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화백 역경 이긴 예술혼

입력 2001.01.23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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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으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한 고 김 화백은 특히 청각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한상덕 기자입니다.
⊙기자: 고 김기창 화백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한국 화단의 거목이었습니다.
7살 때 장티푸스로 청각장애자가 된 운보는 이당 김 운 화백의 사사를 받으면서 화가의 길을 걷습니다.
인간적 역경을 예술적 투혼으로 이겨낸 고 김 화백은 17살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초기에는 인물 중심의 세필 채색화를 주로 그렸으며 70년대에는 청록산수와 바보산수 등 수많은 걸작을 내놓았습니다.
⊙최병식(미술평론가):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를 잇는 거장으로서 한 획을 그었으며 장애인들을 위해서도 평생 동안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기자: 동료 화가이자 평생 반려자였던 부인 박래현이 타계한 뒤 그의 화풍은 선과 점, 시리즈로 변신했습니다.
⊙故 김기창 화백 생전 육성: (한국화는) 선과 점이 중요해. 그것을 어떻게 조형화하느냐가 과제야.
⊙기자: 고 김기창 화백은 특히 농아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운보공방을 세워 도자기기술을 가르치고 농아복지회를 국제농아연맹에 가입시키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년에 걸친 투병 끝에 운보 김기창은 끝내 세상을 떠났어도 그가 남긴 예술의 열정, 박애정신은 지워지지 않는 족적으로 남았습니다.
KBS뉴스 한상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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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창 화백 역경 이긴 예술혼
    • 입력 2001-01-23 21:00:00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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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바보산수, 청록산수 등으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한 고 김 화백은 특히 청각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한상덕 기자입니다. ⊙기자: 고 김기창 화백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한국 화단의 거목이었습니다. 7살 때 장티푸스로 청각장애자가 된 운보는 이당 김 운 화백의 사사를 받으면서 화가의 길을 걷습니다. 인간적 역경을 예술적 투혼으로 이겨낸 고 김 화백은 17살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초기에는 인물 중심의 세필 채색화를 주로 그렸으며 70년대에는 청록산수와 바보산수 등 수많은 걸작을 내놓았습니다. ⊙최병식(미술평론가):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를 잇는 거장으로서 한 획을 그었으며 장애인들을 위해서도 평생 동안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기자: 동료 화가이자 평생 반려자였던 부인 박래현이 타계한 뒤 그의 화풍은 선과 점, 시리즈로 변신했습니다. ⊙故 김기창 화백 생전 육성: (한국화는) 선과 점이 중요해. 그것을 어떻게 조형화하느냐가 과제야. ⊙기자: 고 김기창 화백은 특히 농아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운보공방을 세워 도자기기술을 가르치고 농아복지회를 국제농아연맹에 가입시키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수년에 걸친 투병 끝에 운보 김기창은 끝내 세상을 떠났어도 그가 남긴 예술의 열정, 박애정신은 지워지지 않는 족적으로 남았습니다. KBS뉴스 한상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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