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前 비서 ‘망명에서 사망까지’

입력 2010.10.11 (07:21) 수정 2010.10.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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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1997년 4월 한국땅을 밟은 황장엽씨가 망명 13년만에 여든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남한에서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서면서 극적인 삶을 살았던 황장엽씨의 생애를 홍희정 기자가 돌아봅니다.

<리포트>

1997년 봄 (2월) 북한에서 수십 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이 최악으로 치닫던 때, 황장엽 씨는 측근인 여광무역 사장 김덕홍 씨와 함께 남한으로 귀순했습니다.

<녹취> 황장엽(98년5월7일):"앞으로 저희들은 남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알려주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황 씨는 귀순 인사 가운데 최고위직이었습니다.

황 씨는 70년대 주체사상을 체계화해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며 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습니다.

김일성대 교수 시절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르쳐 누구보다 김정일을 잘 안다며 선군정치를 독재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정일이 핵무기에 집착하고 있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황장엽:"2006년 김정일 정권 무너뜨려야 핵 문제 해결 가능..."

최근에는 3대 세습을 격렬히 성토했습니다.

지난주 대북 라디오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주민을 굶겨죽인 김정일이 도적의 지위를 3대째 물려 주기 위해 철부지에게 대장감투를 씌워 놓아 민족을 망신시키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황 씨를 눈엣가지로 여겨 4년 전 협박 우편을 보낸 데 이어 올봄에는 공작원 2명이 내려보내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홍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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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장엽 前 비서 ‘망명에서 사망까지’
    • 입력 2010-10-11 07:21:51
    • 수정2010-10-11 1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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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1997년 4월 한국땅을 밟은 황장엽씨가 망명 13년만에 여든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남한에서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서면서 극적인 삶을 살았던 황장엽씨의 생애를 홍희정 기자가 돌아봅니다. <리포트> 1997년 봄 (2월) 북한에서 수십 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이 최악으로 치닫던 때, 황장엽 씨는 측근인 여광무역 사장 김덕홍 씨와 함께 남한으로 귀순했습니다. <녹취> 황장엽(98년5월7일):"앞으로 저희들은 남한 동포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알려주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황 씨는 귀순 인사 가운데 최고위직이었습니다. 황 씨는 70년대 주체사상을 체계화해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며 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냈습니다. 김일성대 교수 시절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르쳐 누구보다 김정일을 잘 안다며 선군정치를 독재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정일이 핵무기에 집착하고 있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황장엽:"2006년 김정일 정권 무너뜨려야 핵 문제 해결 가능..." 최근에는 3대 세습을 격렬히 성토했습니다. 지난주 대북 라디오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주민을 굶겨죽인 김정일이 도적의 지위를 3대째 물려 주기 위해 철부지에게 대장감투를 씌워 놓아 민족을 망신시키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황 씨를 눈엣가지로 여겨 4년 전 협박 우편을 보낸 데 이어 올봄에는 공작원 2명이 내려보내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홍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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