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간부도 ‘창씨개명’ 반대

입력 2010.08.1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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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었던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총독부조차 부담감 때문에 반대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관련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도쿄 김대홍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본 와세다 대학이 지난 1958년부터 4년간 전 조선 총독부 고위 간부 120명의 증언을 채취한 육성 테이프입니다.



총독부 제2인자였던 정무총감은 창씨개명은 총독부로서도 큰 부담이었음을 토로했습니다.



<녹취> 오노(조선총독부 당시 정무총감 : "강제로 (창씨개명을) 실행했어요. 그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총독은 ’무리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속마음은 무리해서라도 바꾸라는 거죠."



거부하는 조선인에겐 자녀들의 교육중지 등 갖은 협박을 했지만 저항만 더 커졌다는 겁니다.



치안을 담당했던 경무국장마저 창씨개명에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녹취> 미쯔하시(조선총독부 당시 경무국장) : "(일본이름으로 바꾸면)누가 누군지, 알수 없게 돼 곤란했거든요. 경찰은 창씨 개명에 협력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또 조선인 징병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 육군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녹취> 이하라(조선총독부 당시 군사보좌관) : (왜, 육군은 조선인 징병을 꺼려했나요?) " 그것은 조선인이 우리에게 총포를 겨누면 곤란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부대를 편성하면서 일제는 조선출신 병사들을 격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육성 증언의 존재는 10년전 알려졌지만, 800분이나 돼 창씨개명 등과 관련된 실제 육성증언은 이번에 KBS가 처음 입수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김대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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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부 간부도 ‘창씨개명’ 반대
    • 입력 2010-08-13 22:08:00
    뉴스 9
<앵커 멘트>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었던 ’창씨개명’에 대해 조선총독부조차 부담감 때문에 반대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관련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도쿄 김대홍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일본 와세다 대학이 지난 1958년부터 4년간 전 조선 총독부 고위 간부 120명의 증언을 채취한 육성 테이프입니다.

총독부 제2인자였던 정무총감은 창씨개명은 총독부로서도 큰 부담이었음을 토로했습니다.

<녹취> 오노(조선총독부 당시 정무총감 : "강제로 (창씨개명을) 실행했어요. 그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총독은 ’무리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속마음은 무리해서라도 바꾸라는 거죠."

거부하는 조선인에겐 자녀들의 교육중지 등 갖은 협박을 했지만 저항만 더 커졌다는 겁니다.

치안을 담당했던 경무국장마저 창씨개명에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녹취> 미쯔하시(조선총독부 당시 경무국장) : "(일본이름으로 바꾸면)누가 누군지, 알수 없게 돼 곤란했거든요. 경찰은 창씨 개명에 협력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또 조선인 징병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 육군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녹취> 이하라(조선총독부 당시 군사보좌관) : (왜, 육군은 조선인 징병을 꺼려했나요?) " 그것은 조선인이 우리에게 총포를 겨누면 곤란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부대를 편성하면서 일제는 조선출신 병사들을 격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육성 증언의 존재는 10년전 알려졌지만, 800분이나 돼 창씨개명 등과 관련된 실제 육성증언은 이번에 KBS가 처음 입수했습니다.

도쿄에서 KBS 뉴스 김대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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