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

입력 2010.06.27 (07:33) 수정 2010.07.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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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주, 6.25 발발 60년이 됐는데요. 당시 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를 도왔었지요. 회원국 가운데는 민간 병원선을 파견한 나라가 있었는데요.



바로, 덴마크입니다.



당시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그리고 덴마크인들이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선재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왕이 통치하는 북유럽 국가, 덴마크.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찬양한 노래입니다.



덴마크 적십자 단장이었던 카이 해머릭 함장과 187명의 민간인 승무원들이 승선한 병원선,유틀란디아 호가 코펜하겐 항구를 떠난 건 지난 1951년 1월.



유틀란디아호는 45일만에 부산에 도착해 곧바로 의료 지원 활동에 들어갑니다.



당시 승무원과 의료진은 혈액형까지 고려해 선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녹취> 엘세 브래쉬(간호사) : "우리는 다양한 혈액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언제든 수혈을 해줄 수 있었어요"



1953년, 15살이었던 김주완 씨.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누워 있던 김씨는 덴마크 의료진의 눈에 띄어 병원선으로 옮겨졌습니다.



병원선에서 두 차례 수술을 받고 소생한 김씨는 1994년 덴마크의 은인을 찾아갔습니다.



<인터뷰> 김주완 : "당신을 다시 보기 위해서 40년 동안을 이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내가 찾아올때까지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그런 얘길 했어요."



유틀란디아호는 수술실 4곳과 3백 56개의 병상, 치과 수술대와 X선 장비까지 갖춘 해상 종합 병원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5천 명 가까운 군인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민간인도 6천 명 가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만 8천명 선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틀란디아호는 이제 사라졌지만, 낯선 나라를 향해 내민 사랑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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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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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0-07-09 17: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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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6.25 발발 60년이 됐는데요. 당시 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를 도왔었지요. 회원국 가운데는 민간 병원선을 파견한 나라가 있었는데요.

바로, 덴마크입니다.

당시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그리고 덴마크인들이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선재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여왕이 통치하는 북유럽 국가, 덴마크.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찬양한 노래입니다.

덴마크 적십자 단장이었던 카이 해머릭 함장과 187명의 민간인 승무원들이 승선한 병원선,유틀란디아 호가 코펜하겐 항구를 떠난 건 지난 1951년 1월.

유틀란디아호는 45일만에 부산에 도착해 곧바로 의료 지원 활동에 들어갑니다.

당시 승무원과 의료진은 혈액형까지 고려해 선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녹취> 엘세 브래쉬(간호사) : "우리는 다양한 혈액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언제든 수혈을 해줄 수 있었어요"

1953년, 15살이었던 김주완 씨.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누워 있던 김씨는 덴마크 의료진의 눈에 띄어 병원선으로 옮겨졌습니다.

병원선에서 두 차례 수술을 받고 소생한 김씨는 1994년 덴마크의 은인을 찾아갔습니다.

<인터뷰> 김주완 : "당신을 다시 보기 위해서 40년 동안을 이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내가 찾아올때까지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그런 얘길 했어요."

유틀란디아호는 수술실 4곳과 3백 56개의 병상, 치과 수술대와 X선 장비까지 갖춘 해상 종합 병원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5천 명 가까운 군인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민간인도 6천 명 가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만 8천명 선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틀란디아호는 이제 사라졌지만, 낯선 나라를 향해 내민 사랑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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