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수십 만 추모 인파

입력 2009.05.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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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서울광장 주변엔 시민단체 추산 40만 명의 추모 인파가 운집했습니다. 87년 6월 항쟁, 월드컵 때에 버금가는 규모였습니다.

김원장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침 8시, 서울광장을 둘러쌌던 경찰 버스 차벽이 열렸습니다.

새벽부터 기다린 시민들이 광장으로, 광장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노제를 2시간여 앞두고 서울광장엔 이미 수십만의 노란색 인파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노란색 점들은 하나 둘 모아져, 거대한 눈물의 모자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세종로 네거리부터 남대문, 서울역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거대한 추모의 강이 됐습니다.

<인터뷰> 윤재영(추모객) : "봉하마을 꼭 가고싶었는데 못가서 너무 아쉬었어요 그래서 나왔어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직장인에서 가방 맨 학생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까지 한마음으로 고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되돌아봤습니다.

노제가 끝나자 수많은 시민들은 서울역까지 운구행렬을 따랐고, 다시 서울광장을 봉쇄하려는 경찰과 이를 항의하는 시민들로 한때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지키며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을 함께했습니다.

87년 유월 항쟁에서 2002년 서울월드컵과 2007년 촛불집회까지,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보낸 오늘, 서울광장은 또 한번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습니다.

KBS 뉴스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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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수십 만 추모 인파
    • 입력 2009-05-29 20:54:26
    뉴스 9
<앵커 멘트> 서울광장 주변엔 시민단체 추산 40만 명의 추모 인파가 운집했습니다. 87년 6월 항쟁, 월드컵 때에 버금가는 규모였습니다. 김원장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침 8시, 서울광장을 둘러쌌던 경찰 버스 차벽이 열렸습니다. 새벽부터 기다린 시민들이 광장으로, 광장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노제를 2시간여 앞두고 서울광장엔 이미 수십만의 노란색 인파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노란색 점들은 하나 둘 모아져, 거대한 눈물의 모자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세종로 네거리부터 남대문, 서울역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거대한 추모의 강이 됐습니다. <인터뷰> 윤재영(추모객) : "봉하마을 꼭 가고싶었는데 못가서 너무 아쉬었어요 그래서 나왔어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직장인에서 가방 맨 학생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까지 한마음으로 고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되돌아봤습니다. 노제가 끝나자 수많은 시민들은 서울역까지 운구행렬을 따랐고, 다시 서울광장을 봉쇄하려는 경찰과 이를 항의하는 시민들로 한때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지키며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을 함께했습니다. 87년 유월 항쟁에서 2002년 서울월드컵과 2007년 촛불집회까지,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보낸 오늘, 서울광장은 또 한번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습니다. KBS 뉴스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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