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을사늑약 前 수차례 ‘고종 납치’ 시도

입력 2010.07.12 (22:07) 수정 2010.07.12 (22: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묻힐 뻔한 역사의 진실이 한 외교문서로 드러났습니다.



일제가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고종황제 납치를 시도했는지 박에스더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고종의 납치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서울 주재 독일공사 잘데른이 본국에 보낸 전보입니다.



1905년 2월 14일 독일공사는 "일본인들이 고종을 납치하려 했으나,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고종이 완강히 저항했다"고 썼습니다.



기밀문서로 분류됐고, 독일황제가 읽었다는 뜻의 SM 표시가 있습니다.



6월 2일의 전보는 보다 구체적입니다.



"일본이 몇 주 전부터 한국을 보호령으로 만들고 고종을 폐위시켜 일본으로 납치하는 데 대해 강대국에 문의했다"



"영국은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반대하면서 일본을 비난했다"고 돼있습니다.



반복적인 시도, 거기에 관련국의 동의까지 구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고종 납치 시도설을 뒷받침할 최초의 입증 자료입니다.



<녹취> 정성수(명지대 교수/문서 발견):"고종은 왕족을 구한다든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완강히 저항했고, 일본 입장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일본으로 데려갔습니다.



황족을 붕괴시켜 조선을 식민지화하려 했던 일본의 기도는 이미 그 이전부터 계획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박에스더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日, 을사늑약 前 수차례 ‘고종 납치’ 시도
    • 입력 2010-07-12 22:07:17
    • 수정2010-07-12 22:26:16
    뉴스 9
<앵커 멘트>

묻힐 뻔한 역사의 진실이 한 외교문서로 드러났습니다.

일제가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고종황제 납치를 시도했는지 박에스더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고종의 납치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서울 주재 독일공사 잘데른이 본국에 보낸 전보입니다.

1905년 2월 14일 독일공사는 "일본인들이 고종을 납치하려 했으나,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한 고종이 완강히 저항했다"고 썼습니다.

기밀문서로 분류됐고, 독일황제가 읽었다는 뜻의 SM 표시가 있습니다.

6월 2일의 전보는 보다 구체적입니다.

"일본이 몇 주 전부터 한국을 보호령으로 만들고 고종을 폐위시켜 일본으로 납치하는 데 대해 강대국에 문의했다"

"영국은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반대하면서 일본을 비난했다"고 돼있습니다.

반복적인 시도, 거기에 관련국의 동의까지 구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고종 납치 시도설을 뒷받침할 최초의 입증 자료입니다.

<녹취> 정성수(명지대 교수/문서 발견):"고종은 왕족을 구한다든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완강히 저항했고, 일본 입장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1907년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일본으로 데려갔습니다.

황족을 붕괴시켜 조선을 식민지화하려 했던 일본의 기도는 이미 그 이전부터 계획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박에스더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