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화에 쓴 추사글 최초 발굴

입력 2009.10.2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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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시대 시와 글씨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당시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유명화에도 감상을 적어 넣었음을 보여주는 진귀한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당시 일본 문화계와도 일정부분 교류가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상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가로이 풀밭위를 노니는 두마리의 원앙을 그린 일본화입니다.

당시 중국 북화풍을 따라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한치의 어긋남없이 극도의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수작입니다.

이 일본화에 추사가 감상을 적어넣었습니다.

정축년은 1817년으로 추사 김정희가 만 32살때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 순수비를 발굴해 내는 등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하던 때였습니다.

왜국의 그림들은 중국 황대치와 동북원사이에 있다는 평을 곁들인 것으로 보아 적잖은 작품들을 보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인터뷰> 김선원(고미술 감정사) : "굉장히 가치가 있는 그림입니다."

추사가 남의 그림에 제를 적어 넣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긍제 김득신이나 소당 이재관의 작품 밖에는 없을 만큼 희귀합니다.

이 작품은 일제시대 조선미술 클럽을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영개회장의 후손으로 부터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입니다.

<인터뷰> 공창호(공화랑 대표) : "오세창 문하여서 감식안이 뛰어났던 분이었다."

원앙도와 함께 들여온 그의 말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서예 작품도 추사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KBS 뉴스 한상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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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화에 쓴 추사글 최초 발굴
    • 입력 2009-10-23 07: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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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시대 시와 글씨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당시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유명화에도 감상을 적어 넣었음을 보여주는 진귀한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당시 일본 문화계와도 일정부분 교류가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상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한가로이 풀밭위를 노니는 두마리의 원앙을 그린 일본화입니다. 당시 중국 북화풍을 따라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한치의 어긋남없이 극도의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수작입니다. 이 일본화에 추사가 감상을 적어넣었습니다. 정축년은 1817년으로 추사 김정희가 만 32살때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 순수비를 발굴해 내는 등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하던 때였습니다. 왜국의 그림들은 중국 황대치와 동북원사이에 있다는 평을 곁들인 것으로 보아 적잖은 작품들을 보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인터뷰> 김선원(고미술 감정사) : "굉장히 가치가 있는 그림입니다." 추사가 남의 그림에 제를 적어 넣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긍제 김득신이나 소당 이재관의 작품 밖에는 없을 만큼 희귀합니다. 이 작품은 일제시대 조선미술 클럽을 만들어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영개회장의 후손으로 부터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입니다. <인터뷰> 공창호(공화랑 대표) : "오세창 문하여서 감식안이 뛰어났던 분이었다." 원앙도와 함께 들여온 그의 말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서예 작품도 추사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KBS 뉴스 한상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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