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당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것이 유행 가요죠.
6.25 전쟁중에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장병들을 위로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등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탄생했습니다.
조성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8월 포화가 멈추지 않았던 미아리 고개, 원로 가수 반야월씨는 고갯길을 넘던 중에 사랑하는 5살짜리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녹취> 반야월(원로가수 93세) : "양식 구하러 간다고 미아리 고개를 (딸 아이를) 업고 넘어오다가 막 화약이 터지고 영양실조에다가 거기서 눈 감았다 이거야..."
자식을 잃은 애끊는 슬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선에 나간 어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선야곡,
고향에 두고 온 부모 생각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고단한 피난 살이의 설움과 애환도, 헤어진 가족 걱정도 노래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 그 속에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노래가 꽃피웠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지금까지 와있는 것이 아닌가..."
빗발치던 포탄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중 가요들...
치열한 전장의 아픔을 딛고 삶의 의지를 복돋아 줬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당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것이 유행 가요죠.
6.25 전쟁중에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장병들을 위로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등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탄생했습니다.
조성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8월 포화가 멈추지 않았던 미아리 고개, 원로 가수 반야월씨는 고갯길을 넘던 중에 사랑하는 5살짜리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녹취> 반야월(원로가수 93세) : "양식 구하러 간다고 미아리 고개를 (딸 아이를) 업고 넘어오다가 막 화약이 터지고 영양실조에다가 거기서 눈 감았다 이거야..."
자식을 잃은 애끊는 슬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선에 나간 어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선야곡,
고향에 두고 온 부모 생각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고단한 피난 살이의 설움과 애환도, 헤어진 가족 걱정도 노래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 그 속에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노래가 꽃피웠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지금까지 와있는 것이 아닌가..."
빗발치던 포탄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중 가요들...
치열한 전장의 아픔을 딛고 삶의 의지를 복돋아 줬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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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나오게 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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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06-23 22:18:14
<앵커 멘트>
당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것이 유행 가요죠.
6.25 전쟁중에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장병들을 위로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등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탄생했습니다.
조성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8월 포화가 멈추지 않았던 미아리 고개, 원로 가수 반야월씨는 고갯길을 넘던 중에 사랑하는 5살짜리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녹취> 반야월(원로가수 93세) : "양식 구하러 간다고 미아리 고개를 (딸 아이를) 업고 넘어오다가 막 화약이 터지고 영양실조에다가 거기서 눈 감았다 이거야..."
자식을 잃은 애끊는 슬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선에 나간 어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선야곡,
고향에 두고 온 부모 생각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고단한 피난 살이의 설움과 애환도, 헤어진 가족 걱정도 노래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 그 속에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노래가 꽃피웠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지금까지 와있는 것이 아닌가..."
빗발치던 포탄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중 가요들...
치열한 전장의 아픔을 딛고 삶의 의지를 복돋아 줬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당대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것이 유행 가요죠.
6.25 전쟁중에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고 장병들을 위로했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등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탄생했습니다.
조성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8월 포화가 멈추지 않았던 미아리 고개, 원로 가수 반야월씨는 고갯길을 넘던 중에 사랑하는 5살짜리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녹취> 반야월(원로가수 93세) : "양식 구하러 간다고 미아리 고개를 (딸 아이를) 업고 넘어오다가 막 화약이 터지고 영양실조에다가 거기서 눈 감았다 이거야..."
자식을 잃은 애끊는 슬픔,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선에 나간 어린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선야곡,
고향에 두고 온 부모 생각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고단한 피난 살이의 설움과 애환도, 헤어진 가족 걱정도 노래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 그 속에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노래가 꽃피웠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지금까지 와있는 것이 아닌가..."
빗발치던 포탄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중 가요들...
치열한 전장의 아픔을 딛고 삶의 의지를 복돋아 줬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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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훈 기자 aufheb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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