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6·15 공동 선언’ 10주년

입력 2010.06.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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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된 ‘6.15 남북공동선언’이 올해로 10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면서, 6.15 선언은 남과 북 모두에서 ‘남북 공영’이라는 그 본래의 취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6.15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 또한 둘로 나뉘어 분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데요.

발표 10주년을 맞은 ‘6.15 공동선언’의 현주소를 살펴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김대중평화센터 주최의 이날 행사에는 주인공인 고 김 전 대통령 없이 이희호 여사와 주요 야당 인사들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정부측 대표로는 엄종식 통일부 차관이 참석했고, 축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 여부가 주목됐던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불참입니다.

같은 날 조계사에서 열린 민간단체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주최의 기념식, 그리고 이틀 앞서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야권 주최 범국민대회는 야권 인사들과 지지세력들만이 자리를 매웠습니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개최된 6.15 공동선언 10주년 기념행사는 이처럼 반쪽행사로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간의 육로 개방, 개성공단 사업 등 교류를 본격화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화해․협력 분위기는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으로 발생한 지난 2002년 2차 연평해전을 계기로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함으로서 제 2차 북핵위기가 발발했고, 2003년 8월, 6자회담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남북관계 또한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이어 2006년에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반발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석 달 뒤 1차 핵실험까지 강행했습니다.

경제협력과 대북지원, 이른바 ‘햇볕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운 것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며 대북 협력사업은 ‘퍼주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이조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북한이 계속적으로 대남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활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남한 당국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파구를 찾던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임기 종료를 넉 달 앞두고 북한과 2차 정상회담을 전격실시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경제협력 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10.4 합의를 이끌어냈는데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자 논란이 일었습니다.

직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은 교체됐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지원이 핵으로 돌아왔다는 인식 하에 ‘북한의 선 핵 포기, 후 관계개선’이라는 대북정책의 대원칙을 천명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2008년 4월 1일):"북 핵 포기 우선론은 핵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그에 장애만 조성하며 북남관계도 평화도 다 부정하는 대결 선언, 전쟁 선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자 금강산 관광은잠정 중단됐습니다.

나아가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한 달 뒤에는 대청해전까지 일으켰습니다.

이후에도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몰아붙이며 금강산 남측 부동산을 일방적으로 몰수하고, 급기야는 잠수정을 몰래 보내 천안함을 공격하는 등 한반도를 초긴장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인터뷰>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북한의 6.15 선언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우리가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이 두 번의 핵실험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2일, 북한은 우리 정부의 심리전 재개를 비판하며 16년 만에 또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습니다.

<녹취>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중대 포고(조선중앙TV/ 6월12일):"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역적패당의 아성인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북한은, 남한 정부가 6.15선언을 부정하고 있다고 반복주장하며 책임을 남측에 전가시켰습니다.

<녹취>양형섭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 부위원장/조선중앙TV/6월14일):"온 겨레는 6.15 시대의 모든 북남 합의들을 파기하고, 전쟁을 몰아오고 있는 괴뢰패당의 민족 반역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짓부숴 버려야 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한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라며 맞받아쳤습니다.

<녹취>천해성(통일부 대변인/지난 14일):"핵개발이라든지 핵실험, 남북대화 중단, 통행차단, 나아가 천안함 사태 등 각종 도발을 통해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오히려 북한입니다."

<녹취>조선중앙TV(6월12일):"남조선의 통일인사 한상렬 목사가 12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12일,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열 목사가 통일부의 승인 없이 불법 입북했습니다.

6.15 10주년 북측행사 참석이 목적인데, 한 고문은 북측이 마련한 보고대회에 참석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김일성 생가까지 방문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6.15 정신의 계승을 주장하는 진보 진영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대결정책’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김상근(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우리 앞에 놓인 가장 절실한 6.15공동선언 실천의 길은... 민족대결의 외길을 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극단주의적 한반도 정책을 바꿔내는 것입니다."

야당도 이에 발맞춰 6.15 선언 이행 촉구 결의안까지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근본적인 자세 변화가 우선이라며 오히려 강력한 대북정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남주홍(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우리더러 강경하다고 그러는데 한국 정부가 강경한 게 뭐 있습니까? 사실을 직시하고 얘기하셔야 됩니다."

정부는 6.15 선언의 유효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정파에 따라 정부의 진정성을 보는 시각은 사뭇 다른 게 현실입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은 단 하나, 한반도에서 핵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과, 고질적인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남북 모두의 전향적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남과 북은 때로는 협력, 때로는 갈등 관계 속에서 서로의 필요에 따른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이율배반적 행태와 함께, 일방적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는 현 정부의 입장이 맞물리면서 남북 간 본질적 긴장이 내재돼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남남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6.15 선언의 진정한 정신과 의미가 무엇일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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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6·15 공동 선언’ 10주년
    • 입력 2010-06-19 10:12:19
    남북의 창
지난 200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된 ‘6.15 남북공동선언’이 올해로 10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면서, 6.15 선언은 남과 북 모두에서 ‘남북 공영’이라는 그 본래의 취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6.15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 또한 둘로 나뉘어 분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데요. 발표 10주년을 맞은 ‘6.15 공동선언’의 현주소를 살펴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김대중평화센터 주최의 이날 행사에는 주인공인 고 김 전 대통령 없이 이희호 여사와 주요 야당 인사들이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정부측 대표로는 엄종식 통일부 차관이 참석했고, 축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 여부가 주목됐던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불참입니다. 같은 날 조계사에서 열린 민간단체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주최의 기념식, 그리고 이틀 앞서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야권 주최 범국민대회는 야권 인사들과 지지세력들만이 자리를 매웠습니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개최된 6.15 공동선언 10주년 기념행사는 이처럼 반쪽행사로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간의 육로 개방, 개성공단 사업 등 교류를 본격화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화해․협력 분위기는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으로 발생한 지난 2002년 2차 연평해전을 계기로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함으로서 제 2차 북핵위기가 발발했고, 2003년 8월, 6자회담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남북관계 또한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이어 2006년에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반발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석 달 뒤 1차 핵실험까지 강행했습니다. 경제협력과 대북지원, 이른바 ‘햇볕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운 것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며 대북 협력사업은 ‘퍼주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이조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북한이 계속적으로 대남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활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남한 당국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파구를 찾던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임기 종료를 넉 달 앞두고 북한과 2차 정상회담을 전격실시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경제협력 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10.4 합의를 이끌어냈는데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자 논란이 일었습니다. 직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은 교체됐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지원이 핵으로 돌아왔다는 인식 하에 ‘북한의 선 핵 포기, 후 관계개선’이라는 대북정책의 대원칙을 천명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2008년 4월 1일):"북 핵 포기 우선론은 핵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그에 장애만 조성하며 북남관계도 평화도 다 부정하는 대결 선언, 전쟁 선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자 금강산 관광은잠정 중단됐습니다. 나아가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한 달 뒤에는 대청해전까지 일으켰습니다. 이후에도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몰아붙이며 금강산 남측 부동산을 일방적으로 몰수하고, 급기야는 잠수정을 몰래 보내 천안함을 공격하는 등 한반도를 초긴장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인터뷰>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북한의 6.15 선언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우리가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이 두 번의 핵실험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2일, 북한은 우리 정부의 심리전 재개를 비판하며 16년 만에 또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습니다. <녹취>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중대 포고(조선중앙TV/ 6월12일):"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역적패당의 아성인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북한은, 남한 정부가 6.15선언을 부정하고 있다고 반복주장하며 책임을 남측에 전가시켰습니다. <녹취>양형섭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 부위원장/조선중앙TV/6월14일):"온 겨레는 6.15 시대의 모든 북남 합의들을 파기하고, 전쟁을 몰아오고 있는 괴뢰패당의 민족 반역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짓부숴 버려야 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한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라며 맞받아쳤습니다. <녹취>천해성(통일부 대변인/지난 14일):"핵개발이라든지 핵실험, 남북대화 중단, 통행차단, 나아가 천안함 사태 등 각종 도발을 통해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오히려 북한입니다." <녹취>조선중앙TV(6월12일):"남조선의 통일인사 한상렬 목사가 12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12일,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열 목사가 통일부의 승인 없이 불법 입북했습니다. 6.15 10주년 북측행사 참석이 목적인데, 한 고문은 북측이 마련한 보고대회에 참석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김일성 생가까지 방문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6.15 정신의 계승을 주장하는 진보 진영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대결정책’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김상근(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우리 앞에 놓인 가장 절실한 6.15공동선언 실천의 길은... 민족대결의 외길을 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극단주의적 한반도 정책을 바꿔내는 것입니다." 야당도 이에 발맞춰 6.15 선언 이행 촉구 결의안까지 제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근본적인 자세 변화가 우선이라며 오히려 강력한 대북정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남주홍(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우리더러 강경하다고 그러는데 한국 정부가 강경한 게 뭐 있습니까? 사실을 직시하고 얘기하셔야 됩니다." 정부는 6.15 선언의 유효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정파에 따라 정부의 진정성을 보는 시각은 사뭇 다른 게 현실입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은 단 하나, 한반도에서 핵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과, 고질적인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남북 모두의 전향적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남과 북은 때로는 협력, 때로는 갈등 관계 속에서 서로의 필요에 따른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이율배반적 행태와 함께, 일방적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는 현 정부의 입장이 맞물리면서 남북 간 본질적 긴장이 내재돼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남남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6.15 선언의 진정한 정신과 의미가 무엇일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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