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6·25 60주년, 젊은 세대의 안보 체험

입력 2010.06.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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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0년이 됐습니다.

그만큼 6.25를 직접 경험한 세대보다 6.25를 역사로 배우는 세대가 우리 사회 절대 다수가 됐다는 얘기인데요.

6.25 전쟁은 이들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전쟁의 참혹함을 알까요? 아니면 지켜야할 조국의 소중함을 알까요?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요즘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피로써 지켜낸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국내외 20대 한민족 젊은이들이 분단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는 현장을 남북의 창이 취재했습니다.

<녹취> "필승! 신고합니다. 한승일 등 74명은 해병대 병영 입소 체험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지난 22일, 서부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해병 2사단에서 특별한 입소식이 열렸습니다.
해외 교포 대학생 42명과 국내 대학생 32명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요.

대통령에게 통일정책을 자문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가 미래 한국의 발전을 책임 질 국내외 한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분단 현실 체험 캠프입니다.

<인터뷰> 김병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미래 세대들은 왜 우리나라가 분단이 됐는지, 또 공산주의가 뭔지 냉전시대를 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분단현장, 안보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통일캠프라는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38선 침범으로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3년 넘게 계속된 전쟁은 국군과 16개 참전국 용사들을 비롯해, 수백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 땅에 남은 것은 천만의 이산가족과 수만의 고아라는 상처뿐이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야 남과 북은 서로를 겨누던 총구를 거뒀습니다.

6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한인 젊은이들이 임진각에 모였습니다.

미주와 유럽, 아시아 각국에 살고 있는 교포 대학생 40여 명이 국내 대학생 30여 명과 함께 통일촌까지 민통선 지역 탐방에 나섰습니다.
조국의 분단현장을 처음으로 찾은 젊은이들의 눈에는 치열한 전쟁의 상흔 대신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가 다가왔습니다.

학생들은 이어 통일촌 민가에서 3.5km 떨어진 곳, 서울에서 불과 44km 거리에 있는 제 3땅굴을 찾았습니다.

‘하나의 갱도가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북한은 지난 1972년부터 남한 기습공격용 땅굴을 파기 시작했는데요.

남침용 땅굴은 치밀한 계획 하에 은밀히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지난 3월의 천안함 사건과 유사성이 많다고 학생들은 말합니다.

<인터뷰>고나희 (서울여대):"천안함 일과 관련해서 남침에 있어서 많이 계획적이었던 것 같고 전쟁의 위험성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판문점.

천안함 사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가운데 낮은 콘크리트 단을 하나 두고 침묵 속에서 팽팽한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유엔사가 관리하는 건물 중 하나인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은 지난 57년 동안 약 600회에 이르는 회담을 치르며 분단의 역사를 기록해 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이 회담장에 놓인 탁자의 중앙을 가로지르지만, 건물 안에서만큼은 이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아직 한반도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판문점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처음으로 냉정한 분단의 현실과 마주했습니다.

<인터뷰> 서지수(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학생):"북한군 두 명이 내려와서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어요."

<인터뷰> 김현우(캐다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학생):"(JSA)영화를 봤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긴장감이 흐를 것 같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막상 직접 와보니까 상당한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실시된 행정안전부의 조사 결과 전국의 20대 남녀 10명 중 6명이 6.25 전쟁의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대답했는데요.

젊은이들에게 6.25는 역사속의 사건일 뿐, 관심거리가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지켜지는 곳, 이곳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캠프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고된 병영훈련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녹취> "정신 통일! 정신 통일!"

생애 처음, 훈련용 로프에 매달린 학생들.

해외에서 온 이들에게는 ‘정신 통일’이라는 발음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지치지 않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훈련을 진행할수록 자신의 한계치에 도달해갔는데요.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힘든 훈련을 통해 학생들은 목숨을 바친 6.25희생 장병들의 헌신과 조국 산하를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혜(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학생):"한국 군인들은 국가에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 걸 배웠어요."

언제든 전쟁이 재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대치 상태.

이 현실을 간과한 채 편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에게 이번 DMZ 체험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양동호(미국 린든우드 대학교 학생):"DMZ에 와보니까 가슴아픈 사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해서 분단 현실에 대해 좀 더 깨닫고 살겠습니다."

지난 3월, 우리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으로 46명의 젊은 병사들을 잃었습니다.

60년 가까이 휴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우리가 분단된 국가의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인터뷰> 김병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안보라는 것은 사실은 본능입니다. 외부에서 적이 침입해오면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한마음으로 방어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죠. 그 것이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의 자랑거리였었고 전통이었습니다."

천안함 사태는 6.25가 끝난 전쟁이 아니라 불안한 휴전협정체제에서 대치를 계속해왔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나아가 지난 60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해이해져만 가던 안보의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한민족 젊은이들이 조국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갈 바를 고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교훈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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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6·25 60주년, 젊은 세대의 안보 체험
    • 입력 2010-06-26 10:35:22
    남북의 창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0년이 됐습니다. 그만큼 6.25를 직접 경험한 세대보다 6.25를 역사로 배우는 세대가 우리 사회 절대 다수가 됐다는 얘기인데요. 6.25 전쟁은 이들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전쟁의 참혹함을 알까요? 아니면 지켜야할 조국의 소중함을 알까요?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요즘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피로써 지켜낸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국내외 20대 한민족 젊은이들이 분단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는 현장을 남북의 창이 취재했습니다. <녹취> "필승! 신고합니다. 한승일 등 74명은 해병대 병영 입소 체험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지난 22일, 서부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해병 2사단에서 특별한 입소식이 열렸습니다. 해외 교포 대학생 42명과 국내 대학생 32명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요. 대통령에게 통일정책을 자문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가 미래 한국의 발전을 책임 질 국내외 한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분단 현실 체험 캠프입니다. <인터뷰> 김병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미래 세대들은 왜 우리나라가 분단이 됐는지, 또 공산주의가 뭔지 냉전시대를 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분단현장, 안보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통일캠프라는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38선 침범으로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3년 넘게 계속된 전쟁은 국군과 16개 참전국 용사들을 비롯해, 수백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 땅에 남은 것은 천만의 이산가족과 수만의 고아라는 상처뿐이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야 남과 북은 서로를 겨누던 총구를 거뒀습니다. 6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한인 젊은이들이 임진각에 모였습니다. 미주와 유럽, 아시아 각국에 살고 있는 교포 대학생 40여 명이 국내 대학생 30여 명과 함께 통일촌까지 민통선 지역 탐방에 나섰습니다. 조국의 분단현장을 처음으로 찾은 젊은이들의 눈에는 치열한 전쟁의 상흔 대신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가 다가왔습니다. 학생들은 이어 통일촌 민가에서 3.5km 떨어진 곳, 서울에서 불과 44km 거리에 있는 제 3땅굴을 찾았습니다. ‘하나의 갱도가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북한은 지난 1972년부터 남한 기습공격용 땅굴을 파기 시작했는데요. 남침용 땅굴은 치밀한 계획 하에 은밀히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지난 3월의 천안함 사건과 유사성이 많다고 학생들은 말합니다. <인터뷰>고나희 (서울여대):"천안함 일과 관련해서 남침에 있어서 많이 계획적이었던 것 같고 전쟁의 위험성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판문점. 천안함 사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가운데 낮은 콘크리트 단을 하나 두고 침묵 속에서 팽팽한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유엔사가 관리하는 건물 중 하나인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은 지난 57년 동안 약 600회에 이르는 회담을 치르며 분단의 역사를 기록해 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이 회담장에 놓인 탁자의 중앙을 가로지르지만, 건물 안에서만큼은 이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아직 한반도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판문점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처음으로 냉정한 분단의 현실과 마주했습니다. <인터뷰> 서지수(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학생):"북한군 두 명이 내려와서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어요." <인터뷰> 김현우(캐다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학생):"(JSA)영화를 봤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긴장감이 흐를 것 같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막상 직접 와보니까 상당한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실시된 행정안전부의 조사 결과 전국의 20대 남녀 10명 중 6명이 6.25 전쟁의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대답했는데요. 젊은이들에게 6.25는 역사속의 사건일 뿐, 관심거리가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지켜지는 곳, 이곳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에서 캠프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고된 병영훈련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녹취> "정신 통일! 정신 통일!" 생애 처음, 훈련용 로프에 매달린 학생들. 해외에서 온 이들에게는 ‘정신 통일’이라는 발음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지치지 않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훈련을 진행할수록 자신의 한계치에 도달해갔는데요.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힘든 훈련을 통해 학생들은 목숨을 바친 6.25희생 장병들의 헌신과 조국 산하를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습니다. <인터뷰> 김지혜(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학생):"한국 군인들은 국가에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 걸 배웠어요." 언제든 전쟁이 재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대치 상태. 이 현실을 간과한 채 편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에게 이번 DMZ 체험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양동호(미국 린든우드 대학교 학생):"DMZ에 와보니까 가슴아픈 사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해서 분단 현실에 대해 좀 더 깨닫고 살겠습니다." 지난 3월, 우리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으로 46명의 젊은 병사들을 잃었습니다. 60년 가까이 휴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우리가 분단된 국가의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인터뷰> 김병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안보라는 것은 사실은 본능입니다. 외부에서 적이 침입해오면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한마음으로 방어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죠. 그 것이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의 자랑거리였었고 전통이었습니다." 천안함 사태는 6.25가 끝난 전쟁이 아니라 불안한 휴전협정체제에서 대치를 계속해왔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나아가 지난 60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해이해져만 가던 안보의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한민족 젊은이들이 조국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갈 바를 고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교훈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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