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말레이시아, 다민족 분열위기

입력 2008.04.27 (09:54) 수정 2008.04.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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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말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에서 민족 간 갈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족 우대 정책에 대해서 소수계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인데요.

최근 실시된 총선에서 촉발된 소수 민족들의 분노가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말레이시아는 지금 분열이냐, 통합이냐, 그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이근우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5세기 이래 동서 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했던 말라카 왕국. 수많은 민족이 발을 디디면서 저마다의 문화가 어우러졌습니다. 지금의 말레이시아는 그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조화 속의 번영을 추구해 왔습니다.

뾰족한 첨탑의 트윈 타워로 상징되는 수도 콸라룸푸르.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 문명이 공존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의 60%는 말레이족, 30%가 중국계이고 10%는 인도계입니다.

<인터뷰> 코마라구루(인도계) : "우리들이 바라는 미래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공정한 정부를 갖는 것이죠. 그럴 때 모든 사람이 선과 조화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평온한 거리의 모습과 달리 말레이시아 사회 내부는 지금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콸라룸푸르 외곽에 위치한 동남아 최대의 중국식 사원 천후궁,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말레이시아에 뿌리를 내려온 중국계들입니다. 그러나 중국계라는 이유로 인해 때론 불이익을 떠안고 살아야 합니다.

<인터뷰> 얍(중국계) :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정부가 거둬들이는 수익이 말레이 민족에게 먼저 제공되고 우리 중국계는 그 다음입니다."

'부미푸트라'! 타민족의 지나친 세 확산을 막기 위해 토착 말레이족을 우대한다는 정책입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도 일자리를 얻을 때도 말레이족을 위한 할당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국민이지만 핏줄에 따라 구분되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안 말레이, 말레이시안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인디안.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날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말입니다. 소수계인 중국계와 인도계는 이제 자신들도 다같은 말레이시아인으로 불려지기를 원합니다.

힌두교 무르간 신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바투 동굴. 여러 형상의 신상들을 모셔놓고 고행의 수도를 하는 사제들이 참배객들을 맞습니다. 종교 사원이지만 경찰은 늘 이 곳을 주시합니다.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최빈곤층을 이루는 인도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라트만(인도계) : "인도계를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정치인들은 세 민족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인도계에도 일자리를 줘야 합니다."

인도계의 불만은 결국 집단 시위로 번졌습니다.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 진압 작전 속에서도 인도계인들은 시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인터뷰> 스리라마(인도계) : "우리는 이 나라에서 노예처럼 취급돼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고 우리의 후손들도 이 땅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돼 가겠습니까!"

말레이시아에서는 사업 허가 등을 받기 위해 자신의 혈통과 종교를 기재해야 합니다. 소수계에 대한 차별 조치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파라메스와리(인도계 변호사) : "이제는 우리 모두가 말레이시아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할 때입니다. 인도계나 중국계로 구분돼서는 안 되죠. 우리는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부가 우리를 계속 구분해 왔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상기시켜 온 거죠."

정치 활동 금지에서 풀려나 화려하게 부활한 전 부총리 안와르, 자신이 말레이계이면서도 말레이 우대 정책이 국가 통합을 저해한다고 주장해 온 안와르는 지난달 총선에서 사실상 야당을 이끌었습니다.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은 표로 결집됐습니다.

<인터뷰> 친(중국계) : "현 정부는 부패했고 투명하지 못하며 비민주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를 바꾸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야당인 민주행동당은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더 이상 분열되지 않고 통합돼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인터뷰> 퐁퀴룬(민주행동당 의원) : "야당으로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말레이시아인들을 위한 말레이시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출신 민족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합니다."

총선 후 이달 말 첫 회기가 시작될 말레이시아 국회, 18석에 불과했던 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무려 80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집권 여당은 36년만에 처음으로 안정 의석이라고 할 수 있는 3분 2 의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그 동안의 정치 안정을 기반으로 순항해 온 말레이시아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말레이시아 정국은 혼미한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민족 간 갈등의 불씨를 안아온 말레이시아, 그동안 언급조차 금기시 돼온 말레이족 우대 정책 '부미푸트라'는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인터뷰> 카디자흐(말레이시아 UM 대학 공공 정책 연구소장) : "이번 선거 결과의 중요한 의의는 말레이시아에 새로운 투표 행태의 장이 마련됐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서서 실용주의에 근거해 투표를 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지금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다민족 사회란 특성은 국가 통합을 막는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인들이 민족과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로 간다면 그 시너지는 새로운 번영을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의 고민은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외국인 백만명 시대를 넘어섰는데요.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는 과연 얼마나 타 민족을 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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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 말레이시아, 다민족 분열위기
    • 입력 2008-04-27 08:00:37
    • 수정2008-04-28 09:37:19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말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에서 민족 간 갈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족 우대 정책에 대해서 소수계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인데요. 최근 실시된 총선에서 촉발된 소수 민족들의 분노가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말레이시아는 지금 분열이냐, 통합이냐, 그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이근우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5세기 이래 동서 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했던 말라카 왕국. 수많은 민족이 발을 디디면서 저마다의 문화가 어우러졌습니다. 지금의 말레이시아는 그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조화 속의 번영을 추구해 왔습니다. 뾰족한 첨탑의 트윈 타워로 상징되는 수도 콸라룸푸르.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 문명이 공존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의 60%는 말레이족, 30%가 중국계이고 10%는 인도계입니다. <인터뷰> 코마라구루(인도계) : "우리들이 바라는 미래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공정한 정부를 갖는 것이죠. 그럴 때 모든 사람이 선과 조화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평온한 거리의 모습과 달리 말레이시아 사회 내부는 지금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콸라룸푸르 외곽에 위치한 동남아 최대의 중국식 사원 천후궁,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말레이시아에 뿌리를 내려온 중국계들입니다. 그러나 중국계라는 이유로 인해 때론 불이익을 떠안고 살아야 합니다. <인터뷰> 얍(중국계) :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정부가 거둬들이는 수익이 말레이 민족에게 먼저 제공되고 우리 중국계는 그 다음입니다." '부미푸트라'! 타민족의 지나친 세 확산을 막기 위해 토착 말레이족을 우대한다는 정책입니다. 대학에 들어갈 때도 일자리를 얻을 때도 말레이족을 위한 할당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국민이지만 핏줄에 따라 구분되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안 말레이, 말레이시안 차이니즈, 말레이시안 인디안.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날때부터 자신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말입니다. 소수계인 중국계와 인도계는 이제 자신들도 다같은 말레이시아인으로 불려지기를 원합니다. 힌두교 무르간 신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바투 동굴. 여러 형상의 신상들을 모셔놓고 고행의 수도를 하는 사제들이 참배객들을 맞습니다. 종교 사원이지만 경찰은 늘 이 곳을 주시합니다.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최빈곤층을 이루는 인도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라트만(인도계) : "인도계를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정치인들은 세 민족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인도계에도 일자리를 줘야 합니다." 인도계의 불만은 결국 집단 시위로 번졌습니다.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 진압 작전 속에서도 인도계인들은 시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인터뷰> 스리라마(인도계) : "우리는 이 나라에서 노예처럼 취급돼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났고 우리의 후손들도 이 땅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돼 가겠습니까!" 말레이시아에서는 사업 허가 등을 받기 위해 자신의 혈통과 종교를 기재해야 합니다. 소수계에 대한 차별 조치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파라메스와리(인도계 변호사) : "이제는 우리 모두가 말레이시아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할 때입니다. 인도계나 중국계로 구분돼서는 안 되죠. 우리는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부가 우리를 계속 구분해 왔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상기시켜 온 거죠." 정치 활동 금지에서 풀려나 화려하게 부활한 전 부총리 안와르, 자신이 말레이계이면서도 말레이 우대 정책이 국가 통합을 저해한다고 주장해 온 안와르는 지난달 총선에서 사실상 야당을 이끌었습니다.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은 표로 결집됐습니다. <인터뷰> 친(중국계) : "현 정부는 부패했고 투명하지 못하며 비민주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를 바꾸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야당인 민주행동당은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가 더 이상 분열되지 않고 통합돼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인터뷰> 퐁퀴룬(민주행동당 의원) : "야당으로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말레이시아인들을 위한 말레이시아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출신 민족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합니다." 총선 후 이달 말 첫 회기가 시작될 말레이시아 국회, 18석에 불과했던 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무려 80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집권 여당은 36년만에 처음으로 안정 의석이라고 할 수 있는 3분 2 의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그 동안의 정치 안정을 기반으로 순항해 온 말레이시아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됐습니다. 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말레이시아 정국은 혼미한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민족 간 갈등의 불씨를 안아온 말레이시아, 그동안 언급조차 금기시 돼온 말레이족 우대 정책 '부미푸트라'는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인터뷰> 카디자흐(말레이시아 UM 대학 공공 정책 연구소장) : "이번 선거 결과의 중요한 의의는 말레이시아에 새로운 투표 행태의 장이 마련됐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서서 실용주의에 근거해 투표를 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지금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다민족 사회란 특성은 국가 통합을 막는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인들이 민족과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로 간다면 그 시너지는 새로운 번영을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의 고민은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외국인 백만명 시대를 넘어섰는데요.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는 과연 얼마나 타 민족을 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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