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 파키스탄에 민주주의는 오는가?

입력 2008.02.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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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번 주 코소보 독립과 함께 국제 뉴스의 초점이었던 파키스탄의 총선거가 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무샤라프 군사정권에 대한 심판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열망이 모아진 결과라 하겠는데요.

하지만 무샤라프의 거취를 둘러싼 예측 불허의 정국과, 갈수록 극렬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등 산적한 현안들 때문에 파키스탄의 민주화는 멀기만 해보입니다.

이재강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드 외곽의 라왈핀디...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되기 전까지 이 곳은 외부인에게 이름조차 낯선 도시였습니다. 부토 사망 후 53일... 이 곳에서도 총선 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인터뷰> 살마나딤(유권자) : "큰 희망은 없지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집계된 선거 결과는 야당의 압승으로 드러났습니다. 암살된 부토 전총리의 파키스탄인민당이 272석의 연방 의석 가운데 87석으로 원내 제1당, 샤리프 전총리의 파키스탄무슬림리그N이 67석으로 제2당에 올랐습니다. 기존 여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Q는 40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리아스(시민/19일 9시) :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파키스탄 국민의 승리입니다."

두 야당의 과반 압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사법부 무력화 등 지난해 무샤라프 대통령이 취한 국정 유린 행위에 대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아가 199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나라를 통치해온 무샤라프에게 국민들이 내놓은 최종 성적표이기도 합니다. 민주 세력으로 분류되는 야당들이 승리했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운명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 게임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가장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당은 이번에 제2당이 된 샤리프당입니다. 1999년 당시 군참모총장이던 무샤라프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오랜 해외 유랑 생활을 해온 샤리프 전총리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무샤라프를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샤리프(파키스탄무슬림리그N 지도자) : "무샤라프는 국민이 원하면 떠나겠다고 해왔는데 이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제1당이 됐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파키스탄인민당은 오랜 정치적 라이벌인 샤리프와 함께 공동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자르다리(파키스탄인민당 의장) : "의회에서 샤리프와 함께 할 것입니다. 모든 세력과 힘을 합칠 것입니다."

의회는 잃었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대통령과 새로운 집권 세력간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자, 무샤라프를 핵심 파트너로 삼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온 미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인터뷰> 이스라르 샤(정치평론가) : "파키스탄 정치인들은 미국의 뜻에 도전할 만큼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총선거 이후 파키스탄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알케에다, 탈레반과 연계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입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파키스탄 국민들은 이슬람 종교정당을 몰락시킴으로써,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분명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부토 전총리가 암살당한 현장입니다. 지금 이곳은 민주화의 상징적인 장소가 돼 있습니다. 이 사건은 파키스탄 땅 어디든, 그 누구든,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줬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파키스탄의 북서부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 세력은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무샤라프와 주요 야당들 모두 미국의 추종 세력에 불과하고, 선거를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는 파괴 대상입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끊임없는 폭탄 테러로 선거를 방해하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모함마드 사디크(농부) : "그들은 국가와 민주주의, 이슬람의 적입니다. 무슬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파키스탄인민당은 무샤라프의 강공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보고, 극단주의 그룹과 대화를 병행할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세력과 원리주의 세력은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향후 테러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인터뷰> 이스라드 마흐무드(파키스탄 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접근 방식이 다소 달라질 수는 있지만 무장세력에 대한 정책 골격은 유지될 것입니다."

곧 정부를 맡게 될 부토당과 샤리프당이 과연 국민의 신뢰 속에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지주 가문을 이뤄 대대로 일가 친척끼리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세습해온 이들은, 과거 정권을 잡았을 때도 국민 다수의 이익보다는 친인척의 이익을 위해 일해 온 전력이 있습니다.

집권 때 리베이트를 10%씩 받아챙겨 '미스터 10%'라는 별명이 붙은 파키스탄인민당 의장 자르다리를 비롯해, 주요 야당 모두 부패한 집단이라는 낙인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무라드*시민 : "독재자든 야당이든 똑같습니다. 집권하면 돈만 챙기고 떠납니다. 때로는 다시 집권하기도 하지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과거 4명의 군부 통치자에 의해 번번이 좌절된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는 이번 총선거를 통해 새로운 갈림길에 섰습니다. 군부 통치에서 민간 통치로 이행한다는 점에서는 커다른 진전입니다. 그러나 전에도 되풀이된 단순한 지배층의 교체를 넘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될지...강력한 군부 통치자를 표로 심판한 파키스탄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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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 파키스탄에 민주주의는 오는가?
    • 입력 2008-02-24 09:49:4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이번 주 코소보 독립과 함께 국제 뉴스의 초점이었던 파키스탄의 총선거가 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무샤라프 군사정권에 대한 심판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열망이 모아진 결과라 하겠는데요. 하지만 무샤라프의 거취를 둘러싼 예측 불허의 정국과, 갈수록 극렬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등 산적한 현안들 때문에 파키스탄의 민주화는 멀기만 해보입니다. 이재강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드 외곽의 라왈핀디...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되기 전까지 이 곳은 외부인에게 이름조차 낯선 도시였습니다. 부토 사망 후 53일... 이 곳에서도 총선 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인터뷰> 살마나딤(유권자) : "큰 희망은 없지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집계된 선거 결과는 야당의 압승으로 드러났습니다. 암살된 부토 전총리의 파키스탄인민당이 272석의 연방 의석 가운데 87석으로 원내 제1당, 샤리프 전총리의 파키스탄무슬림리그N이 67석으로 제2당에 올랐습니다. 기존 여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Q는 40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리아스(시민/19일 9시) :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파키스탄 국민의 승리입니다." 두 야당의 과반 압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사법부 무력화 등 지난해 무샤라프 대통령이 취한 국정 유린 행위에 대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나아가 199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나라를 통치해온 무샤라프에게 국민들이 내놓은 최종 성적표이기도 합니다. 민주 세력으로 분류되는 야당들이 승리했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운명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 게임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가장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당은 이번에 제2당이 된 샤리프당입니다. 1999년 당시 군참모총장이던 무샤라프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오랜 해외 유랑 생활을 해온 샤리프 전총리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무샤라프를 축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샤리프(파키스탄무슬림리그N 지도자) : "무샤라프는 국민이 원하면 떠나겠다고 해왔는데 이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제1당이 됐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파키스탄인민당은 오랜 정치적 라이벌인 샤리프와 함께 공동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자르다리(파키스탄인민당 의장) : "의회에서 샤리프와 함께 할 것입니다. 모든 세력과 힘을 합칠 것입니다." 의회는 잃었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대통령과 새로운 집권 세력간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자, 무샤라프를 핵심 파트너로 삼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온 미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인터뷰> 이스라르 샤(정치평론가) : "파키스탄 정치인들은 미국의 뜻에 도전할 만큼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총선거 이후 파키스탄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알케에다, 탈레반과 연계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입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파키스탄 국민들은 이슬람 종교정당을 몰락시킴으로써,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분명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부토 전총리가 암살당한 현장입니다. 지금 이곳은 민주화의 상징적인 장소가 돼 있습니다. 이 사건은 파키스탄 땅 어디든, 그 누구든,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줬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파키스탄의 북서부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 세력은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무샤라프와 주요 야당들 모두 미국의 추종 세력에 불과하고, 선거를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는 파괴 대상입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끊임없는 폭탄 테러로 선거를 방해하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모함마드 사디크(농부) : "그들은 국가와 민주주의, 이슬람의 적입니다. 무슬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파키스탄인민당은 무샤라프의 강공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보고, 극단주의 그룹과 대화를 병행할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세력과 원리주의 세력은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향후 테러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인터뷰> 이스라드 마흐무드(파키스탄 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접근 방식이 다소 달라질 수는 있지만 무장세력에 대한 정책 골격은 유지될 것입니다." 곧 정부를 맡게 될 부토당과 샤리프당이 과연 국민의 신뢰 속에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지주 가문을 이뤄 대대로 일가 친척끼리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세습해온 이들은, 과거 정권을 잡았을 때도 국민 다수의 이익보다는 친인척의 이익을 위해 일해 온 전력이 있습니다. 집권 때 리베이트를 10%씩 받아챙겨 '미스터 10%'라는 별명이 붙은 파키스탄인민당 의장 자르다리를 비롯해, 주요 야당 모두 부패한 집단이라는 낙인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무라드*시민 : "독재자든 야당이든 똑같습니다. 집권하면 돈만 챙기고 떠납니다. 때로는 다시 집권하기도 하지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과거 4명의 군부 통치자에 의해 번번이 좌절된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는 이번 총선거를 통해 새로운 갈림길에 섰습니다. 군부 통치에서 민간 통치로 이행한다는 점에서는 커다른 진전입니다. 그러나 전에도 되풀이된 단순한 지배층의 교체를 넘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될지...강력한 군부 통치자를 표로 심판한 파키스탄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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