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 아이스하키 ‘90년 전쟁’

입력 2010.02.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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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흘째를 맞은 22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아이스하키 플레이스 아레나.

점심때가 넘어가면서 경기장 주변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흔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슈퍼 선데이'라 불리며 기대를 모은 캐나다와 미국의 아이스하키 예선 경기가 벌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에 모여든 캐나다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캐나다 국가를 합창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충돌이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거리를 통제하러 나온 경찰은 안전을 지키는 것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날 경기를 보러 미국 내슈빌에서 밴쿠버까지 찾아왔다는 한 팬은 "인터넷 중개인을 통해 2천500달러(한화 약 286만9천500원)를 주고 표 3장을 샀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가 이처럼 미국과 캐나다 팬들을 열광시킨 것은 그만큼 두 나라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빅매치'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아직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이 분리되기도 전인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부터 90년째 '빙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안트워프 올림픽 당시 캐나다는 미국을 꺾고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로 오랫동안 올림픽 아이스하키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4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20세기 중반까지 올림픽 아이스하키 금메달을 휩쓸며 종주국으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준우승만 5차례 차지하며 번번이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하며 부러운 눈으로 이웃 캐나다의 승승장구를 지켜봐야 했던 미국은 40년이 흐른 뒤에야 기회를 잡았다.

미국은 1960년 미국 스쿼밸리 올림픽에서 캐나다를 꺾고 감격스런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캐나다와 미국은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 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소련(USSR)의 등장으로 '황금시대'를 마감하고 만다.

소련은 1964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캐나다(1920~1932년)가 가지고 있던 올림픽 연속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새 역사'를 쓸 기대에 부풀어 있던 미국은 1972년 삿포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1번 따는 데 그쳤고, 최강을 자부하던 캐나다는 1968년 그레노블 대회에서 동메달을 건지는 데 머물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뒤로 밀려났다.

그나마 미국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의 금메달'을 일구면서 자존심을 지켰다.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하던 시기, 미국으로서는 동계스포츠 최강을 자랑하던 소련의 무적 아이스하키팀을 결승에서 누른 감격스런 승리였다.

당시 우승 이야기는 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할 만큼 여전히 미국 아이스하키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기적은 계속되지 않았다. 소련은 이어진 1984년 사라예보 대회와 1988년 캘거리 대회까지 석권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연방 해체 이후 '구(舊) 소련 통합팀'으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결승에서 캐나다를 물리치고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캐나다와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동유럽이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프로선수의 출전이 허용되면서 다시 동계올림픽의 강호로 떠올랐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결승에서 연속으로 좌절을 겪은 캐나다는 10년 만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50년 만에 금메달에 키스하는 감격을 맛봤다.

하필이면 미국이 다시 제물이 됐다.

캐나다는 대회 마지막 날 열린 결승에서 '홈 금메달 행진'을 이어갈 기대에 부푼 미국을 5-2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이렇게 악몽과 같은 기억을 가슴에 품은 미국은 이날 벌어진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가득했다.

미국팀은 이날 1960년 동계올림픽 대표팀이 입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캐나다를 꺾고 첫 우승을 일궜던 '스쿼밸리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맞서는 캐나다 역시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초호화 멤버를 내보내고도 7위에 그친 수모를 홈에서 갚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기에 라이벌전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미국팀이 링크에 들어오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캐나다 관중들은 큰 소리로 국가를 합창하며 미국의 기를 죽이려 열을 올렸다.

하지만 8년 전 홈에서 당한 굴욕을 되갚아주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앞섰다.

미국은 제이미 랑엔브루너(뉴저지)의 결승골에 힘입어 캐나다를 꺾어 90년째를 맞은 아이스하키 전쟁에서 1승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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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캐나다 아이스하키 ‘90년 전쟁’
    • 입력 2010-02-22 14:19:52
    연합뉴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흘째를 맞은 22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아이스하키 플레이스 아레나. 점심때가 넘어가면서 경기장 주변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흔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슈퍼 선데이'라 불리며 기대를 모은 캐나다와 미국의 아이스하키 예선 경기가 벌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에 모여든 캐나다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캐나다 국가를 합창하며 승리를 기원했다. 충돌이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거리를 통제하러 나온 경찰은 안전을 지키는 것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날 경기를 보러 미국 내슈빌에서 밴쿠버까지 찾아왔다는 한 팬은 "인터넷 중개인을 통해 2천500달러(한화 약 286만9천500원)를 주고 표 3장을 샀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가 이처럼 미국과 캐나다 팬들을 열광시킨 것은 그만큼 두 나라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국민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빅매치'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아직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이 분리되기도 전인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부터 90년째 '빙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안트워프 올림픽 당시 캐나다는 미국을 꺾고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로 오랫동안 올림픽 아이스하키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4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20세기 중반까지 올림픽 아이스하키 금메달을 휩쓸며 종주국으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준우승만 5차례 차지하며 번번이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하며 부러운 눈으로 이웃 캐나다의 승승장구를 지켜봐야 했던 미국은 40년이 흐른 뒤에야 기회를 잡았다. 미국은 1960년 미국 스쿼밸리 올림픽에서 캐나다를 꺾고 감격스런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캐나다와 미국은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 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소련(USSR)의 등장으로 '황금시대'를 마감하고 만다. 소련은 1964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캐나다(1920~1932년)가 가지고 있던 올림픽 연속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새 역사'를 쓸 기대에 부풀어 있던 미국은 1972년 삿포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1번 따는 데 그쳤고, 최강을 자부하던 캐나다는 1968년 그레노블 대회에서 동메달을 건지는 데 머물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뒤로 밀려났다. 그나마 미국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의 금메달'을 일구면서 자존심을 지켰다.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하던 시기, 미국으로서는 동계스포츠 최강을 자랑하던 소련의 무적 아이스하키팀을 결승에서 누른 감격스런 승리였다. 당시 우승 이야기는 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할 만큼 여전히 미국 아이스하키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기적은 계속되지 않았다. 소련은 이어진 1984년 사라예보 대회와 1988년 캘거리 대회까지 석권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연방 해체 이후 '구(舊) 소련 통합팀'으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결승에서 캐나다를 물리치고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캐나다와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동유럽이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프로선수의 출전이 허용되면서 다시 동계올림픽의 강호로 떠올랐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결승에서 연속으로 좌절을 겪은 캐나다는 10년 만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50년 만에 금메달에 키스하는 감격을 맛봤다. 하필이면 미국이 다시 제물이 됐다. 캐나다는 대회 마지막 날 열린 결승에서 '홈 금메달 행진'을 이어갈 기대에 부푼 미국을 5-2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이렇게 악몽과 같은 기억을 가슴에 품은 미국은 이날 벌어진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로 가득했다. 미국팀은 이날 1960년 동계올림픽 대표팀이 입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캐나다를 꺾고 첫 우승을 일궜던 '스쿼밸리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맞서는 캐나다 역시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초호화 멤버를 내보내고도 7위에 그친 수모를 홈에서 갚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기에 라이벌전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미국팀이 링크에 들어오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캐나다 관중들은 큰 소리로 국가를 합창하며 미국의 기를 죽이려 열을 올렸다. 하지만 8년 전 홈에서 당한 굴욕을 되갚아주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앞섰다. 미국은 제이미 랑엔브루너(뉴저지)의 결승골에 힘입어 캐나다를 꺾어 90년째를 맞은 아이스하키 전쟁에서 1승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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