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미륵사 창건 비밀 풀려

입력 2009.01.1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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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과 백제 유물 수백 점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지난 71년 역사학계를 흥분시켰던 무령왕릉 발견이래 획기적인 발굴 성과임과 동시에 미륵사 창건에 관한 오랜 비밀이 하나, 둘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취재기자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수진 기자!(네, 이수진입니다.)

<질문>

미륵사지석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국보급 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면서요?

<답변>

네, 국보급 유물들이 발견된 곳은 미륵사지 석탑 1층 사리공입니다.

사리를 담은 사리호와 미륵사 창건기록이 적힌 기록 등 국보급 유물이 무려 5백여 점이나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전북 익산의 백제 미륵사지 석탑.

이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끌고 있는 유물은 바로 금제 사리봉안기입니다.

모두 백 아흔석자의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미륵사 창건의 오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미륵사를 둘러싼 당시 백제역사가 문헌상으로 미비했는데, 이 같은 의문이 풀리게 됐습니다.

발견 당시의 상황과 이번 발견의 고고학적 의미는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인터뷰> 배병선(미륵사지석탑보수 정비사업단장):"지상에서 사리옹이 발견됐고 그 안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된 것이죠."

<인터뷰> 김봉건(국립문화재연구소장): "건립연대와 주체를 밝힐 수 있는 사료로 무령왕릉 이래 최대 고고학적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봉안기에 기록된 글은 당시 백제 서체와 세공기법 등을 알 수 있는 획기적인 유물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질문>

백제 무왕인 서동과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사실였는 지 확인이 됐나요?

<답변>

네, 사리봉안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무왕의 부인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의 딸로 확인됐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러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창건하도록 왕에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의 딸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쟁상태로 서로 싸우는 두 나라가 사돈을 맺는 게 가능할까라는 학계의 의문이 상당부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얘깁니다.

<인터뷰> 이건무(문화재청장):"창건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더 정확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북 익산 미륵사는 현재 남아있는 절터 크기만 천 338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그 규모 때문에 백제의 마지막 수도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지금까지 전주에서 KBS뉴스 이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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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트워크] 미륵사 창건 비밀 풀려
    • 입력 2009-01-19 23: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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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과 백제 유물 수백 점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지난 71년 역사학계를 흥분시켰던 무령왕릉 발견이래 획기적인 발굴 성과임과 동시에 미륵사 창건에 관한 오랜 비밀이 하나, 둘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취재기자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수진 기자!(네, 이수진입니다.) <질문> 미륵사지석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국보급 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면서요? <답변> 네, 국보급 유물들이 발견된 곳은 미륵사지 석탑 1층 사리공입니다. 사리를 담은 사리호와 미륵사 창건기록이 적힌 기록 등 국보급 유물이 무려 5백여 점이나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전북 익산의 백제 미륵사지 석탑. 이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끌고 있는 유물은 바로 금제 사리봉안기입니다. 모두 백 아흔석자의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미륵사 창건의 오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미륵사를 둘러싼 당시 백제역사가 문헌상으로 미비했는데, 이 같은 의문이 풀리게 됐습니다. 발견 당시의 상황과 이번 발견의 고고학적 의미는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인터뷰> 배병선(미륵사지석탑보수 정비사업단장):"지상에서 사리옹이 발견됐고 그 안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된 것이죠." <인터뷰> 김봉건(국립문화재연구소장): "건립연대와 주체를 밝힐 수 있는 사료로 무령왕릉 이래 최대 고고학적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봉안기에 기록된 글은 당시 백제 서체와 세공기법 등을 알 수 있는 획기적인 유물로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질문> 백제 무왕인 서동과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사실였는 지 확인이 됐나요? <답변> 네, 사리봉안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무왕의 부인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의 딸로 확인됐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러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창건하도록 왕에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좌평의 딸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쟁상태로 서로 싸우는 두 나라가 사돈을 맺는 게 가능할까라는 학계의 의문이 상당부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얘깁니다. <인터뷰> 이건무(문화재청장):"창건당시의 기록이기 때문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더 정확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북 익산 미륵사는 현재 남아있는 절터 크기만 천 338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그 규모 때문에 백제의 마지막 수도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지금까지 전주에서 KBS뉴스 이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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