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후 오늘] 참사 딛고 키워 낸 ‘축구 열정’

입력 2008.02.26 (20:49) 수정 2008.02.2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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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5년 전이죠,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면서 제2의 박지성, 이영표를 꿈꾸던 어린이 9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습니다.

뉴스 후 오늘에서는 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어린 선수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식지 않는 축구에 대한 사랑을 취재했습니다.

양민효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적과도 같았던 월드컵 4강, 온 국민에게 축구는, 희망이었습니다.

2003년 3월 26일 밤 11시 20분,

<녹취> "천안의 한 초등학교 불이 나서 초등학생 8명이 숨졌습니다...."

<녹취> "합숙소 화재 현장은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과 15분 사이에, 24명 가운데 9명이 숨졌습니다.

고된 경기를 마친 뒤 유달리 깊은 잠에 빠졌던 그날 밤,

<녹취>조덕근(당시 축구부원):"세번인가 펑펑펑 했어요. 유리창도 막 깨지고 그랬어요."

원인은 전기 합선, 부실한 불법 건축물이 빚어낸 인재였습니다.

<현장음>"너무나도 사랑했던 친구들이고, 형이며 동생이었던...."

어린 꿈나무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한국 축구계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슬픔은 특히 화마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은 15명에겐, 상처가 되고 악몽이 되어 계속 남아있습니다.

<인터뷰>윤장후(당시 부상 축구부원):"뜨거워 가지고 펄쩍펄쩍 뛰다가...그때부터 기억이 없어요. 일어났는데 병원이었어요."

8번의 고통스런 이식수술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아픔은 아직도 온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터뷰>윤장후(당시 부상 축구부원):"피범벅이었죠, 울퉁불퉁하고...처음엔 잘라야 한다고...그랬는데 아빠가 죽으면 죽었지 그건 안된다고...지금은 이렇게 됐죠."

중앙공격수가 되겠다던 꿈은 접은 지 오래지만, 아예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현실은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고이게 합니다.

사고 뒤 윤장후군처럼 부상이 심했던 8명은 축구를 포기해야 했고, 4명은 다른 학교로, 3명은 축구 유학을 위해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해단 위기에 몰린 축구부에 남은 사람은 단 1명,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선수, 힘찬 드리블과, 정확하고 여유있는 패스, 신평고등학교 축구부의 홍영동 선수입니다.

<현장음>"1대 1이에요, 한골 넣었어요, 기분 좋아요."

골을 넣어도 담담한 표정.... '애늙은이'라는 별명처럼 홍영동 선수는 말이 없고 내성적입니다.

함께 뛰는 3살 터울의 사촌동생이 마음을 터놓는 유일한 상대!

말수가 줄어든 것은 화재사고 뒤부터입니다.

<인터뷰>홍달표(홍영동 선수 아버지):"가운으로 덮어서 침대에 넣어놨더라구요. 쳐들어보니까 영동이도 있고 죽은 학생도 있고...희망이 없다고, 그래서 살기가 어렵다고..."

당시 나이 12살... 영동군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외상 후 증후군으로 최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이정란(홍영동 선수 어머니):"어머니 1년 가까이를 전기 코드 같은 걸 못 꼽게 했어요. 항상 뽑으라고 하고...헛것도 많이 봤나봐요, 꿈도 많이 꿨다고 그러고..."

폐가 손상돼 정상적인 생활조차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를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것은 축구에 대한 꿈과 사랑이었습니다.

영동군은 사고 1년 뒤 재창단된 축구부에서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홍영동(당시 천안초 축구부원):"걷고 뛰다가 힘들면 쉬고...괜찮아지면 또 운동하고..몸이 예전보다 안좋으니까 속상했는데 열심히 운동해서 옛날처럼 다시 돌아와야겠다..."

참사의 아픔을 딛고, 천안초등학교 축구부는 전국대회 4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영동군은 힘들 때마다,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인터뷰>홍영동:"같이 축구했으면...좋았을 것 같아요. 운동하다가 힘들 때,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올해 17살 '애늙은이' 홍영동 선수는 이제 더 이상 동료 선수들을 제치고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인터뷰>홍영동:"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더 냈으면 좋겠어요."

KBS 뉴스 양민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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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후 오늘] 참사 딛고 키워 낸 ‘축구 열정’
    • 입력 2008-02-26 20:23:02
    • 수정2008-02-26 21:17:24
    뉴스타임
<앵커 멘트> 5년 전이죠,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면서 제2의 박지성, 이영표를 꿈꾸던 어린이 9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습니다. 뉴스 후 오늘에서는 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어린 선수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식지 않는 축구에 대한 사랑을 취재했습니다. 양민효 기자입니다. <리포트> 기적과도 같았던 월드컵 4강, 온 국민에게 축구는, 희망이었습니다. 2003년 3월 26일 밤 11시 20분, <녹취> "천안의 한 초등학교 불이 나서 초등학생 8명이 숨졌습니다...." <녹취> "합숙소 화재 현장은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과 15분 사이에, 24명 가운데 9명이 숨졌습니다. 고된 경기를 마친 뒤 유달리 깊은 잠에 빠졌던 그날 밤, <녹취>조덕근(당시 축구부원):"세번인가 펑펑펑 했어요. 유리창도 막 깨지고 그랬어요." 원인은 전기 합선, 부실한 불법 건축물이 빚어낸 인재였습니다. <현장음>"너무나도 사랑했던 친구들이고, 형이며 동생이었던...." 어린 꿈나무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한국 축구계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슬픔은 특히 화마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은 15명에겐, 상처가 되고 악몽이 되어 계속 남아있습니다. <인터뷰>윤장후(당시 부상 축구부원):"뜨거워 가지고 펄쩍펄쩍 뛰다가...그때부터 기억이 없어요. 일어났는데 병원이었어요." 8번의 고통스런 이식수술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아픔은 아직도 온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터뷰>윤장후(당시 부상 축구부원):"피범벅이었죠, 울퉁불퉁하고...처음엔 잘라야 한다고...그랬는데 아빠가 죽으면 죽었지 그건 안된다고...지금은 이렇게 됐죠." 중앙공격수가 되겠다던 꿈은 접은 지 오래지만, 아예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현실은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고이게 합니다. 사고 뒤 윤장후군처럼 부상이 심했던 8명은 축구를 포기해야 했고, 4명은 다른 학교로, 3명은 축구 유학을 위해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해단 위기에 몰린 축구부에 남은 사람은 단 1명,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선수, 힘찬 드리블과, 정확하고 여유있는 패스, 신평고등학교 축구부의 홍영동 선수입니다. <현장음>"1대 1이에요, 한골 넣었어요, 기분 좋아요." 골을 넣어도 담담한 표정.... '애늙은이'라는 별명처럼 홍영동 선수는 말이 없고 내성적입니다. 함께 뛰는 3살 터울의 사촌동생이 마음을 터놓는 유일한 상대! 말수가 줄어든 것은 화재사고 뒤부터입니다. <인터뷰>홍달표(홍영동 선수 아버지):"가운으로 덮어서 침대에 넣어놨더라구요. 쳐들어보니까 영동이도 있고 죽은 학생도 있고...희망이 없다고, 그래서 살기가 어렵다고..." 당시 나이 12살... 영동군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외상 후 증후군으로 최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인터뷰>이정란(홍영동 선수 어머니):"어머니 1년 가까이를 전기 코드 같은 걸 못 꼽게 했어요. 항상 뽑으라고 하고...헛것도 많이 봤나봐요, 꿈도 많이 꿨다고 그러고..." 폐가 손상돼 정상적인 생활조차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를 기적적으로 소생시킨 것은 축구에 대한 꿈과 사랑이었습니다. 영동군은 사고 1년 뒤 재창단된 축구부에서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홍영동(당시 천안초 축구부원):"걷고 뛰다가 힘들면 쉬고...괜찮아지면 또 운동하고..몸이 예전보다 안좋으니까 속상했는데 열심히 운동해서 옛날처럼 다시 돌아와야겠다..." 참사의 아픔을 딛고, 천안초등학교 축구부는 전국대회 4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영동군은 힘들 때마다,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인터뷰>홍영동:"같이 축구했으면...좋았을 것 같아요. 운동하다가 힘들 때,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올해 17살 '애늙은이' 홍영동 선수는 이제 더 이상 동료 선수들을 제치고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인터뷰>홍영동:"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더 냈으면 좋겠어요." KBS 뉴스 양민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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