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아들 많이 낳으려 이름 바꿨다”
입력 2010.10.04 (06:08)
수정 2010.10.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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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조(正祖)가 후손, 특히 아들을 많이 두고자 본래 성명인 '이산'의 발음을 '이성'으로 바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정조의 이름은 원래 '이산'으로 읽었지만 1796년 8월 규장전운(奎章全韻)이라는 한자의 소리 사전 발간을 계기로 외자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으로 바꿨으며 정조 사후에도 이 글자는 '셩(성)'으로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안 교수는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자신의 성명과 같다고 해서 평안도와 충청도 고을인 이산(理山)과 이산(尼山)을 각각 초산(楚山)과 이성(尼城)으로 바꿨다며 정조의 원래 이름은 이산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교수는 그러나 정조가 1796년 한자의 소리사전인 규장전운에서 자기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셩)'으로 바꿨다고 주장했습니다.
안 교수는 19세기의 문사인 옥산(玉山) 장지완의 글에서 나타나듯 정조가 자손이 아주 많았던 대구 서씨의 중흥조 서성처럼 후손을 많이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름의 발음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정조의 이름은 원래 '이산'으로 읽었지만 1796년 8월 규장전운(奎章全韻)이라는 한자의 소리 사전 발간을 계기로 외자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으로 바꿨으며 정조 사후에도 이 글자는 '셩(성)'으로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안 교수는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자신의 성명과 같다고 해서 평안도와 충청도 고을인 이산(理山)과 이산(尼山)을 각각 초산(楚山)과 이성(尼城)으로 바꿨다며 정조의 원래 이름은 이산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교수는 그러나 정조가 1796년 한자의 소리사전인 규장전운에서 자기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셩)'으로 바꿨다고 주장했습니다.
안 교수는 19세기의 문사인 옥산(玉山) 장지완의 글에서 나타나듯 정조가 자손이 아주 많았던 대구 서씨의 중흥조 서성처럼 후손을 많이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름의 발음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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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아들 많이 낳으려 이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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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0-10-04 06:08:45
- 수정2010-10-04 14:31:20
조선시대 정조(正祖)가 후손, 특히 아들을 많이 두고자 본래 성명인 '이산'의 발음을 '이성'으로 바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정조의 이름은 원래 '이산'으로 읽었지만 1796년 8월 규장전운(奎章全韻)이라는 한자의 소리 사전 발간을 계기로 외자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으로 바꿨으며 정조 사후에도 이 글자는 '셩(성)'으로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안 교수는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해에 자신의 성명과 같다고 해서 평안도와 충청도 고을인 이산(理山)과 이산(尼山)을 각각 초산(楚山)과 이성(尼城)으로 바꿨다며 정조의 원래 이름은 이산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교수는 그러나 정조가 1796년 한자의 소리사전인 규장전운에서 자기 이름인 '산(示+示)'의 발음을 '성(셩)'으로 바꿨다고 주장했습니다.
안 교수는 19세기의 문사인 옥산(玉山) 장지완의 글에서 나타나듯 정조가 자손이 아주 많았던 대구 서씨의 중흥조 서성처럼 후손을 많이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름의 발음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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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기자 k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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