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서 찾은 반세기 넘은 6.25 삐라

입력 2010.04.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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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 펴낸 피어링스씨 공개
美.中, 적 사기 꺾으려 삐라 살포 '심리전' 치열

"우리는 유엔군 포로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치료를 받고 음식도 잘 먹고 화평하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소."

3년 1개월 남짓 이어진 한국전쟁이 미국 주도의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의 '대리전' 양상으로 바뀌고 38선 언저리에서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즈음에 양측은 적 장병의 전투 의지를 꺾고자 고도의 심리전을 병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탈영과 투항을 권유하는 '삐라(전단)'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10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를 펴낸 유호 피어링스(72) 씨는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희귀한 자료일 것"이라면서 조심스럽게 보관해 온 서류첩을 보여주었다.

서류첩에는 그가 대면한 한국전 참전용사들로부터 받은 사진들과 함께 당시 전장에서 이들이 습득했던 유엔군과 중공군 측 회유 삐라가 담겨 있다.

그 중 한 삐라는 3명의 북한군 병사가 전투 중 부상한 사진,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진,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아직도 전장에서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 동료 북한군 병사에게 띄우는 글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삐라에는 "우리는 전선에서 심대한 부상을 입고 유엔군 쪽으로 넘어왔소. 친절한 유엔군은 곧 우리를 도와주었소. 그리고 우리는 유엔군 포로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치료를 받고 이제 완쾌했소. 지금 우리는 음식도 잘 먹고 하로하로(하루하루) 화평하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 다른 삐라에는 천진스런 모습의 북한군 병사가 음식을 먹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동지들이여! 왜 쏘련(소련)을 위하여 값없는 죽엄(죽음)을 하려 합니까? 어서 유엔군 지대로 넘어오십시오"라며 북한 병사를 회유하는 글귀가 담겨 있다.

피어링스 씨는 "내가 한글과 중국어를 몰라 삐라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과 그림만으로도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라며 "실제 삐라가 때때로 심리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한 참전용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삐라를 통한 심리전을 펴기는 유엔군뿐 아니라 중공군 측도 마찬가지였다.

피어링스 씨의 서류첩에는 참전용사들이 원본을 넘겨주기를 꺼려 복사해 보관 중인 대(對) 미군용 중공군 측 삐라도 들어 있는데 중공군이 살포한 삐라 역시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인 채 영어로 회유하는 내용이다.

그 중 한 삐라는 추운 겨울 전장에서 처량한 모습으로 통조림 배급식량을 든 병사의 사진과 온화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칠면조 요리가 차려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준비 중인 미국가정의 사진이 대비돼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패주하며 먹는, 얼어붙은 배급식량..그는 어느 순간이라도 다시 도주해야 하고, 싸우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사기를 꺾은 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자극했다.

이 삐라는 또 "(전장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으라! 이 부당한 전쟁에서 싸움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라고 꼬드기고 있다.

한편 피어링스 씨는 1956년 육군에 입대, 훈련받을 때 처음 전해 들은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 복무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 1995년 은퇴하면서 본격적으로 벨기에의 한국전쟁 참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2년 만학도로서 한국전쟁 참전 기록을 대학 졸업논문으로 썼고 이 논문을 기초로 해 125명의 참전용사를 면담, 작년 5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된 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를 펴냈다.

상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책이어서 출판사로부터 인세 대신 책 30권을 받은 게 전부인 반면,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느라 발품을 파는데 2천500~3천유로가 드는 바람에 '적자'를 봤지만 결코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피어링스 씨는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벨기에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했지만, 제대로 된 기록물이 없음에 안타까웠고 군 입대 직후 처음 접한 한국전에 매료돼 시작했던 일로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도 대학에서 강의하고 이곳저곳에서 한국전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나를 초빙한다"라며 "벨기에에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벨기에는 1950년 12월부터 휴전 때까지 보병 1개 대대를 파병, 연인원 약 3천500명이 참전했으며 106명이 안타깝게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에도 벨기에군 일부가 약 2년간 잔류하다 1955년 6월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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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기에서 찾은 반세기 넘은 6.25 삐라
    • 입력 2010-04-04 08:35:08
    연합뉴스
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 펴낸 피어링스씨 공개 美.中, 적 사기 꺾으려 삐라 살포 '심리전' 치열 "우리는 유엔군 포로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치료를 받고 음식도 잘 먹고 화평하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소." 3년 1개월 남짓 이어진 한국전쟁이 미국 주도의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의 '대리전' 양상으로 바뀌고 38선 언저리에서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즈음에 양측은 적 장병의 전투 의지를 꺾고자 고도의 심리전을 병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탈영과 투항을 권유하는 '삐라(전단)'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10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직접 만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를 펴낸 유호 피어링스(72) 씨는 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희귀한 자료일 것"이라면서 조심스럽게 보관해 온 서류첩을 보여주었다. 서류첩에는 그가 대면한 한국전 참전용사들로부터 받은 사진들과 함께 당시 전장에서 이들이 습득했던 유엔군과 중공군 측 회유 삐라가 담겨 있다. 그 중 한 삐라는 3명의 북한군 병사가 전투 중 부상한 사진,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진,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아직도 전장에서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 동료 북한군 병사에게 띄우는 글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삐라에는 "우리는 전선에서 심대한 부상을 입고 유엔군 쪽으로 넘어왔소. 친절한 유엔군은 곧 우리를 도와주었소. 그리고 우리는 유엔군 포로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치료를 받고 이제 완쾌했소. 지금 우리는 음식도 잘 먹고 하로하로(하루하루) 화평하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 다른 삐라에는 천진스런 모습의 북한군 병사가 음식을 먹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동지들이여! 왜 쏘련(소련)을 위하여 값없는 죽엄(죽음)을 하려 합니까? 어서 유엔군 지대로 넘어오십시오"라며 북한 병사를 회유하는 글귀가 담겨 있다. 피어링스 씨는 "내가 한글과 중국어를 몰라 삐라의 내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과 그림만으로도 적군 병사들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라며 "실제 삐라가 때때로 심리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한 참전용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삐라를 통한 심리전을 펴기는 유엔군뿐 아니라 중공군 측도 마찬가지였다. 피어링스 씨의 서류첩에는 참전용사들이 원본을 넘겨주기를 꺼려 복사해 보관 중인 대(對) 미군용 중공군 측 삐라도 들어 있는데 중공군이 살포한 삐라 역시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인 채 영어로 회유하는 내용이다. 그 중 한 삐라는 추운 겨울 전장에서 처량한 모습으로 통조림 배급식량을 든 병사의 사진과 온화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칠면조 요리가 차려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준비 중인 미국가정의 사진이 대비돼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패주하며 먹는, 얼어붙은 배급식량..그는 어느 순간이라도 다시 도주해야 하고, 싸우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사기를 꺾은 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자극했다. 이 삐라는 또 "(전장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으라! 이 부당한 전쟁에서 싸움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라고 꼬드기고 있다. 한편 피어링스 씨는 1956년 육군에 입대, 훈련받을 때 처음 전해 들은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 복무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 1995년 은퇴하면서 본격적으로 벨기에의 한국전쟁 참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2년 만학도로서 한국전쟁 참전 기록을 대학 졸업논문으로 썼고 이 논문을 기초로 해 125명의 참전용사를 면담, 작년 5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된 벨기에군 한국전 참전 기록서를 펴냈다. 상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책이어서 출판사로부터 인세 대신 책 30권을 받은 게 전부인 반면,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느라 발품을 파는데 2천500~3천유로가 드는 바람에 '적자'를 봤지만 결코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피어링스 씨는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벨기에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했지만, 제대로 된 기록물이 없음에 안타까웠고 군 입대 직후 처음 접한 한국전에 매료돼 시작했던 일로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도 대학에서 강의하고 이곳저곳에서 한국전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나를 초빙한다"라며 "벨기에에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벨기에는 1950년 12월부터 휴전 때까지 보병 1개 대대를 파병, 연인원 약 3천500명이 참전했으며 106명이 안타깝게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에도 벨기에군 일부가 약 2년간 잔류하다 1955년 6월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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