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년 맞은 황동규 시인

입력 2008.09.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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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즐거운 편지' 중)
젊은이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연애시 중 하나인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70) 시인이 고등학생 때 연상의 여인을 향해 지었다는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 11월호에 실리면서 3회 추천이 완료돼 황 시인이 문단에 나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의 일이다.
등단 50년을 맞아 최근 7-8년간 쓴 글들을 묶은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휴먼앤북스 펴냄)을 낸 시인은 "늙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로 등단 50년의 소회를 담담하게 전했다.
"나이 들려면 주변 정리도 하고 준비를 해야하는데 늙을 준비 할 새도 없었네요. 등단 50주년도 주위에서 50주년, 50주년 하니까 알았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생때부터 시를 썼던 시인은 대학교 2학년인 1958년 미당 서정주에 의해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차례로 추천되며 등단했다. 1968년부터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도 재직하면서도 시선집을 제외하고 열세 권의 시집을 꾸준히 내며 역동적인 시 세계를 보여왔다.
시인하면 '국민 연애시'처럼 돼 버린 '즐거운 편지'와 '풍장' 연작시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것 외에도 첫 시집 '어떤 개인 날'부터 2006년에 낸 '꽃의 고요'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끊임 없이 시 세계를 변화시키며 한국 현대시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왔다.
초기 시에서 나타난 체제 비판의 목소리와 1982년부터 14년에 걸친 작업 끝에 70편으로 완성된 '풍장' 연작에서 보여준 죽음에 대한 탐구, 최근 시편들 속에서 보여준 종교에 대한 사색 등은 시인의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를 그대로 드러낸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어느 한 곳에서 만족하고 머문 적이 없고 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고 말한다.
등단작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거기에 안주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기 때문에 최근 선보인 작품들에 대한 자타의 평가도 좋다.
"부모 입장에서 어느 자식이 특히 예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작년에 발표한 '무굴일기'에 애착이 갑니다. 내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될 때 쓴 작품이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은 감퇴하고 반대로 상상력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자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라 잊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 입력해두느라 잠을 설칠 때도 많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황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장남이다. 그리고 시인의 딸 시내 씨가 지난해 산문집을 내면서 보기 드문 3대 문인 가족이 됐다.
피 속에 흐르는 타고난 문학적 재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대를 이어 문학의 길을 걷는 데에 '아버지의 후광'은 없었다. 오히려 황순원 선생도, 시인 자신도 자식이 문학의 길을 걷는 것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활동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일이라면 문학은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만족을 얻는 일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말린 것도, 제가 딸을 말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시작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문단에서 50년을 보낸 큰 어른격인 시인은 최근 문학상 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시인은 "요새 젊은 시인들에게 상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일찍부터 상을 받고 각광을 받으면 '사막화'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젊은 시인들에게 주는 상, 중견시인에게 주는 상, 원로들에게 주는 상 등으로 나뉘었으면 합니다"
이번 산문집에는 이러한 시인의 소신을 담은 글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건져낸 단상들을 담은 글들이 수록돼 있다.
음악 저널에 실었던 음반 해설을 비롯해 음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조예를 엿볼 수 있는 글들도 많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까지 작곡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는 시인은 그 당시 쉰일곱 해를 산 베토벤보다 꼭 10년만 더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베토벤보다 10년을 더 산 이후에도 시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마음 가짐이 바뀌었다. 그 이후의 삶을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앞으로 꼭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고요. 앞으로도 활기 있게 이 덤 인생을 누릴 생각입니다"
별다른 기념 행사 없이 지인들과 술이나 한 잔 하며 등단 50년을 보낼 계획이라는 시인은 최근 발표한 시들을 모아 내년 상반기께 신작 시집을 들고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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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단 50년 맞은 황동규 시인
    • 입력 2008-09-24 08:52:34
    연합뉴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즐거운 편지' 중) 젊은이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연애시 중 하나인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70) 시인이 고등학생 때 연상의 여인을 향해 지었다는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 11월호에 실리면서 3회 추천이 완료돼 황 시인이 문단에 나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의 일이다. 등단 50년을 맞아 최근 7-8년간 쓴 글들을 묶은 산문집 '삶의 향기 몇 점'(휴먼앤북스 펴냄)을 낸 시인은 "늙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로 등단 50년의 소회를 담담하게 전했다. "나이 들려면 주변 정리도 하고 준비를 해야하는데 늙을 준비 할 새도 없었네요. 등단 50주년도 주위에서 50주년, 50주년 하니까 알았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생때부터 시를 썼던 시인은 대학교 2학년인 1958년 미당 서정주에 의해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차례로 추천되며 등단했다. 1968년부터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도 재직하면서도 시선집을 제외하고 열세 권의 시집을 꾸준히 내며 역동적인 시 세계를 보여왔다. 시인하면 '국민 연애시'처럼 돼 버린 '즐거운 편지'와 '풍장' 연작시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것 외에도 첫 시집 '어떤 개인 날'부터 2006년에 낸 '꽃의 고요'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끊임 없이 시 세계를 변화시키며 한국 현대시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왔다. 초기 시에서 나타난 체제 비판의 목소리와 1982년부터 14년에 걸친 작업 끝에 70편으로 완성된 '풍장' 연작에서 보여준 죽음에 대한 탐구, 최근 시편들 속에서 보여준 종교에 대한 사색 등은 시인의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를 그대로 드러낸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어느 한 곳에서 만족하고 머문 적이 없고 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고 말한다. 등단작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거기에 안주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기 때문에 최근 선보인 작품들에 대한 자타의 평가도 좋다. "부모 입장에서 어느 자식이 특히 예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작년에 발표한 '무굴일기'에 애착이 갑니다. 내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될 때 쓴 작품이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은 감퇴하고 반대로 상상력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자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라 잊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 입력해두느라 잠을 설칠 때도 많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황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장남이다. 그리고 시인의 딸 시내 씨가 지난해 산문집을 내면서 보기 드문 3대 문인 가족이 됐다. 피 속에 흐르는 타고난 문학적 재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대를 이어 문학의 길을 걷는 데에 '아버지의 후광'은 없었다. 오히려 황순원 선생도, 시인 자신도 자식이 문학의 길을 걷는 것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활동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일이라면 문학은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만족을 얻는 일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말린 것도, 제가 딸을 말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시작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문단에서 50년을 보낸 큰 어른격인 시인은 최근 문학상 제도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시인은 "요새 젊은 시인들에게 상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일찍부터 상을 받고 각광을 받으면 '사막화'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젊은 시인들에게 주는 상, 중견시인에게 주는 상, 원로들에게 주는 상 등으로 나뉘었으면 합니다" 이번 산문집에는 이러한 시인의 소신을 담은 글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건져낸 단상들을 담은 글들이 수록돼 있다. 음악 저널에 실었던 음반 해설을 비롯해 음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조예를 엿볼 수 있는 글들도 많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까지 작곡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는 시인은 그 당시 쉰일곱 해를 산 베토벤보다 꼭 10년만 더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베토벤보다 10년을 더 산 이후에도 시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마음 가짐이 바뀌었다. 그 이후의 삶을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앞으로 꼭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고요. 앞으로도 활기 있게 이 덤 인생을 누릴 생각입니다" 별다른 기념 행사 없이 지인들과 술이나 한 잔 하며 등단 50년을 보낼 계획이라는 시인은 최근 발표한 시들을 모아 내년 상반기께 신작 시집을 들고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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