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도박에 빠져 설 곳 잃은 노인들

입력 2009.11.10 (09:19) 수정 2009.11.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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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윷놀이나 장기판 벌이신 모습 흔히 볼 수 있죠.

그런데 이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큰 돈이 오가는 도박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서희 기자, 얼마나 심각한가요?

<리포트>

네, 심심풀이로 도박을 시작했다가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가진 돈 전부를 잃고 살기 싫어졌다며 절망에 빠지거나, 경찰 단속을 피하려다 건물에서 떨어져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도박에 빠져 설곳을 잃은 노인들, 함께 보시죠.

지난 4일 새벽, 70대 할머니 두 분이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도박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옆 건물로 이동하다 발을 헛디딘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녹취> 여관 주인 : “(경찰관이) 문을 두드리니까 다 도망가고...”

그런데 문제는 도박에 빠진 노인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하루 평균 삼천 명의 노인들이 찾아오는 종묘공원 일대도 예외가 아닌데요.

삼삼오오 모여 윷놀이, 장기, 바둑 등을 두고 있지만 그저 건전한 놀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녹취> 김○○(65살) : “오늘 잃어버리면 내일 딴다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물주가 있어서 이기면 얼마 떼고 돈을 주는 모양이에요. 그 사람이 손님들한테 윷판을 벌여 놓는 거죠.”

전문도박단들 때문에 피해가 커지면서 자살하는 노인들까지 있을 정도라는데요,

<녹취> 이○○(70살) : “보니까 엄청 크게 하더라고요. 노인들이 잘못 돼서 죽은 사람도 많고 자살했다는 노인들도 더러 있다고...”

어떤 할아버지는 윷놀이 도박에 빠져 가족이 파탄 날 지경에 놓였지만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60살) : “500만 원~600만 원 잃었을 것 같은데요. (도박을) 못 끊겠더라고요. 끊는다고 끊었는데 돈이 생기면 하고 싶고 술에 중독되면 못 끊듯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 사람으로 취급도 안하고 애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그래요.”

취재진이 공원을 찾은 날에도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부터 만 원권 지폐까지 노인들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요.

<현장음> “너희 빨리 해. 빠질 거야? 3천 원?”

수십 명이 모여 매일 같이 돈내기 윷판을 벌이니 경찰들도 쉴 틈이 없습니다.

<현장음> “그만 좀 하세요.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할 거예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순찰을 돌지만 경찰의 눈길을 피해 도박행위가 벌어지니 단속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요.

<녹취> 지구대 경찰 : “이 사람들 산으로 다녀요. 아차산, 남산, 수도 없이 많죠.”

경찰의 등장에 부랴부랴 노인들이 흩어집니다. 하지만 도박이 아닌 놀이를 단속한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데요.

<녹취> 정○○(63살) : “돈을 (땄다고) 가져가는 게 아니에요. 동전 바꿔서 심심풀이로 시간 보내려고 하는 거고 윷놀이는 진 사람 돈으로 술 먹는 거예요.”

하지만 재미삼아 하던 도박이 심각해져 경찰서까지 오는 일도 생깁니다.

지난 2일, 경북 영주에서는 윷놀이 도박을 하던 노인들이 대거 검거됐습니다.

<인터뷰> 장재상(경북 영주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 “전통윷놀이를 악용해서 어떤 사람이 딜러를 하고, 한 두 사람이 하니까 옆 사람도 따라서 하는 형태로 사행성으로 하다가 큰 도박이 된 겁니다.”

당시 압수한 금액만 2천만 원.

검거된 열다섯 명의 사람들 중 3분의 2가 60세 이상의 노인인데 한 번에 50만 원, 100만 원의 금액이 오고 갔다고 합니다.

당시 검거되었던 김 할아버지는 도박 혐의로 현장에서 600여만 원을 압수당했는데요.

<녹취> 김○○(68살) : “시장 골목으로 (사람들이) 윷놀이 하러 오더라고... 그 옆에서 구경하다가 도박을 하게 되어버렸지. 내 돈 212만 6천원하고 다 뺏겨버렸어요.”

게다가 600만원 중 400만원은 동료가 잠시 맡겨둔 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아프고, 아들은 직장이 없어 실질적인 가장은 할아버지였는데,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나니 삶의 의욕마저 사라졌습니다.

<녹취> 김○○(68살) : “돈 받을 사람은 (돈) 달라고 오지. 찾아 와서 말이나 좋게 하나? 사기꾼이라는 소리 들어가며 사는 게 부모 된 마음에 차라리 죽었으면...”

매년 심각해지고 있는 노인 도박 문제, 더 많은 피해자들이 생기기 전에 보다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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