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한국 사랑’ 벽안의 독립 운동가

입력 2010.03.02 (07:24) 수정 2010.03.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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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절인 오늘 뜻깊은 훈장 한개가 추서됐습니다.



만세시위운동을 돕고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을 알린 한남대 설립자인 고 윌리엄 린튼 박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습니다.



양민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91번째 3.1절 기념식.



건국훈장을 받는 독립유공자 사이에 벽안의 미국인 한 명이 끼여 있습니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고 윌리엄 린튼 박사의 차남, 유진 린튼 씨입니다.



<인터뷰> 유진 린튼(故 윌리엄 린튼 차남) : “아버지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했고, 한국 사람들은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한국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1912년 한국에 온 윌리엄 린튼 박사는 ’인돈’을 한국 이름으로 삼아 한국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군산 영명학교 교장이던 1919년에는 군산의 3.1 만세 운동을 배후 지원하고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과 한국인의 독립의지도 알렸습니다.



전주 신흥학교 교장 당시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을 당하기도 한 린튼 박사는 광복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신사 터에 화장실을 지을 정도로 한국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인터뷰> 천 사무엘(교수 / 인돈학술원장) : “신사 터에다가 공중화장실을 지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광복 후에는 한남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도 애쓴 인돈 박사.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게 자유의 소중함과 공존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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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평생 한국 사랑’ 벽안의 독립 운동가
    • 입력 2010-03-02 07:24:54
    • 수정2010-03-02 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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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절인 오늘 뜻깊은 훈장 한개가 추서됐습니다.

만세시위운동을 돕고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을 알린 한남대 설립자인 고 윌리엄 린튼 박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습니다.

양민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91번째 3.1절 기념식.

건국훈장을 받는 독립유공자 사이에 벽안의 미국인 한 명이 끼여 있습니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고 윌리엄 린튼 박사의 차남, 유진 린튼 씨입니다.

<인터뷰> 유진 린튼(故 윌리엄 린튼 차남) : “아버지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했고, 한국 사람들은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한국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1912년 한국에 온 윌리엄 린튼 박사는 ’인돈’을 한국 이름으로 삼아 한국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군산 영명학교 교장이던 1919년에는 군산의 3.1 만세 운동을 배후 지원하고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과 한국인의 독립의지도 알렸습니다.

전주 신흥학교 교장 당시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을 당하기도 한 린튼 박사는 광복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신사 터에 화장실을 지을 정도로 한국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인터뷰> 천 사무엘(교수 / 인돈학술원장) : “신사 터에다가 공중화장실을 지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광복 후에는 한남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도 애쓴 인돈 박사.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게 자유의 소중함과 공존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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