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상징 ‘숭례문’ 역사

입력 2008.02.1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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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숭례문은 조선왕조가 한양 천도 후 짓기 시작해 1398년에 완성됐으며 이후 600여년 동안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김성모 기자가 국보 1호 숭례문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조선 왕조는 수도 한양의 정문으로 숭례문을 세웠습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6년 뒤인 1398년이었습니다.

북한산과 경복궁에서 일직선상인 수도의 중심축에 위치해 도성 8문 중 가장 중요한 정문이었습니다.

세종 시대인 1448년에 크게 개축됐으며 성종 당시인 1479년에도 대규모 보수공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숭례문은 문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됩니다.

일제는 전찻길과 도로를 내면서 1907년 숭례문 좌우 성벽을 철거해 숭례문은 문루만 남게 됩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일부 피해를 입고 1961년 대규모 해체와 보수공사를 받았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됩니다.

1996년에는 일제가 '남대문'으로 불렀던 이름도 원래의 '숭례문'으로 바뀝니다.

또 도로에 갖혀 있다 3년 전부터는 다시 시민의 곁으로 돌아옵니다.

2005년 숭례문 주변에 광장이 조성되고, 2006년에는 100년 만에 중앙 출입문인 홍예문이 개방됐습니다.

숭례문의 현판은 관악산에 있는 불의 기운을 막기 위해 양평대군이 세로로 썼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그러나 세워진지 600여년 뒤 숭례문은 불길에 싸여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KBS 뉴스 김성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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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상징 ‘숭례문’ 역사
    • 입력 2008-02-11 06:06:05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숭례문은 조선왕조가 한양 천도 후 짓기 시작해 1398년에 완성됐으며 이후 600여년 동안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김성모 기자가 국보 1호 숭례문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조선 왕조는 수도 한양의 정문으로 숭례문을 세웠습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6년 뒤인 1398년이었습니다. 북한산과 경복궁에서 일직선상인 수도의 중심축에 위치해 도성 8문 중 가장 중요한 정문이었습니다. 세종 시대인 1448년에 크게 개축됐으며 성종 당시인 1479년에도 대규모 보수공사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숭례문은 문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됩니다. 일제는 전찻길과 도로를 내면서 1907년 숭례문 좌우 성벽을 철거해 숭례문은 문루만 남게 됩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일부 피해를 입고 1961년 대규모 해체와 보수공사를 받았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됩니다. 1996년에는 일제가 '남대문'으로 불렀던 이름도 원래의 '숭례문'으로 바뀝니다. 또 도로에 갖혀 있다 3년 전부터는 다시 시민의 곁으로 돌아옵니다. 2005년 숭례문 주변에 광장이 조성되고, 2006년에는 100년 만에 중앙 출입문인 홍예문이 개방됐습니다. 숭례문의 현판은 관악산에 있는 불의 기운을 막기 위해 양평대군이 세로로 썼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그러나 세워진지 600여년 뒤 숭례문은 불길에 싸여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KBS 뉴스 김성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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