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 덕수궁 중명전의 부활 첫 공개!
입력 2010.03.01 (22:04)
수정 2010.03.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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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치욕의 일제시대. 그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 중명전이 새로 태어났습니다.
뜻깊은 3.1절, KBS에서 최초 공개합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종 황제의 거처 겸 집무실로 쓰였던 덕수궁 중명전.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치욕의 장소이자, 고종이 헤이그 밀사 파견을 위해 이준 열사를 면담했던 뜻 깊은 장소입니다.
일제 강점기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변질된 뒤, 최근까지도 인근 공연장의 주차장으로 방치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2년 간의 복원 처리를 거친 중명전.
흰 페인트 칠을 말끔히 걷어내고 원래의 붉은 벽돌이 드러났습니다.
막혀 있던 벽도 아치형 회랑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반 사무실로 쓰였던 방은 조명과 벽난로, 마루 등을 복원해 예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인터뷰> 김란기(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장) : "충실히 고증에 의해서 복원한 것이고, 그 자재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애 쓴 그런 것이 이번 복원의 특징입니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실은 아직까지도 그 용도가 의문입니다.
흔적만 남은 아궁이와 굴뚝길, 낮고 긴 복도가 이어진 것은 왕의 대피 통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침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 중명전.
올해 상반기까지 복원을 마치고 잃어버린 제국의 자존심을 되찾습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치욕의 일제시대. 그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 중명전이 새로 태어났습니다.
뜻깊은 3.1절, KBS에서 최초 공개합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종 황제의 거처 겸 집무실로 쓰였던 덕수궁 중명전.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치욕의 장소이자, 고종이 헤이그 밀사 파견을 위해 이준 열사를 면담했던 뜻 깊은 장소입니다.
일제 강점기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변질된 뒤, 최근까지도 인근 공연장의 주차장으로 방치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2년 간의 복원 처리를 거친 중명전.
흰 페인트 칠을 말끔히 걷어내고 원래의 붉은 벽돌이 드러났습니다.
막혀 있던 벽도 아치형 회랑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반 사무실로 쓰였던 방은 조명과 벽난로, 마루 등을 복원해 예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인터뷰> 김란기(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장) : "충실히 고증에 의해서 복원한 것이고, 그 자재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애 쓴 그런 것이 이번 복원의 특징입니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실은 아직까지도 그 용도가 의문입니다.
흔적만 남은 아궁이와 굴뚝길, 낮고 긴 복도가 이어진 것은 왕의 대피 통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침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 중명전.
올해 상반기까지 복원을 마치고 잃어버린 제국의 자존심을 되찾습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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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침탈’ 덕수궁 중명전의 부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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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0-03-01 22:08:04

<앵커 멘트>
치욕의 일제시대. 그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 중명전이 새로 태어났습니다.
뜻깊은 3.1절, KBS에서 최초 공개합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종 황제의 거처 겸 집무실로 쓰였던 덕수궁 중명전.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치욕의 장소이자, 고종이 헤이그 밀사 파견을 위해 이준 열사를 면담했던 뜻 깊은 장소입니다.
일제 강점기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변질된 뒤, 최근까지도 인근 공연장의 주차장으로 방치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2년 간의 복원 처리를 거친 중명전.
흰 페인트 칠을 말끔히 걷어내고 원래의 붉은 벽돌이 드러났습니다.
막혀 있던 벽도 아치형 회랑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일반 사무실로 쓰였던 방은 조명과 벽난로, 마루 등을 복원해 예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인터뷰> 김란기(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장) : "충실히 고증에 의해서 복원한 것이고, 그 자재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애 쓴 그런 것이 이번 복원의 특징입니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실은 아직까지도 그 용도가 의문입니다.
흔적만 남은 아궁이와 굴뚝길, 낮고 긴 복도가 이어진 것은 왕의 대피 통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제 침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 중명전.
올해 상반기까지 복원을 마치고 잃어버린 제국의 자존심을 되찾습니다.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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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희 기자 monni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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