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화요일은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7주년 되는 날이었죠.
휴전 당시 동․중부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국군과 연합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공군 진영 사이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포성은 멎었지만 그 때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이곳 동․중부 전선에는 전쟁의 상흔을 직접 체험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선 깊숙한 분단의 현장에서 전쟁 전후 세대들이 서로 공감을 쌓아가는 현장을 남북의 창이 동행 취재했습니다.
지난 26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휴전선 250km 종주’의 첫걸음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전쟁 반대! 전쟁 반대!"
6.25한국전쟁 휴전 57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가 마련한 이번 종주행사에는, 유족회 회원 200여 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30여 명과 참전 유공자 30명이 함께 참가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인터뷰>최해근(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회장) : "6.25 전쟁에 대한 걸 다시 상기시키고 국가 안보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부 전선 끝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행렬은 서부 전선 파주로 향합니다.
휴전협정 직전까지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한반도의 잘린 허리 250Km를 따라 전쟁 전․후세대의 뜻 깊은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진부령을 넘어 도착한 곳은 화천 평화의 댐.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염원의 종’이 올려다 보이는 야영장에서 참가자들은 한 데 어울려 텐트를 치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를 둔 대학생에게 참전용사들과의 이번 분단현장 체험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인터뷰>최영훈(28살/대학생/참전용사 가족) : "할아버지께서 6.25 때 참전하신 곳에 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대 분들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듣고 느끼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참전용사들은 함께하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인터뷰>양태성(80살/6.25 참전 국가유공자) : "전후세대는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전쟁이 어떤지 모른다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80이 다 넘었으니까 4~5년 있으면 가는데 우리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 나라를 맡기는 겁니다."
<녹취> "전쟁 반대! 북핵 반대!"
다음 날, 남녀노소 참가자들은 철원의 말재고개를 넘어 1.5km를 함께 걸었습니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철원 땅의 푸른 산야를 함께 걸으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목소리를 한 데 모았습니다.
<인터뷰>이연산(65살/전몰군경유족회 광주지부 사무국장) : "저희 아버지께서 6.25 때 전사하셨는데 이 길을 다시 걷는다는 이 시간, 이 감회가 정말 눈물겹고 북한의 무모한 행동에 다시 한 번 분노를 느끼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전쟁 경험이 전무한 젊은이들은 선배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조국의 분단현실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인터뷰>정선희(28살/대학생) : "이곳이 6.25 전쟁과 남북의 현실이구나. 감회가 새롭고요. 천안함 사건도 다시 한 번 돌이키게 됐고, 평소 생활하면서도 다시 한 번 안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함께 걷는 걸음걸음마다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고 나라 사랑의 공감대를 키워나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노동당사 앞에 참가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섰습니다.
1946년 초, 북한 노동당 철원지역 당사였던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한데요.
반공활동 양민을 고문하고 수탈한 바로 그 현장인 철원 노동당사는 반세기 넘게 이 자리에 남아 전쟁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취> "임들의 영령 속에 오늘을 살면서도 우린 아직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 앞에 선 유가족들은 가슴에 묻어둔 아버지와 남편, 전우를 떠올리며 애써 누르고 있던 슬픔을 쏟아냅니다.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노병은 당시의 치열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김국태(백마고지 참전용사) : "우리 한국군은 1개 사단병력이 8천 명, 중공군 38군은 3개 사단을 이끌고 인해전술을 쓰는 바람에 약 6~7만 명을 상대로 10일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열흘간 고지 쟁탈을 위한 전투가 12번 벌어졌고,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에서는 본래 땅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포격이 오갔습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백마고지를 찾아왔다는 아주머니는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뷰>정순(64세/6.25참전 전사자 가족) : "이 행사에 오늘 처음으로 나와 보니까... 너무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곳에서 전사했지만, 이름조차 남지 않은 희생자들도 적지 않은데요.
아버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딸은 허탈하기만 합니다.
총탄 자국보다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은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인터뷰>오선진(24살/대학생) : "6.25전쟁이 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른들, 직접 참전하신 분들을 만나 보니까 아 전쟁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되새겨야 될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바삐 달려온 걸음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마지막으로 멈춰섰습니다.
<녹취>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6.25의 아픔을 간직한 전국의 유족회원 천여 명과 행사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휴전선 250Km 종주는 마무리됐습니다.
1953년 7월 27일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6.25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잠시 멈춘 정전 협정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별다른 기념행사 없이 휴전일을 보내는 반면에 미국은 이 날을 국가 공식기념일로 지정해 명예롭고 경건하게 추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국민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6.25 정전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참전용사들이나 젊은 세대 모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선을 돌아보며 6.25가 끝난 전쟁이 아니라 잠시 멈춰진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그냥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동안 너무 잊고 지낸 것은 아닌지 모두가 되돌아볼 일입니다.
휴전 당시 동․중부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국군과 연합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공군 진영 사이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포성은 멎었지만 그 때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이곳 동․중부 전선에는 전쟁의 상흔을 직접 체험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선 깊숙한 분단의 현장에서 전쟁 전후 세대들이 서로 공감을 쌓아가는 현장을 남북의 창이 동행 취재했습니다.
지난 26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휴전선 250km 종주’의 첫걸음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전쟁 반대! 전쟁 반대!"
6.25한국전쟁 휴전 57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가 마련한 이번 종주행사에는, 유족회 회원 200여 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30여 명과 참전 유공자 30명이 함께 참가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인터뷰>최해근(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회장) : "6.25 전쟁에 대한 걸 다시 상기시키고 국가 안보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부 전선 끝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행렬은 서부 전선 파주로 향합니다.
휴전협정 직전까지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한반도의 잘린 허리 250Km를 따라 전쟁 전․후세대의 뜻 깊은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진부령을 넘어 도착한 곳은 화천 평화의 댐.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염원의 종’이 올려다 보이는 야영장에서 참가자들은 한 데 어울려 텐트를 치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를 둔 대학생에게 참전용사들과의 이번 분단현장 체험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인터뷰>최영훈(28살/대학생/참전용사 가족) : "할아버지께서 6.25 때 참전하신 곳에 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대 분들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듣고 느끼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참전용사들은 함께하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인터뷰>양태성(80살/6.25 참전 국가유공자) : "전후세대는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전쟁이 어떤지 모른다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80이 다 넘었으니까 4~5년 있으면 가는데 우리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 나라를 맡기는 겁니다."
<녹취> "전쟁 반대! 북핵 반대!"
다음 날, 남녀노소 참가자들은 철원의 말재고개를 넘어 1.5km를 함께 걸었습니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철원 땅의 푸른 산야를 함께 걸으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목소리를 한 데 모았습니다.
<인터뷰>이연산(65살/전몰군경유족회 광주지부 사무국장) : "저희 아버지께서 6.25 때 전사하셨는데 이 길을 다시 걷는다는 이 시간, 이 감회가 정말 눈물겹고 북한의 무모한 행동에 다시 한 번 분노를 느끼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전쟁 경험이 전무한 젊은이들은 선배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조국의 분단현실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인터뷰>정선희(28살/대학생) : "이곳이 6.25 전쟁과 남북의 현실이구나. 감회가 새롭고요. 천안함 사건도 다시 한 번 돌이키게 됐고, 평소 생활하면서도 다시 한 번 안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함께 걷는 걸음걸음마다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고 나라 사랑의 공감대를 키워나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노동당사 앞에 참가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섰습니다.
1946년 초, 북한 노동당 철원지역 당사였던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한데요.
반공활동 양민을 고문하고 수탈한 바로 그 현장인 철원 노동당사는 반세기 넘게 이 자리에 남아 전쟁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취> "임들의 영령 속에 오늘을 살면서도 우린 아직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 앞에 선 유가족들은 가슴에 묻어둔 아버지와 남편, 전우를 떠올리며 애써 누르고 있던 슬픔을 쏟아냅니다.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노병은 당시의 치열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김국태(백마고지 참전용사) : "우리 한국군은 1개 사단병력이 8천 명, 중공군 38군은 3개 사단을 이끌고 인해전술을 쓰는 바람에 약 6~7만 명을 상대로 10일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열흘간 고지 쟁탈을 위한 전투가 12번 벌어졌고,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에서는 본래 땅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포격이 오갔습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백마고지를 찾아왔다는 아주머니는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뷰>정순(64세/6.25참전 전사자 가족) : "이 행사에 오늘 처음으로 나와 보니까... 너무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곳에서 전사했지만, 이름조차 남지 않은 희생자들도 적지 않은데요.
아버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딸은 허탈하기만 합니다.
총탄 자국보다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은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인터뷰>오선진(24살/대학생) : "6.25전쟁이 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른들, 직접 참전하신 분들을 만나 보니까 아 전쟁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되새겨야 될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바삐 달려온 걸음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마지막으로 멈춰섰습니다.
<녹취>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6.25의 아픔을 간직한 전국의 유족회원 천여 명과 행사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휴전선 250Km 종주는 마무리됐습니다.
1953년 7월 27일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6.25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잠시 멈춘 정전 협정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별다른 기념행사 없이 휴전일을 보내는 반면에 미국은 이 날을 국가 공식기념일로 지정해 명예롭고 경건하게 추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국민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6.25 정전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참전용사들이나 젊은 세대 모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선을 돌아보며 6.25가 끝난 전쟁이 아니라 잠시 멈춰진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그냥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동안 너무 잊고 지낸 것은 아닌지 모두가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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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한반도] 참전용사와 전후세대의 뜻 깊은 동행
-
- 입력 2010-07-31 10:01:54
지난 27일 화요일은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7주년 되는 날이었죠.
휴전 당시 동․중부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국군과 연합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공군 진영 사이에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포성은 멎었지만 그 때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이곳 동․중부 전선에는 전쟁의 상흔을 직접 체험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선 깊숙한 분단의 현장에서 전쟁 전후 세대들이 서로 공감을 쌓아가는 현장을 남북의 창이 동행 취재했습니다.
지난 26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휴전선 250km 종주’의 첫걸음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전쟁 반대! 전쟁 반대!"
6.25한국전쟁 휴전 57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가 마련한 이번 종주행사에는, 유족회 회원 200여 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30여 명과 참전 유공자 30명이 함께 참가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인터뷰>최해근(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회장) : "6.25 전쟁에 대한 걸 다시 상기시키고 국가 안보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많은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부 전선 끝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행렬은 서부 전선 파주로 향합니다.
휴전협정 직전까지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한반도의 잘린 허리 250Km를 따라 전쟁 전․후세대의 뜻 깊은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진부령을 넘어 도착한 곳은 화천 평화의 댐.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염원의 종’이 올려다 보이는 야영장에서 참가자들은 한 데 어울려 텐트를 치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를 둔 대학생에게 참전용사들과의 이번 분단현장 체험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인터뷰>최영훈(28살/대학생/참전용사 가족) : "할아버지께서 6.25 때 참전하신 곳에 와서 많은 것을 느끼고,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대 분들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듣고 느끼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참전용사들은 함께하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인터뷰>양태성(80살/6.25 참전 국가유공자) : "전후세대는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전쟁이 어떤지 모른다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80이 다 넘었으니까 4~5년 있으면 가는데 우리는 젊은 사람들한테 이 나라를 맡기는 겁니다."
<녹취> "전쟁 반대! 북핵 반대!"
다음 날, 남녀노소 참가자들은 철원의 말재고개를 넘어 1.5km를 함께 걸었습니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철원 땅의 푸른 산야를 함께 걸으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목소리를 한 데 모았습니다.
<인터뷰>이연산(65살/전몰군경유족회 광주지부 사무국장) : "저희 아버지께서 6.25 때 전사하셨는데 이 길을 다시 걷는다는 이 시간, 이 감회가 정말 눈물겹고 북한의 무모한 행동에 다시 한 번 분노를 느끼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전쟁 경험이 전무한 젊은이들은 선배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조국의 분단현실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인터뷰>정선희(28살/대학생) : "이곳이 6.25 전쟁과 남북의 현실이구나. 감회가 새롭고요. 천안함 사건도 다시 한 번 돌이키게 됐고, 평소 생활하면서도 다시 한 번 안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함께 걷는 걸음걸음마다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고 나라 사랑의 공감대를 키워나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 노동당사 앞에 참가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섰습니다.
1946년 초, 북한 노동당 철원지역 당사였던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한데요.
반공활동 양민을 고문하고 수탈한 바로 그 현장인 철원 노동당사는 반세기 넘게 이 자리에 남아 전쟁의 참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취> "임들의 영령 속에 오늘을 살면서도 우린 아직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 앞에 선 유가족들은 가슴에 묻어둔 아버지와 남편, 전우를 떠올리며 애써 누르고 있던 슬픔을 쏟아냅니다.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노병은 당시의 치열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김국태(백마고지 참전용사) : "우리 한국군은 1개 사단병력이 8천 명, 중공군 38군은 3개 사단을 이끌고 인해전술을 쓰는 바람에 약 6~7만 명을 상대로 10일 동안 전쟁을 했습니다."
열흘간 고지 쟁탈을 위한 전투가 12번 벌어졌고,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에서는 본래 땅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포격이 오갔습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백마고지를 찾아왔다는 아주머니는 비석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하고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인터뷰>정순(64세/6.25참전 전사자 가족) : "이 행사에 오늘 처음으로 나와 보니까... 너무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곳에서 전사했지만, 이름조차 남지 않은 희생자들도 적지 않은데요.
아버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딸은 허탈하기만 합니다.
총탄 자국보다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은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인터뷰>오선진(24살/대학생) : "6.25전쟁이 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른들, 직접 참전하신 분들을 만나 보니까 아 전쟁이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되새겨야 될 게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전선을 따라 바삐 달려온 걸음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마지막으로 멈춰섰습니다.
<녹취>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6.25의 아픔을 간직한 전국의 유족회원 천여 명과 행사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휴전선 250Km 종주는 마무리됐습니다.
1953년 7월 27일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6.25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잠시 멈춘 정전 협정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별다른 기념행사 없이 휴전일을 보내는 반면에 미국은 이 날을 국가 공식기념일로 지정해 명예롭고 경건하게 추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국민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6.25 정전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참전용사들이나 젊은 세대 모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선을 돌아보며 6.25가 끝난 전쟁이 아니라 잠시 멈춰진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그냥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동안 너무 잊고 지낸 것은 아닌지 모두가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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