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리 전투 60년…‘푸른 눈’ 노병의 회고

입력 2010.05.26 (22:10) 수정 2010.05.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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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0년 전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용사들이 노인이 되어 전투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처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푸른 눈동자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국현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60년 만에 찾은 격전의 현장.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던 뜨거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얼굴 깊이 패인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많은게 변했습니다.



이제는 잊혀질 법도 하지만 당시를 떠올리던 노병의 눈가는 어느덧 촉촉해졌습니다.



2차대전의 발지전투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했던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



나흘간의 혈투 끝에 4백 명 남짓의 프랑스군과 미군은 3만 명 넘는 중공군을 물리쳤습니다.



1.4 후퇴 이후 계속 밀리던 UN 군이 처음으로 전세를 뒤집어 반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자크 부땅(프랑스 참전용사):"(감동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폐허였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는 육군과 해군 3천4백여 명이 참전해 262명이 목숨을 잃었고, 해마다 지평리에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KBS 뉴스 국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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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평리 전투 60년…‘푸른 눈’ 노병의 회고
    • 입력 2010-05-26 22:10:36
    • 수정2010-05-26 23: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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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0년 전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용사들이 노인이 되어 전투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처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푸른 눈동자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습니다.

국현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60년 만에 찾은 격전의 현장.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던 뜨거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얼굴 깊이 패인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많은게 변했습니다.

이제는 잊혀질 법도 하지만 당시를 떠올리던 노병의 눈가는 어느덧 촉촉해졌습니다.

2차대전의 발지전투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했던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

나흘간의 혈투 끝에 4백 명 남짓의 프랑스군과 미군은 3만 명 넘는 중공군을 물리쳤습니다.

1.4 후퇴 이후 계속 밀리던 UN 군이 처음으로 전세를 뒤집어 반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자크 부땅(프랑스 참전용사):"(감동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폐허였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는 육군과 해군 3천4백여 명이 참전해 262명이 목숨을 잃었고, 해마다 지평리에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KBS 뉴스 국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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