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한 달에 통닭 140마리 주문, ‘무서워서’

입력 2010.06.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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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조직폭력배들이 유흥업소를 상대로 수 억 원의 상납금을 뜯어낸 것이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통닭 전문점을 차리고,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강매를 한 것인데요.



이민우 기자, 어떻게 조직폭력배가 통닭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한 겁니까?



<리포트>



합법적인 방법으로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루에 여섯 통 씩, 23곳의 업소에 통닭 강매 문자를 보내고, 돈을 뜯어냈습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한 업체가 지불한 통닭 값은 2백 만 원! 또한 칠순잔치 참석금과 쌀값 등 이리저리 핑계를 대 업주들에게 뜯어낸 금액이 무려 1억 3천 만 원입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싫다고 못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서입니다.



부산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지난해 12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 언제나 많은 주문 부탁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발신인은 통닭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 평범한 통닭집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조직폭력배들이 통닭집을 차려서, 업주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개업을 했으니까 이용을 해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업주와 관련 종업원들 상대로 강매해서..."



조폭도 보통 조폭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 바닥에선 ’연산동 대통령’으로 불리는 무서운 조폭이었습니다.



하루에 날아온 문자 메시지가 무려 여섯 통. 주문할 때까지 계속 메시지를 보내, 무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녹취> 피해 업체 : "많이 시켜 먹을 때는 (통닭은) 많이 시켜 먹었죠. (한 업체에서요?)예, 그렇죠."



그래서 한 달 동안 주문한 통닭이 140마리! 하루 평균 4마리 이상 시킨 것입니다.



문자 메시지 그대로 ‘많은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내내 주문한 통닭, 다 먹을 수도 없고, 버리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그렇다고 통닭을 안 살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자꾸 먹으면 질리고 하니까 등한시할 때, 계속 이용하라는 협박이 있어서... 거절할 시, 폭행이나 협박, 영업방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메시지를 받은 것은 김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유흥 주점들은 매일 같이 ‘통닭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요.



23개 업체가 매일 통닭 주문하는 게 일과였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문자메시지를 받고 (업체들이) 매일 2-3마리씩 통닭을 강매 당해 사 먹었고, 몇 개월에 걸쳐서 (한 업체당) 총 300만 원 상당의 통닭을 사 먹었습니다."



거물급 조폭의 통닭집,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영업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불법) 영업을 한다면,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합법화하기 위해서, 통닭집을 차려놓고 직접 영업을..."



통닭 메시지뿐만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칠순 잔치 축하 메시지도 날아왔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칠순 잔치를 빌미로 해서 업주들에게 축하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니까 (업주들은) 참석을 하게 되고, 사례가 공공연하게..."



칠순잔치에 50만원씩 내고 억지 축하를 해주고, 쌀값이 없다는 이유로 수십만 원 씩 빼앗기고, 업주들의 수난은 끝이 없었습니다.



보호비 명목으로 많게는 100만 원까지 내게 하는 전통적인 조폭 수법도 동원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8개월 동안 업주들이 뜯긴 돈은 1억 3천 만 원, 예외는 없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업소 보호비 명목으로, 매월 일정 금액의 돈을 상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계속적인 협박도 이루어지고 했습니다. (피의자는) 상당히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피해 업주들의 말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폭행도 없었고, 통닭도 좋아서 시켰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종업원들이 인사 안 한다고 때리고 그랬다는데요?) 글쎄요. 그런 일 처음 들어보는데요."



<인터뷰> 피해 업체 : "저희가 닭은 시켜먹지, (강매) 그런 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닭을 좋아해서 한 번씩 먹고, 친하신 손님 오면 대접한다고 닭 한 마리 시켜서... 누가 닭 시키라 한 건 없습니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조직폭력배의 뒷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뒷일을 봐주니까, 어느 정도 주변을 지키고... 서로 공생관계죠. 술 먹고, 행패 부리고, 계산 못 하고... 일반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떼인 술값도 받아주고, 받아주는 대신 술값 중 얼마를 가져가라 하고...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알잖아요."



게다가 피해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경우 후환이 두려웠습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돈 뜯겼다고 누가 얘기하겠어요. 보복당하겠죠, 얘기했다간..."



경찰은 통닭집을 가장해 금품을 갈취한 조직폭력배 4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24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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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한 달에 통닭 140마리 주문, ‘무서워서’
    • 입력 2010-06-02 09:14:05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조직폭력배들이 유흥업소를 상대로 수 억 원의 상납금을 뜯어낸 것이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통닭 전문점을 차리고,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강매를 한 것인데요.

이민우 기자, 어떻게 조직폭력배가 통닭 가게를 차릴 생각을 한 겁니까?

<리포트>

합법적인 방법으로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루에 여섯 통 씩, 23곳의 업소에 통닭 강매 문자를 보내고, 돈을 뜯어냈습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한 업체가 지불한 통닭 값은 2백 만 원! 또한 칠순잔치 참석금과 쌀값 등 이리저리 핑계를 대 업주들에게 뜯어낸 금액이 무려 1억 3천 만 원입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싫다고 못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서입니다.

부산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지난해 12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 언제나 많은 주문 부탁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발신인은 통닭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 평범한 통닭집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조직폭력배들이 통닭집을 차려서, 업주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개업을 했으니까 이용을 해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업주와 관련 종업원들 상대로 강매해서..."

조폭도 보통 조폭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 바닥에선 ’연산동 대통령’으로 불리는 무서운 조폭이었습니다.

하루에 날아온 문자 메시지가 무려 여섯 통. 주문할 때까지 계속 메시지를 보내, 무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녹취> 피해 업체 : "많이 시켜 먹을 때는 (통닭은) 많이 시켜 먹었죠. (한 업체에서요?)예, 그렇죠."

그래서 한 달 동안 주문한 통닭이 140마리! 하루 평균 4마리 이상 시킨 것입니다.

문자 메시지 그대로 ‘많은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내내 주문한 통닭, 다 먹을 수도 없고, 버리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그렇다고 통닭을 안 살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자꾸 먹으면 질리고 하니까 등한시할 때, 계속 이용하라는 협박이 있어서... 거절할 시, 폭행이나 협박, 영업방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메시지를 받은 것은 김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유흥 주점들은 매일 같이 ‘통닭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요.

23개 업체가 매일 통닭 주문하는 게 일과였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문자메시지를 받고 (업체들이) 매일 2-3마리씩 통닭을 강매 당해 사 먹었고, 몇 개월에 걸쳐서 (한 업체당) 총 300만 원 상당의 통닭을 사 먹었습니다."

거물급 조폭의 통닭집,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영업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불법) 영업을 한다면,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합법화하기 위해서, 통닭집을 차려놓고 직접 영업을..."

통닭 메시지뿐만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칠순 잔치 축하 메시지도 날아왔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칠순 잔치를 빌미로 해서 업주들에게 축하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니까 (업주들은) 참석을 하게 되고, 사례가 공공연하게..."

칠순잔치에 50만원씩 내고 억지 축하를 해주고, 쌀값이 없다는 이유로 수십만 원 씩 빼앗기고, 업주들의 수난은 끝이 없었습니다.

보호비 명목으로 많게는 100만 원까지 내게 하는 전통적인 조폭 수법도 동원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8개월 동안 업주들이 뜯긴 돈은 1억 3천 만 원, 예외는 없었습니다.

<인터뷰> 임도영 (경사/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업소 보호비 명목으로, 매월 일정 금액의 돈을 상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계속적인 협박도 이루어지고 했습니다. (피의자는) 상당히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피해 업주들의 말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폭행도 없었고, 통닭도 좋아서 시켰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종업원들이 인사 안 한다고 때리고 그랬다는데요?) 글쎄요. 그런 일 처음 들어보는데요."

<인터뷰> 피해 업체 : "저희가 닭은 시켜먹지, (강매) 그런 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닭을 좋아해서 한 번씩 먹고, 친하신 손님 오면 대접한다고 닭 한 마리 시켜서... 누가 닭 시키라 한 건 없습니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조직폭력배의 뒷심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뒷일을 봐주니까, 어느 정도 주변을 지키고... 서로 공생관계죠. 술 먹고, 행패 부리고, 계산 못 하고... 일반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떼인 술값도 받아주고, 받아주는 대신 술값 중 얼마를 가져가라 하고...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알잖아요."

게다가 피해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경우 후환이 두려웠습니다.

<인터뷰> 피해 업체 : "돈 뜯겼다고 누가 얘기하겠어요. 보복당하겠죠, 얘기했다간..."

경찰은 통닭집을 가장해 금품을 갈취한 조직폭력배 4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24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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