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산문집 무소유의 저자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던 법정 스님이 오늘 입적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일체의 장례의식을 갖지 말고 저서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질문>
심수련 기자, 법정 스님의 법구가 길상사에 모셔졌는데요. 빈소 분위기, 어땠습니까?
<답변>
평소 고인의 뜻대로 빈소 역시 간결하고 소박한 분위기였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떠날때도 무소유를 실천하셨습니다.
고인의 살아생전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정 스님(2003년 4월):"가진 것이 없으면 적으면 홀가분해요 매인데가 없으니까"
폐암으로 투병해 온 법정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속세 나이,세수 79세입니다.
법구가 모셔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추모 행렬이 밤늦도록 계속됐습니다.
분향소가 마련된 설법전에는 신도들은 물론 스님의 평소 삶을 존경해왔던 대중들이 수십명씩 줄을 서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습니다.
신도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문도 잘하시고 불법을 많이 공부하신 분. 그래도 인자하시고 한 번 불평을 안하시는 분. 그분이. 아주 큰스님이세요."
법정 스님은 유언도 그의 저서 '무소유' 그대로 였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하고 일체의 장례의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평소입던 승복 그대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글쓰기와 평소 생활을 통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것으로 유명하신데, 승려로서 스님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답변>
정갈한 글쓰기와 소박한 생활이 바로 법정 스님의 삶이었습니다.
1932년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전남대 재학중이던 1954년 고승 효봉 스님을 만나 송광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자신이 출가한 송광사 뒷산에 손수 암자를 짓고 홀로 지낸 법정 스님은 17년간 이곳에 머물며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깨달음을 담은 책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방석하나 호롱불 하나로 수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녹취>"진정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또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 그런 것을 지혜와 자비를 널리 일깨우신 분이 법정스님이십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는데요. 스님이 우리 사회에 남긴 발자취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은 종파와 세대, 국경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천주교 사제인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을 찾아 법회를 여는 등 법정 스님은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고 번뇌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무소유라 말하며 대중에게 소박한 행복을 일깨웠던 법정 스님, 스님의 법구는 내일 전남 순천 송광사로 옮겨져 모레 다비식이 봉행될 예정입니다.
산문집 무소유의 저자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던 법정 스님이 오늘 입적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일체의 장례의식을 갖지 말고 저서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질문>
심수련 기자, 법정 스님의 법구가 길상사에 모셔졌는데요. 빈소 분위기, 어땠습니까?
<답변>
평소 고인의 뜻대로 빈소 역시 간결하고 소박한 분위기였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떠날때도 무소유를 실천하셨습니다.
고인의 살아생전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정 스님(2003년 4월):"가진 것이 없으면 적으면 홀가분해요 매인데가 없으니까"
폐암으로 투병해 온 법정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속세 나이,세수 79세입니다.
법구가 모셔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추모 행렬이 밤늦도록 계속됐습니다.
분향소가 마련된 설법전에는 신도들은 물론 스님의 평소 삶을 존경해왔던 대중들이 수십명씩 줄을 서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습니다.
신도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문도 잘하시고 불법을 많이 공부하신 분. 그래도 인자하시고 한 번 불평을 안하시는 분. 그분이. 아주 큰스님이세요."
법정 스님은 유언도 그의 저서 '무소유' 그대로 였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하고 일체의 장례의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평소입던 승복 그대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글쓰기와 평소 생활을 통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것으로 유명하신데, 승려로서 스님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답변>
정갈한 글쓰기와 소박한 생활이 바로 법정 스님의 삶이었습니다.
1932년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전남대 재학중이던 1954년 고승 효봉 스님을 만나 송광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자신이 출가한 송광사 뒷산에 손수 암자를 짓고 홀로 지낸 법정 스님은 17년간 이곳에 머물며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깨달음을 담은 책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방석하나 호롱불 하나로 수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녹취>"진정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또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 그런 것을 지혜와 자비를 널리 일깨우신 분이 법정스님이십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는데요. 스님이 우리 사회에 남긴 발자취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은 종파와 세대, 국경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천주교 사제인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을 찾아 법회를 여는 등 법정 스님은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고 번뇌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무소유라 말하며 대중에게 소박한 행복을 일깨웠던 법정 스님, 스님의 법구는 내일 전남 순천 송광사로 옮겨져 모레 다비식이 봉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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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현장] ‘무소유’ 법정 스님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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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3-11 23:26:26

<앵커 멘트>
산문집 무소유의 저자로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던 법정 스님이 오늘 입적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일체의 장례의식을 갖지 말고 저서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질문>
심수련 기자, 법정 스님의 법구가 길상사에 모셔졌는데요. 빈소 분위기, 어땠습니까?
<답변>
평소 고인의 뜻대로 빈소 역시 간결하고 소박한 분위기였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떠날때도 무소유를 실천하셨습니다.
고인의 살아생전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정 스님(2003년 4월):"가진 것이 없으면 적으면 홀가분해요 매인데가 없으니까"
폐암으로 투병해 온 법정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속세 나이,세수 79세입니다.
법구가 모셔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추모 행렬이 밤늦도록 계속됐습니다.
분향소가 마련된 설법전에는 신도들은 물론 스님의 평소 삶을 존경해왔던 대중들이 수십명씩 줄을 서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습니다.
신도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녹취>"법문도 잘하시고 불법을 많이 공부하신 분. 그래도 인자하시고 한 번 불평을 안하시는 분. 그분이. 아주 큰스님이세요."
법정 스님은 유언도 그의 저서 '무소유' 그대로 였습니다.
그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생에 가져 가지 않도록 출판한 저서를 모두 절판하고 일체의 장례의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평소입던 승복 그대로 다비하고 사리도 찾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글쓰기와 평소 생활을 통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신것으로 유명하신데, 승려로서 스님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답변>
정갈한 글쓰기와 소박한 생활이 바로 법정 스님의 삶이었습니다.
1932년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전남대 재학중이던 1954년 고승 효봉 스님을 만나 송광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자신이 출가한 송광사 뒷산에 손수 암자를 짓고 홀로 지낸 법정 스님은 17년간 이곳에 머물며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깨달음을 담은 책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방석하나 호롱불 하나로 수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녹취>"진정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또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 그런 것을 지혜와 자비를 널리 일깨우신 분이 법정스님이십니다."
<질문>
법정 스님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간 벽 허물기에도 오랫동안 힘써 오셨는데요. 스님이 우리 사회에 남긴 발자취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
법정스님은 종파와 세대, 국경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셨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로 탈바꿈하던 지난 1997년 천주교 사제인 고 김수환 추기경이 이례적으로 길상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법정 스님은 화답으로 명동성당을 찾아 스스로 종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을 찾아 법회를 여는 등 법정 스님은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고 번뇌에 빠진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무소유라 말하며 대중에게 소박한 행복을 일깨웠던 법정 스님, 스님의 법구는 내일 전남 순천 송광사로 옮겨져 모레 다비식이 봉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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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련 기자 h2olil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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