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거짓으로 얼룩진 4대 국새

입력 2010.09.0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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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백 년을 이어온 전통 비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대한민국의 제4대 국새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 민홍규 씨는 결국 전통 비법은 없다고 밝혔는데요.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박원기 기자! (네) 일단, 전통 비법은 없다는 게 밝혀졌지요?

<답변>

네. 지난 1일, 경찰에 출석할 때만 해도 민홍규 씨는 당당했습니다.

전통 비법은 분명히 있다...

변호인을 통해 제작 과정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민홍규(4대 국새 제작단장) : "전통기법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전수 잘되고 있고, 이번 국새는 산청에서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17시간에 걸친 경찰의 강도높은 조사에 민 씨는 말을 바꾸었습니다.

<인터뷰> 민홍규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경찰에 충실히 조사받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일, 경찰에 두 번째 소환될 때의 모습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전통비법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경찰은 민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입니다.

<질문> 민 씨가 왜 저렇게 빨리 시인을 했을까요?

<답변>

지난달 18일, 전 국새제작단원 이창수 씨가 처음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해도 민 씨는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었습니다.

<인터뷰> 민홍규 : "모자라서 제가 가지고 있던 금도 넣어 썼어요. 근데 그때, 시험할 때 남은 게 이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봐요. 제가 그럼 뭘 갖고 로비를 했다는 겁니까? 뭘 갖고."

그런 민 씨였지만, 경찰의 전방위적 압박에 결국, 무너졌습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민 씨의 자택과 작업장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압수한 물품만도 7박스나 됐는데요.

이를 분석해 민 씨에게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경찰이 확보한 압수물에는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가 없었습니다.

반면 실리콘과 석고 등 현대식 주물 재료만 눈에 띄었는데요.

여기에 민 씨를 소환 조사하던 당일, 민 씨가 국새를 제작한 장소라고 주장했던 경남 산청의 국새 전각전도 경찰이 압수 수색했는데요.

민 씨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그렇군요. 앞으로의 수사는 어떻게 될까요?

<답변>

민씨가 국새 제작과정에서 금 1.2kg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에 이제 경찰 수사의 초점은 횡령한 금의 사용처와 금 도장 로비 의혹으로 옮겨졌습니다.

우선 금 횡령 의혹부터 살펴 보면 경찰은 민 씨가 국새를 만들고 나고 남은 금 6백 그램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주물과정에서 거푸집에 금물을 넣을 때 쓰는 도구죠. 금 성분이 포함된 '물대'도 반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빼돌린 금은 모두 1.2킬로그램으로, 당시 시가로 3천5백만 원 어치가 됩니다.

경찰은 민 씨가 빼돌린 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캐고 있습니다.

경찰은 일단 지난 2007년 12월 이후 민 씨가 정치인과 프로골퍼 등에게 건넸다는 4개에 도장에 이 금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민 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과 정관계 인사에게 금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고 밝혔는데요.

민 씨는 돈을 받고 만들어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도 정황상 로비 의혹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전·현직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도장에 대해서는 실제 전달됐는지 여부도 불확실해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질문> 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의아한 게, 모두가 이렇게 쉽게 속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거든요? 어떻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6백 년을 이어온 전통비법이 있다는 민 씨 주장에 대한민국 전부가 속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한데요.

한 마디로 허술한 검증과정이 만들어낸 촌극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새라든가, 전각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충분한 연구도 돼 있지 않고, 검증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부와 학계의 검증은 너무 소홀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뒤에야 국새의 성분과 제작방식을 점검하고, 국새가 현대식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확인만 제대로 했다면, 벌써 민 씨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민 씨가 제1대 국새 제작자였던 석불 정기호 선생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던 부분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찰이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색한 결과 정기호 선생은 1대 국새 제작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나기까지 했습니다.

충분히 검증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황동과 니켈, 인조다이아몬드로 만든 2백만 원짜리 국새를 40억 원짜리 명품이라며 전시한 백화점이나, 신기의 경지라며 민 씨의 작품전을 열어준 박물관까지 6백 년 비전이라는 민 씨의 말만 믿고 어떠한 검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이제 국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답변>

네, 민 씨의 사기극과 상관 없이 국새 자체엔 문제가 없으니 그냥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국새의 권위가 이미 심각하게 떨어졌으니까 새 국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뷰> 김남석(행정안전부 차관) :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서 국새문제를 검토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행안부는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거나, 제3대 국새를 보수해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국새를 제작한 곳으로 알려진 경남 산청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답변>

수십억 원을 들여 국새 기념관 사업까지 벌였던 산청군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 제4대 대한민국 국새가 탄생하던 때를 감개무량하게 지켜봤던 군민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인터뷰> 강순경(당시 산청군청 국새담당) : "개물식 할 때도 가마에서 거푸집을 가지고 와 깨는 것을 사람들이 다 봤습니다."

민 씨는 그 동안 경남 산청의 전각전에서 4대 국새를 제작했다고 말해 왔고, 산청군은 국새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산청군이 지금까지 국새기념관 사업에 쏟아부은 예산만 47억 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추가예산 20억 원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된 시점에서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자, 산청군은 아까운 예산만 날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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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보기] 거짓으로 얼룩진 4대 국새
    • 입력 2010-09-05 07: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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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백 년을 이어온 전통 비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대한민국의 제4대 국새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 민홍규 씨는 결국 전통 비법은 없다고 밝혔는데요.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박원기 기자! (네) 일단, 전통 비법은 없다는 게 밝혀졌지요? <답변> 네. 지난 1일, 경찰에 출석할 때만 해도 민홍규 씨는 당당했습니다. 전통 비법은 분명히 있다... 변호인을 통해 제작 과정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민홍규(4대 국새 제작단장) : "전통기법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전수 잘되고 있고, 이번 국새는 산청에서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17시간에 걸친 경찰의 강도높은 조사에 민 씨는 말을 바꾸었습니다. <인터뷰> 민홍규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경찰에 충실히 조사받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일, 경찰에 두 번째 소환될 때의 모습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전통비법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경찰은 민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예정입니다. <질문> 민 씨가 왜 저렇게 빨리 시인을 했을까요? <답변> 지난달 18일, 전 국새제작단원 이창수 씨가 처음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해도 민 씨는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었습니다. <인터뷰> 민홍규 : "모자라서 제가 가지고 있던 금도 넣어 썼어요. 근데 그때, 시험할 때 남은 게 이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봐요. 제가 그럼 뭘 갖고 로비를 했다는 겁니까? 뭘 갖고." 그런 민 씨였지만, 경찰의 전방위적 압박에 결국, 무너졌습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민 씨의 자택과 작업장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압수한 물품만도 7박스나 됐는데요. 이를 분석해 민 씨에게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경찰이 확보한 압수물에는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가 없었습니다. 반면 실리콘과 석고 등 현대식 주물 재료만 눈에 띄었는데요. 여기에 민 씨를 소환 조사하던 당일, 민 씨가 국새를 제작한 장소라고 주장했던 경남 산청의 국새 전각전도 경찰이 압수 수색했는데요. 민 씨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그렇군요. 앞으로의 수사는 어떻게 될까요? <답변> 민씨가 국새 제작과정에서 금 1.2kg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에 이제 경찰 수사의 초점은 횡령한 금의 사용처와 금 도장 로비 의혹으로 옮겨졌습니다. 우선 금 횡령 의혹부터 살펴 보면 경찰은 민 씨가 국새를 만들고 나고 남은 금 6백 그램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주물과정에서 거푸집에 금물을 넣을 때 쓰는 도구죠. 금 성분이 포함된 '물대'도 반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빼돌린 금은 모두 1.2킬로그램으로, 당시 시가로 3천5백만 원 어치가 됩니다. 경찰은 민 씨가 빼돌린 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캐고 있습니다. 경찰은 일단 지난 2007년 12월 이후 민 씨가 정치인과 프로골퍼 등에게 건넸다는 4개에 도장에 이 금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민 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과 정관계 인사에게 금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고 밝혔는데요. 민 씨는 돈을 받고 만들어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도 정황상 로비 의혹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전·현직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도장에 대해서는 실제 전달됐는지 여부도 불확실해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질문> 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의아한 게, 모두가 이렇게 쉽게 속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거든요? 어떻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6백 년을 이어온 전통비법이 있다는 민 씨 주장에 대한민국 전부가 속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한데요. 한 마디로 허술한 검증과정이 만들어낸 촌극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새라든가, 전각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충분한 연구도 돼 있지 않고, 검증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부와 학계의 검증은 너무 소홀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뒤에야 국새의 성분과 제작방식을 점검하고, 국새가 현대식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확인만 제대로 했다면, 벌써 민 씨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민 씨가 제1대 국새 제작자였던 석불 정기호 선생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던 부분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찰이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색한 결과 정기호 선생은 1대 국새 제작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나기까지 했습니다. 충분히 검증 가능했던 부분입니다. 황동과 니켈, 인조다이아몬드로 만든 2백만 원짜리 국새를 40억 원짜리 명품이라며 전시한 백화점이나, 신기의 경지라며 민 씨의 작품전을 열어준 박물관까지 6백 년 비전이라는 민 씨의 말만 믿고 어떠한 검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이제 국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답변> 네, 민 씨의 사기극과 상관 없이 국새 자체엔 문제가 없으니 그냥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국새의 권위가 이미 심각하게 떨어졌으니까 새 국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뷰> 김남석(행정안전부 차관) :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서 국새문제를 검토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행안부는 새로운 국새를 제작하거나, 제3대 국새를 보수해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문> 국새를 제작한 곳으로 알려진 경남 산청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답변> 수십억 원을 들여 국새 기념관 사업까지 벌였던 산청군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 제4대 대한민국 국새가 탄생하던 때를 감개무량하게 지켜봤던 군민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인터뷰> 강순경(당시 산청군청 국새담당) : "개물식 할 때도 가마에서 거푸집을 가지고 와 깨는 것을 사람들이 다 봤습니다." 민 씨는 그 동안 경남 산청의 전각전에서 4대 국새를 제작했다고 말해 왔고, 산청군은 국새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산청군이 지금까지 국새기념관 사업에 쏟아부은 예산만 47억 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추가예산 20억 원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된 시점에서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자, 산청군은 아까운 예산만 날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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