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명필’ 창암 이삼만 선생 재조명

입력 2010.04.2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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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 서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전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수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행운 유수(行雲流水), 구름이 소리없이 지나가듯 물이 잔잔히 흘러가듯...

2백여 년 세월이 지났지만 창암 이삼만 선생의 힘있는 필체가 오롯이 살아있습니다.

일흔여덟 평생 글공부와 후학 양성에 매진한 대학자는 당대 젊은이들이 글 속 지혜를 구하고, 과거 시험만을 위한 글공부를 경계하라는 스무 자의 글씨를 남깁니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국에까지 신필(神筆)로 알려졌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 예술혼이 담긴 보묵 40여 점이 공개됐습니다.

<인터뷰> 이문현(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 "창암 선생 탄생 240주년, 4주갑을 맞아 조선 후기 명필로 이름을 날렸지만 추사의 빛에 가려져 있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글 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와 같이 자신만의 필체를 개척했던 것과는 달리 해서, 행서, 초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고루 섭렵하며 '화동서법'을 통해 바른 글쓰기와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하루에 벼루 3개를 뚫을 정도로 글 연습에 매진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질 정도로 창암 이삼만 선생은 명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생애 끝에 옛것을 따르는 게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고 여겼던 창암 이삼만 선생, 그의 높고 깊은 작품 세계가 2백여 년 세월을 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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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3대 명필’ 창암 이삼만 선생 재조명
    • 입력 2010-04-20 07: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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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 서예 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전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수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행운 유수(行雲流水), 구름이 소리없이 지나가듯 물이 잔잔히 흘러가듯... 2백여 년 세월이 지났지만 창암 이삼만 선생의 힘있는 필체가 오롯이 살아있습니다. 일흔여덟 평생 글공부와 후학 양성에 매진한 대학자는 당대 젊은이들이 글 속 지혜를 구하고, 과거 시험만을 위한 글공부를 경계하라는 스무 자의 글씨를 남깁니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국에까지 신필(神筆)로 알려졌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 예술혼이 담긴 보묵 40여 점이 공개됐습니다. <인터뷰> 이문현(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 "창암 선생 탄생 240주년, 4주갑을 맞아 조선 후기 명필로 이름을 날렸지만 추사의 빛에 가려져 있던 창암 이삼만 선생의글 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와 같이 자신만의 필체를 개척했던 것과는 달리 해서, 행서, 초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고루 섭렵하며 '화동서법'을 통해 바른 글쓰기와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하루에 벼루 3개를 뚫을 정도로 글 연습에 매진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질 정도로 창암 이삼만 선생은 명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생애 끝에 옛것을 따르는 게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고 여겼던 창암 이삼만 선생, 그의 높고 깊은 작품 세계가 2백여 년 세월을 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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