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아이티에 집착하나?

입력 2010.01.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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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세계가 아이티 지원에 나섰지만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단연 미국이죠?

그렇습니다. 구조대도 가장 빨리 보냈고 구호품의 양, 파견한 군대의 규모 등에서 압도적입니다.

도대체 미국은 왜 이렇게 아이티 지원에 혼신을 다하는 걸까요?

워싱턴 연결합니다.

<질문> 홍기섭 특파원, 먼저 미국이 지금 아이티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부터 정리해볼까요?

<리포트>

한마디로 총력 지원체제입니다. 가장 많은 구조대가 활약하고 있고요. 물과 비상식량, 의약품과 같은 구호품도 가장 신속하게 또 가장 많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고 볼 수 있는 대형 병원선도 보내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고요.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진 고아의 입양이나 아이티인에 대한 미국 체류 연장 등의 간접 지원 조치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대대적인 지원은 지진 발생 바로 다음날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성명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오바마(미 대통령) : "저는 방금 신속하고 잘 조율된 인명구조노력을 적극 기울이라고 행정부에 지시했습니다. 미국은 아이티국민을 전적으로 지원해 인명구조와 인도적 구호활동에 신속히 나설 것입니다."

<질문> 파견한 군대도 보통 규모가 아니던데요...항공모함까지 보냈죠?

<답변>

미국은 아이티 지진참사가 나자마자 곧바로 군병력을 대거 파견했습니다. 두 척의 항공모함과 함께 낙하산부대, 해병대도 투입했습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요. 미국은 지금까지 13,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해 직간접적인 구호활동과 치안 확보, 나아가 도로 항만 복구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국가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에서 사실상 아이티의 치안과 행정까지 장악한 셈입니다.

<질문> 구호 활동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점령군 아니냐..이런 논란도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미군 투입 과정에서 눈여겨볼 만한 상징적인 사건이 두 가지 있었는데요. 하나는 아이티의 요청으로 공항 관제권을 접수한 미군이 프랑스 구호품을 실은 비행기 두 대의 착륙을 불허하는 바람에 회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미 제82 공중강습사단 100명이 완전무장한 채 특수작전용 블랙호크 헬기를 타고 포르토프랑스 대통령궁을 장악한 일입니다. 점령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이 두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한때 프랑스는 각료들이 직접 나서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고요.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이 아이티의 비극을 구실로 사실상 점령에 나섰다고 비난했습니다.

<질문>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미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속사정은 무엇일까요?

<답변>

미국은 일부 국가의 비난과 의혹의 눈초리를 의식해서인지 순수한 구호활동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티의 재건은 브라질이 주도할 것이란 입장도 밝혔구요. 미국은 무엇보다 아이티의 지원 요청이 있었고 또 엄청난 자연 재앙 속에서 군대 조직만큼 효과적이고 치밀한 구호작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아이티 지원에 발 벗고 나선데는 순수한 인도주의 차원 말고도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으로 크게 손상된 미국의 체면과 세계 지도자 국가의 위신을 일으켜 세워보겠다는 의도가 있고요. 또 이번 기회에 쿠바와 반미 국가로 둘러싸인 전략적 요충 아이티를 확실한 우방으로 만들어 중남미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속셈도 깔려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사실 미국과 아이티는 긴 악연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아이티와 미국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2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은 1804년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독립국가였던 아이티를 흑인노예 국가라면서 승인을 거부하고

50년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15년에는 미국이 아이티를 침략해 1934년까지 점령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1980년대에는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독재자를 지원했고, 아이티의 쌀 시장을 개방시켜 농업기반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카리브해의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이점을 살려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아이티는 이렇게 독립 이후 열강의 침탈과 수십 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서반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잘못된 정책도 오늘날 아이티의 비극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이 아이티와의 이런 악연을 어떻게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갈 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홍기섭이었습니다.

아이티를 향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당장의 구호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재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당장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는 차원을 넘어 아이티가 빈곤을 딛고 자생력을 키워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류가 힘을 합친다면 그 피해는 함께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티 참사를 집중 조명한 ‘특집 특파원현장보고’ 여기서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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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왜 아이티에 집착하나?
    • 입력 2010-01-24 12:05:2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전세계가 아이티 지원에 나섰지만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단연 미국이죠? 그렇습니다. 구조대도 가장 빨리 보냈고 구호품의 양, 파견한 군대의 규모 등에서 압도적입니다. 도대체 미국은 왜 이렇게 아이티 지원에 혼신을 다하는 걸까요? 워싱턴 연결합니다. <질문> 홍기섭 특파원, 먼저 미국이 지금 아이티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부터 정리해볼까요? <리포트> 한마디로 총력 지원체제입니다. 가장 많은 구조대가 활약하고 있고요. 물과 비상식량, 의약품과 같은 구호품도 가장 신속하게 또 가장 많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고 볼 수 있는 대형 병원선도 보내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고요.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진 고아의 입양이나 아이티인에 대한 미국 체류 연장 등의 간접 지원 조치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대대적인 지원은 지진 발생 바로 다음날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특별성명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오바마(미 대통령) : "저는 방금 신속하고 잘 조율된 인명구조노력을 적극 기울이라고 행정부에 지시했습니다. 미국은 아이티국민을 전적으로 지원해 인명구조와 인도적 구호활동에 신속히 나설 것입니다." <질문> 파견한 군대도 보통 규모가 아니던데요...항공모함까지 보냈죠? <답변> 미국은 아이티 지진참사가 나자마자 곧바로 군병력을 대거 파견했습니다. 두 척의 항공모함과 함께 낙하산부대, 해병대도 투입했습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요. 미국은 지금까지 13,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해 직간접적인 구호활동과 치안 확보, 나아가 도로 항만 복구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국가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에서 사실상 아이티의 치안과 행정까지 장악한 셈입니다. <질문> 구호 활동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점령군 아니냐..이런 논란도 있죠? <답변> 그렇습니다. 미군 투입 과정에서 눈여겨볼 만한 상징적인 사건이 두 가지 있었는데요. 하나는 아이티의 요청으로 공항 관제권을 접수한 미군이 프랑스 구호품을 실은 비행기 두 대의 착륙을 불허하는 바람에 회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미 제82 공중강습사단 100명이 완전무장한 채 특수작전용 블랙호크 헬기를 타고 포르토프랑스 대통령궁을 장악한 일입니다. 점령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이 두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한때 프랑스는 각료들이 직접 나서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고요.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이 아이티의 비극을 구실로 사실상 점령에 나섰다고 비난했습니다. <질문>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미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속사정은 무엇일까요? <답변> 미국은 일부 국가의 비난과 의혹의 눈초리를 의식해서인지 순수한 구호활동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티의 재건은 브라질이 주도할 것이란 입장도 밝혔구요. 미국은 무엇보다 아이티의 지원 요청이 있었고 또 엄청난 자연 재앙 속에서 군대 조직만큼 효과적이고 치밀한 구호작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아이티 지원에 발 벗고 나선데는 순수한 인도주의 차원 말고도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으로 크게 손상된 미국의 체면과 세계 지도자 국가의 위신을 일으켜 세워보겠다는 의도가 있고요. 또 이번 기회에 쿠바와 반미 국가로 둘러싸인 전략적 요충 아이티를 확실한 우방으로 만들어 중남미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속셈도 깔려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사실 미국과 아이티는 긴 악연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아이티와 미국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2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은 1804년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독립국가였던 아이티를 흑인노예 국가라면서 승인을 거부하고 50년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15년에는 미국이 아이티를 침략해 1934년까지 점령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1980년대에는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독재자를 지원했고, 아이티의 쌀 시장을 개방시켜 농업기반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카리브해의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이점을 살려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아이티는 이렇게 독립 이후 열강의 침탈과 수십 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서반구 최빈국으로 전락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잘못된 정책도 오늘날 아이티의 비극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이 아이티와의 이런 악연을 어떻게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갈 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홍기섭이었습니다. 아이티를 향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당장의 구호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인 재건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당장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는 차원을 넘어 아이티가 빈곤을 딛고 자생력을 키워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류가 힘을 합친다면 그 피해는 함께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티 참사를 집중 조명한 ‘특집 특파원현장보고’ 여기서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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