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결식 어린이 “식권이 싫어요”

입력 2009.01.16 (08:45) 수정 2009.01.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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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교육 캠프나 체험 학습을 받는 아이들이 많죠. 반면, 즐거워야 할 겨울 방학이 오히려 꺼려지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끼니걱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단체 급식을 받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방학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는데요.

이동환 기자, 눈칫밥 먹는 결식아동들이 많다는데 왜 그런 건가요?

<리포트>

전국적으로 약 45만 명의 결식아동이 있는데요.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식권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권 한 장 값은 3000원에서 3500원 선으로 일반 식당에서 파는 한 끼 식사대금을 치르기에 금액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식권 가격을 맞춰서 중국집 또는 분식집에서 사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요.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리고 식권 사용은 지정된 업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다가 그나마도 식당에서 식권을 꺼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결식아동들에게 겨울 방학은 더욱 춥기만 한데요. 방학에 되면서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만나봤습니다.

경기도의 한 주택가.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지원이는 점심때가 다가와도 식사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냉기만 가득 찬 주방에는 끼니거리를 찾아볼 수 없는데요.

겨울방학 동안 학교 급식을 이용할 수 없는 지원이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식권을 사용합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일주일 치를 받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쓰는데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종종 속상한 일을 겪는다고 합니다.

<녹취> 한지원(식권 사용 학생) : “식권 내고 먹는 건데요. 식권이라고 말하면 좀 그래요. 주소가 정해져 있어서 많이 시켜먹으면 알잖아요. 식권을 받는 집이라는 걸 알면 조금만 줘요.”

동사무소에서는 3개월에 한 번씩 음식점을 대상으로 위생 상태와 서비스 등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벌이지만 음식량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어렵습니다.

<전회녹취> ○○ 동사무소 관계자 : “우리 쪽에 그런 얘기를 하면 식당에다가 말을 할 텐데 우리는 들은 적이 없어요.”

식권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커서 많게는 열 곳, 적게는 한 곳만 선정된 구역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식권 단가와 음식 판매가 차이가 크다보니 음식점에서 식권 사용 지정업체로 선별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데요.

<전화녹취> ○○ 동사무소 관계자 : “단가가 낮으니까 맞춰주기가 (어렵고.) 여러 식당을 뚫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엄마와 둘이 사는 호중이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지낼 때가 많은데요. 매일 저녁때가 되면 식권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라볶이. 다른 비싼 음식을 먹고 싶지만 3500원짜리 식권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분식뿐. 이러다보니 분식집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예전 같진 않지만 아직도 어린 마음에 식권으로 음식을 사 먹는 게 꺼려질 때가 있습니다.

<녹취> 강호중(식권 사용 학생) : “엄마가 좀 늦게 오니까 식권 가지고 사먹으라고 해요.”

호중이처럼 실제로 여전히 식권 사용을 꺼려하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음식 값을 돈 대신 식권으로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녹취> 최영임 할머니(서울 금호동) : “우리 애들이 꼭 할머니한테 사다 달라고 해요. 식권이고 하니까 좀 어려운 거 같아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서울시에서는 올해부터 식권 대신 카드 제도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일정한 금액을 넣은 현금카드를 제공해서 아이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데요.

우선 서울시 성동구, 은평구, 광진구 등 3개구에 시범 운영을 한 다음, 효과에 따라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녹취> 서울시청 관계자 : “종이 식권이라는 자체가 자꾸 낮은 감(소외감)을 줘요. 아이들에게 편리하고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방법을 바꿔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식권 사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따로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인데요. 식권 단가가 낮다보니 아이들이 주로 사먹는 음식은 자장면과 떡볶이. 방학한 이후로 일주일에 3~4일은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는데요. 2년 전부터 식권으로 음식을 사먹는 영훈이도 대부분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영훈(식권 사용 학생) : “부모님이 일 나가서 없으면 식권 몇 장 가지고 나가서 배고프면 사먹고
주로 자장면이나 떡볶이…….(왜 밥을 안 먹어요?) 밥은 비싸서…….”

현재 서울시에만 약 5만 명의 결식아동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도시락, 식료품을 지원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3만 명의 아이들이 식권을 사용합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아이들로 주로 일선 학교와 관공서에서 선정합니다.

서울시내 식권 지정 업체는 1200여 군데.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대부분 중국집, 분식집처럼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들인데요.

이곳에서 아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있지만 정작 성장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인터뷰> 박경양(전국지역아동센터 이사) :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하도록 급식을 지원하는 게 목적인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문제가 있죠.”

식권 대신 식품권이 나가는 일부 지역에서는 대상자 선정 기준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한 동네. 이곳에서는 음식을 사먹는 대신 지정된 마트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식품권이 결식아동이 아닌 엉뚱한 아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녹취> 전주시 ○○동 통장 : “우리가 그 집 형편을 보면 알 수가 있거든요. 근데 그 집에서 (식품권) 탈 정도가 아닌데 그게 나가더라고요.”

식품권 지급 대상자를 선정하는 교육청에서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결정된 명단을 자치단체에 넘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입니다.

<녹취> 전주시 ○○구청 관계자 : “교육청에서 아이들 명단 통보가 됐는데 저소득층 아이들보다 좀 나은 사람들도 선정되었던 거죠.”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경제 대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결식아동은 해마다 늘고 있는데요. 이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당장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식권 한 장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급식 제도 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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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교육 캠프나 체험 학습을 받는 아이들이 많죠. 반면, 즐거워야 할 겨울 방학이 오히려 꺼려지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끼니걱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단체 급식을 받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방학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는데요. 이동환 기자, 눈칫밥 먹는 결식아동들이 많다는데 왜 그런 건가요? <리포트> 전국적으로 약 45만 명의 결식아동이 있는데요.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식권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권 한 장 값은 3000원에서 3500원 선으로 일반 식당에서 파는 한 끼 식사대금을 치르기에 금액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식권 가격을 맞춰서 중국집 또는 분식집에서 사용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요.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리고 식권 사용은 지정된 업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다가 그나마도 식당에서 식권을 꺼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결식아동들에게 겨울 방학은 더욱 춥기만 한데요. 방학에 되면서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만나봤습니다. 경기도의 한 주택가.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지원이는 점심때가 다가와도 식사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냉기만 가득 찬 주방에는 끼니거리를 찾아볼 수 없는데요. 겨울방학 동안 학교 급식을 이용할 수 없는 지원이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식권을 사용합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일주일 치를 받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쓰는데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종종 속상한 일을 겪는다고 합니다. <녹취> 한지원(식권 사용 학생) : “식권 내고 먹는 건데요. 식권이라고 말하면 좀 그래요. 주소가 정해져 있어서 많이 시켜먹으면 알잖아요. 식권을 받는 집이라는 걸 알면 조금만 줘요.” 동사무소에서는 3개월에 한 번씩 음식점을 대상으로 위생 상태와 서비스 등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벌이지만 음식량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건 어렵습니다. <전회녹취> ○○ 동사무소 관계자 : “우리 쪽에 그런 얘기를 하면 식당에다가 말을 할 텐데 우리는 들은 적이 없어요.” 식권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커서 많게는 열 곳, 적게는 한 곳만 선정된 구역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식권 단가와 음식 판매가 차이가 크다보니 음식점에서 식권 사용 지정업체로 선별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데요. <전화녹취> ○○ 동사무소 관계자 : “단가가 낮으니까 맞춰주기가 (어렵고.) 여러 식당을 뚫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엄마와 둘이 사는 호중이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지낼 때가 많은데요. 매일 저녁때가 되면 식권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라볶이. 다른 비싼 음식을 먹고 싶지만 3500원짜리 식권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분식뿐. 이러다보니 분식집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예전 같진 않지만 아직도 어린 마음에 식권으로 음식을 사 먹는 게 꺼려질 때가 있습니다. <녹취> 강호중(식권 사용 학생) : “엄마가 좀 늦게 오니까 식권 가지고 사먹으라고 해요.” 호중이처럼 실제로 여전히 식권 사용을 꺼려하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음식 값을 돈 대신 식권으로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녹취> 최영임 할머니(서울 금호동) : “우리 애들이 꼭 할머니한테 사다 달라고 해요. 식권이고 하니까 좀 어려운 거 같아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서울시에서는 올해부터 식권 대신 카드 제도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일정한 금액을 넣은 현금카드를 제공해서 아이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데요. 우선 서울시 성동구, 은평구, 광진구 등 3개구에 시범 운영을 한 다음, 효과에 따라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녹취> 서울시청 관계자 : “종이 식권이라는 자체가 자꾸 낮은 감(소외감)을 줘요. 아이들에게 편리하고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방법을 바꿔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식권 사용의 가장 큰 문제점은 따로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인데요. 식권 단가가 낮다보니 아이들이 주로 사먹는 음식은 자장면과 떡볶이. 방학한 이후로 일주일에 3~4일은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는데요. 2년 전부터 식권으로 음식을 사먹는 영훈이도 대부분 분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영훈(식권 사용 학생) : “부모님이 일 나가서 없으면 식권 몇 장 가지고 나가서 배고프면 사먹고 주로 자장면이나 떡볶이…….(왜 밥을 안 먹어요?) 밥은 비싸서…….” 현재 서울시에만 약 5만 명의 결식아동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도시락, 식료품을 지원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3만 명의 아이들이 식권을 사용합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아이들로 주로 일선 학교와 관공서에서 선정합니다. 서울시내 식권 지정 업체는 1200여 군데.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대부분 중국집, 분식집처럼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들인데요. 이곳에서 아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있지만 정작 성장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인터뷰> 박경양(전국지역아동센터 이사) :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하도록 급식을 지원하는 게 목적인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문제가 있죠.” 식권 대신 식품권이 나가는 일부 지역에서는 대상자 선정 기준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한 동네. 이곳에서는 음식을 사먹는 대신 지정된 마트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식품권이 결식아동이 아닌 엉뚱한 아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녹취> 전주시 ○○동 통장 : “우리가 그 집 형편을 보면 알 수가 있거든요. 근데 그 집에서 (식품권) 탈 정도가 아닌데 그게 나가더라고요.” 식품권 지급 대상자를 선정하는 교육청에서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결정된 명단을 자치단체에 넘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입니다. <녹취> 전주시 ○○구청 관계자 : “교육청에서 아이들 명단 통보가 됐는데 저소득층 아이들보다 좀 나은 사람들도 선정되었던 거죠.”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경제 대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결식아동은 해마다 늘고 있는데요. 이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당장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식권 한 장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급식 제도 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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