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장인입니다

입력 2010.09.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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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작년까지 무려 16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기능 강국이란 사실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인천에서는 제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역 예선을 거쳐 선발된 2천여 명의 우수 기능인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데요.

기술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스무 살 권이아 씨.

대구 기능경기대회에서 2년 연속 메달을 거머쥔 이 지역 의상디자인계의 샛별입니다.

국가를 대표할 기능인을 뽑는 전국 대회를 이틀 앞두고 막바지 훈련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이아 씨의 아버지,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입니다.

<녹취> "(이쪽에?) 그렇지. 이 부분이 자연스럽지가 않은데. 곱자(ㄱ모양 자)난 모양으로 쭉 내려오도록.(이거 라인 박기 전에?) 박기 전에 먼저 해야 되지 (또 해?) 계속 해야 돼. 옷이 완성될 때까지."

이아 씨의 아버지 권오탁 씨는 82년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의상디자인 부문 금메달리스트, 즉 국가 대표급 기능인입니다.

<녹취> “이쪽이 더 자연스럽잖아. 이거는 덜 자연스럽고. 조금만 더 해줬으면 좋겠어.”"어떻게 하는지 아빠가 해 봐.“

<녹취> “...깨끗해졌네...”

역시 아빠가 한 수 윕니다.

<녹취> “이아야, 잘 돼 가나?”

가까이 사는 삼촌이 이아 씨네 의상실로 들어섭니다.

<녹취> 삼촌 : “이거를...이 곡선이 여기가 다 죽어야 돼..”

이번엔 삼촌이 훈수를 두려나봅니다.

<녹취> 삼촌 : “각이 딱 진 부분 그것만 날리라고.“

삼촌 권오길 씨 역시 금메달리스트로, 의상디자인 부문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꼭 닮은 두 형제가 한 분야에서 나란히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제 이아 씨가 그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어머니 : “긴장 안 하는 게 최고. 편안하게 하는 게 제일 낫다”

알고 보니 어머니 이원출 씨도 전국 대회 메달리스트. 한 가족이 모두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의상디자인계의 명장인 셈입니다.

<녹취> 아버지 : “제 금메달은 82년도 거고, 84년도에 동생이 금메달, 97년도에 집사람이 은메달. (세 분이 이렇게 입상을 하신 거에요?)네“

<인터뷰> 권이아(2010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자) : “어렸을 때 심심하면 엄마 가게 놀러가잖아요. 그러면 엄마는 재봉하고 있고 아빠도 뭐 하고..그럼 거기서 할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천 잘라서 인형 옷 같은 거 만들고...“

법을 어긴 죄로 보호처분이 결정돼 특별 관리를 받고 있는 10대들이,얼마 전 사고를 제대로 쳤습니다.

최소 3년은 준비해야 대회에 출전한다는 유명 공고 학생들과 맞붙어 메달을 3개나 쓸어온 것입니다.

19살 이민혁 군, 장비를 잡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특수용접 기술로는 광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능인으로 우뚝 섰습니다.

<인터뷰> 이민혁(가명/음성변조) : “처음엔 그냥 등 떠밀려서 시작했는데 여기 와서 용접도 배우고 보람도 느끼고 그러다 보니까 차츰차츰 미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당당히 시 대표 자격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된 민혁 군은,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수줍게 말을 꺼냈습니다.

<인터뷰> 이민혁 : “앞으로 여기 생활 다 잊고 밖에서도 내 미래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 테니까 날 믿고 지켜봐 주라는 그런 말씀..(드리고 싶어요)“

올해 지방기능대회 배관 부문 금메달리스트 최대웅, 은메달리스트 정진우 군입니다.

과거 못나고 실망스러웠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매섭게 반짝입니다.

<녹취> 최은식(고룡정보산업고 교사) : "수평을 재야 돼, 여기서. 다 잘 해놓고 이거 1mm 차이로 금메달,은메달이 바뀌잖아"

대회가 바로 내일, 이젠 짐을 싸야할 시간이지만 학생도 선생님도 작업실을 떠나지 못합니다. 드디어 대회 당일 아침입니다.

<녹취> “B1이랑 B2 사이를 벌리라고?”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지막 점검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녹취> “어, 입장하래요. 아...떨린다.”

<녹취>“권이아? 네”

<녹취>“아휴...(기분이 안 좋아요?) 창가 자리잖아요. (창가 자리가 왜 안 좋아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녹취> “자리에 들어가시지 말고, 앞에서 과제를 받고 설명을 들으셔야 돼요“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습니다.

이아 씨도 이제껏 보지 못 했던 모습입니다.

<녹취> “일자야, 일자. 뒤판은 일자.”

<녹취> “L자인데, 그건?”

<녹취> “L자는 이게 L이죠. J는 이렇게 된 거잖아요.아시겠어요?”

결국 경기는 3시 반이 다 돼서야 시작됐습니다.

<녹취> “선수 여러분 반갑습니다.”

참가자들 사이로 민혁 군이 보입니다.

그런데 선수들보다도 더 심각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인터뷰> 조광중(평예공업고등학교 교사) :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심사 합의사항이요. (참가자는 아니시죠?) “네, 선생님입니다.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보시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알아야 문제점이 있으면 얘기를 하고 그러죠. (선생님이 더 긴장하신 것 같아요.) 긴장되죠. 많이 됩니다. 학생하고 담당 선생님하고 똑같은 마음이니까...“

개인은 물론 학교와 지역의 명예까지 걸려 있어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2시30분부터 경기 시작입니다. 시작!”

<녹취> “옛날 같으면 결혼할 나이야. (결혼해버릴까?) 하하”

내내 조용하던 대웅 군이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회장에서 보고 싶던 부모님을 만나게 되자, 스스로도 대견한지 은근히 자기 자랑에 신이 났습니다.

<녹취> 최대웅(광주 기능경기대회 배관부문 금메달 수상) : "내가 진짜 진로를 잘 잡았으니까 여기 입상권 선수로 나서지... 여기 와서 느낀 게 너무 많아. 만날 ‘우리는 의리네 어쩌네’ 하더니 여기 들어오니까 얘기가 싹 바뀌더만."

이제 들어갈 시간입니다.

<녹취> 아버지 : “좌우지간 배운 데로만 해. 떨지 말고. 파이팅!!”

<인터뷰> 대웅이 어머니 : “저희는 이렇게까지 달라지리라고는 기대를 안 했죠.우선 저희가 못 잡으니까, 더 이상 엇나가지만 마라 하는 마음에서 여기를 보냈는데... 아까도 그러는 거에요. '엄마, 일은 어떻게 하고 오셨어요' 모든 게 벌써 남부터 먼저 생각을 하잖아요.”

대회 마지막 날,하나둘 완성된 작품이 나오고 심사위원들이 채점에 들어갔습니다.

<녹취> “도면대로 안 한 거는 3점인가 빼. 3점 감점이더라고.”

이 작품들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나라 1등 용접 기능인을 탄생시키게 될까요?

초록색 투피스가 제법 모습을 갖췄습니다.

우아한 앞 주름과 요즘 유행하는 ‘파워 숄더’가 핵심. 하나라도 더 매만지는 데 몰입한 선수들은 창문 밖 구경꾼들의 시선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녹취> “선수 다하신 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자 이제 그만합니다. 종료됐습니다.“

<녹취> (잘했다.) “뒤에만 잘 됐지 앞에 주름이 너무 이상하다.“

심사 결과는 내일 공식 발표됩니다.

각 부문별 수상자들은 내년에 영국에서 열리는 기능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합니다.

이들의 기술 경쟁력이 기능 한국을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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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장인입니다
    • 입력 2010-09-13 10:47:13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작년까지 무려 16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기능 강국이란 사실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인천에서는 제45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역 예선을 거쳐 선발된 2천여 명의 우수 기능인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데요. 기술에 인생을 건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스무 살 권이아 씨. 대구 기능경기대회에서 2년 연속 메달을 거머쥔 이 지역 의상디자인계의 샛별입니다. 국가를 대표할 기능인을 뽑는 전국 대회를 이틀 앞두고 막바지 훈련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이아 씨의 아버지,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입니다. <녹취> "(이쪽에?) 그렇지. 이 부분이 자연스럽지가 않은데. 곱자(ㄱ모양 자)난 모양으로 쭉 내려오도록.(이거 라인 박기 전에?) 박기 전에 먼저 해야 되지 (또 해?) 계속 해야 돼. 옷이 완성될 때까지." 이아 씨의 아버지 권오탁 씨는 82년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의상디자인 부문 금메달리스트, 즉 국가 대표급 기능인입니다. <녹취> “이쪽이 더 자연스럽잖아. 이거는 덜 자연스럽고. 조금만 더 해줬으면 좋겠어.”"어떻게 하는지 아빠가 해 봐.“ <녹취> “...깨끗해졌네...” 역시 아빠가 한 수 윕니다. <녹취> “이아야, 잘 돼 가나?” 가까이 사는 삼촌이 이아 씨네 의상실로 들어섭니다. <녹취> 삼촌 : “이거를...이 곡선이 여기가 다 죽어야 돼..” 이번엔 삼촌이 훈수를 두려나봅니다. <녹취> 삼촌 : “각이 딱 진 부분 그것만 날리라고.“ 삼촌 권오길 씨 역시 금메달리스트로, 의상디자인 부문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꼭 닮은 두 형제가 한 분야에서 나란히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제 이아 씨가 그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어머니 : “긴장 안 하는 게 최고. 편안하게 하는 게 제일 낫다” 알고 보니 어머니 이원출 씨도 전국 대회 메달리스트. 한 가족이 모두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의상디자인계의 명장인 셈입니다. <녹취> 아버지 : “제 금메달은 82년도 거고, 84년도에 동생이 금메달, 97년도에 집사람이 은메달. (세 분이 이렇게 입상을 하신 거에요?)네“ <인터뷰> 권이아(2010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자) : “어렸을 때 심심하면 엄마 가게 놀러가잖아요. 그러면 엄마는 재봉하고 있고 아빠도 뭐 하고..그럼 거기서 할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천 잘라서 인형 옷 같은 거 만들고...“ 법을 어긴 죄로 보호처분이 결정돼 특별 관리를 받고 있는 10대들이,얼마 전 사고를 제대로 쳤습니다. 최소 3년은 준비해야 대회에 출전한다는 유명 공고 학생들과 맞붙어 메달을 3개나 쓸어온 것입니다. 19살 이민혁 군, 장비를 잡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특수용접 기술로는 광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능인으로 우뚝 섰습니다. <인터뷰> 이민혁(가명/음성변조) : “처음엔 그냥 등 떠밀려서 시작했는데 여기 와서 용접도 배우고 보람도 느끼고 그러다 보니까 차츰차츰 미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당당히 시 대표 자격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된 민혁 군은,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수줍게 말을 꺼냈습니다. <인터뷰> 이민혁 : “앞으로 여기 생활 다 잊고 밖에서도 내 미래를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 테니까 날 믿고 지켜봐 주라는 그런 말씀..(드리고 싶어요)“ 올해 지방기능대회 배관 부문 금메달리스트 최대웅, 은메달리스트 정진우 군입니다. 과거 못나고 실망스러웠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겠다는 의지가 매섭게 반짝입니다. <녹취> 최은식(고룡정보산업고 교사) : "수평을 재야 돼, 여기서. 다 잘 해놓고 이거 1mm 차이로 금메달,은메달이 바뀌잖아" 대회가 바로 내일, 이젠 짐을 싸야할 시간이지만 학생도 선생님도 작업실을 떠나지 못합니다. 드디어 대회 당일 아침입니다. <녹취> “B1이랑 B2 사이를 벌리라고?”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지막 점검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녹취> “어, 입장하래요. 아...떨린다.” <녹취>“권이아? 네” <녹취>“아휴...(기분이 안 좋아요?) 창가 자리잖아요. (창가 자리가 왜 안 좋아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녹취> “자리에 들어가시지 말고, 앞에서 과제를 받고 설명을 들으셔야 돼요“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습니다. 이아 씨도 이제껏 보지 못 했던 모습입니다. <녹취> “일자야, 일자. 뒤판은 일자.” <녹취> “L자인데, 그건?” <녹취> “L자는 이게 L이죠. J는 이렇게 된 거잖아요.아시겠어요?” 결국 경기는 3시 반이 다 돼서야 시작됐습니다. <녹취> “선수 여러분 반갑습니다.” 참가자들 사이로 민혁 군이 보입니다. 그런데 선수들보다도 더 심각해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인터뷰> 조광중(평예공업고등학교 교사) :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심사 합의사항이요. (참가자는 아니시죠?) “네, 선생님입니다.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보시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알아야 문제점이 있으면 얘기를 하고 그러죠. (선생님이 더 긴장하신 것 같아요.) 긴장되죠. 많이 됩니다. 학생하고 담당 선생님하고 똑같은 마음이니까...“ 개인은 물론 학교와 지역의 명예까지 걸려 있어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2시30분부터 경기 시작입니다. 시작!” <녹취> “옛날 같으면 결혼할 나이야. (결혼해버릴까?) 하하” 내내 조용하던 대웅 군이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회장에서 보고 싶던 부모님을 만나게 되자, 스스로도 대견한지 은근히 자기 자랑에 신이 났습니다. <녹취> 최대웅(광주 기능경기대회 배관부문 금메달 수상) : "내가 진짜 진로를 잘 잡았으니까 여기 입상권 선수로 나서지... 여기 와서 느낀 게 너무 많아. 만날 ‘우리는 의리네 어쩌네’ 하더니 여기 들어오니까 얘기가 싹 바뀌더만." 이제 들어갈 시간입니다. <녹취> 아버지 : “좌우지간 배운 데로만 해. 떨지 말고. 파이팅!!” <인터뷰> 대웅이 어머니 : “저희는 이렇게까지 달라지리라고는 기대를 안 했죠.우선 저희가 못 잡으니까, 더 이상 엇나가지만 마라 하는 마음에서 여기를 보냈는데... 아까도 그러는 거에요. '엄마, 일은 어떻게 하고 오셨어요' 모든 게 벌써 남부터 먼저 생각을 하잖아요.” 대회 마지막 날,하나둘 완성된 작품이 나오고 심사위원들이 채점에 들어갔습니다. <녹취> “도면대로 안 한 거는 3점인가 빼. 3점 감점이더라고.” 이 작품들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나라 1등 용접 기능인을 탄생시키게 될까요? 초록색 투피스가 제법 모습을 갖췄습니다. 우아한 앞 주름과 요즘 유행하는 ‘파워 숄더’가 핵심. 하나라도 더 매만지는 데 몰입한 선수들은 창문 밖 구경꾼들의 시선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녹취> “선수 다하신 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자 이제 그만합니다. 종료됐습니다.“ <녹취> (잘했다.) “뒤에만 잘 됐지 앞에 주름이 너무 이상하다.“ 심사 결과는 내일 공식 발표됩니다. 각 부문별 수상자들은 내년에 영국에서 열리는 기능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합니다. 이들의 기술 경쟁력이 기능 한국을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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