돼 있습니다. 공사가 벌어지는 곳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이윱니다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도 현장보고, 오늘은 신화와 싸우는 국책사업을 이재강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푸른 물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와 스리랑카 사이의 바다입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인도 남부의 정취가 그대로 배어납니다. 바다의 깊이는 1미터에서 10미터 사이... 수심이 얕아 작은 어선을 제외한 큰 여객선이나 상선은 운항하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5천7백억 원을 들여 바다 바닥의 흙을 파내 뱃길을 만드는 운하 공사를 재작년 말 시작했습니다.
예정대로 내년 말 공사가 완료되면 지금까지 스리랑카 바깥을 우회하던 선박의 운항 길이는 최대 780킬로미터 단축되고 운항 시간도 30시간 정도 줄어듭니다.
<인터뷰> 아바스카반(타밀나두주 집권정당 간부) : "어업을 주로 하는 이 지역에 경제 발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공사 현장에 인접한 어촌 마을을 찾아가봤습니다. 도로도 없는 모래바닥을 아슬아슬하게 운행하는 트럭이 이 마을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1964년 사이클론으로 파괴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고기잡이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하가 생기면 마을은 선박의 중간 기착지가 돼 크게 발전할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칼리(주민) : "공사가 잘 된다면 마을이 예전처럼 활기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바람과 달리 80% 정도 진행된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돼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주정부 모두 열의를 갖고 추진하던 이 사업이 중단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한 인도 신화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힌두교의 대표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따르면, 운하 공사가 벌어지는 현장에는 먼 옛날 라마 신이 놓은 다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스리랑카에 사는 악마 라바나가 라마 신의 부인을 납치해가자, 라마는 부인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스리랑카까지 다리를 건설합니다. 라마의 군대는 다리를 건너
스리랑카의 라바나를 물리치고 납치된 부인을 구출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힌두교도들은, 바다 바닥을 파내고 운하를 만들면 라마 신이 건설한 다리가 파괴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샹크차리(힌두교 사제) : "후세의 모든 왕이 다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라마 신이 말씀하셨습니다."
라마 신에 대한 믿음은 힌두교도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마가 악마를 물리친 후 시바 신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는 곳에는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옵니다. 라마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또 다른 사원에도 힌두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에 뜨는 돌을 전시하며 라마가 실제로 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원도 있습니다.
<인터뷰> 쿠시부 : "(라마는) 수양을 가장 많이 한 신이어서 모든 힌두교도가 숭배합니다."
이곳의 지형적 특성도 라마의 다리에 대한 믿음을 더하는 데 한 몫 합니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연결하는 것 같은 지형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음을 육안으로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은 마치 인도와 스리랑카가 연결된 것처럼 돼 있습니다.
<인터뷰> 비제이 :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봤는데 확실히 양 쪽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 같은 힌두교도의 믿음은 헌법소원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은 지난 8월 공사 중단을 명령했습니다. 공사를 두고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라마의 다리가 힌두교도의 믿음대로 실제로 건설된 다리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지형에 불과한 지에 대해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부터입니다.
지난 9월 인도 정부는 라마의 다리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명서를 법원에 제출하자 전국에서 규탄 시위가 이어졌고, 정부는 곧바로 소명서를 철회했습니다. 이후에도 라마의 다리는 제1야당이자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인 BJP가 정부를 공격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하면서, 중요한 정치 갈등으로 비화됐습니다.
<인터뷰> 아디티나스(BJP 간부) : "정부가 너무 서두릅니다. 건설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할 것입니다."
바위와 모래덩어리로 이뤄진 자연적 지형이라는 것이 라마의 다리에 대한 과학계와 고고학계의 정설입니다. 일부 힌두교도들도 라마 신이 실제 다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소수 의견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라티남 : "라마를 믿지만 '라마의 다리'는 자연적인 지형일 뿐이다."
운하 공사 현장에서 멀지 않는 한 바닷가... 이른 새벽 힌두교도들이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며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11억 인구 가운데 힌두교도는 약 9억 명, 이들에게 수많은 힌두 신들은 삶의 안내자이자 죽음 후의 환생을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라마의 다리는 신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인터뷰> 스리고팔 : "'라마의 다리'를 파괴하는 것은 힌두교도의 정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와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추진되는 국책 사업이, 수천 년 전 형성된 신화를 뛰어넘지 못하는 나라 인도... IT 강국이자 인공위성을 쏘는 나라의 이 같은 현실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려는 인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인도,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대규모 국책사업까지 중단시킨 인도 신화의 힘이 대단합니다. 첨단과학기술과 수천 년 신화의 충돌은 과거와 현재의 혼재 속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인도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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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강 기자 run200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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