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쾌거’ 장미란 전성시대!
입력 2010.11.19 (19:45)
수정 2010.11.19 (20: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02년 부산, 2006년 카타르 도하, 그리고 2010년 중국 광저우.
`역도 여왕' 장미란이 3수만에 드디어 아시안게임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장미란은 19일 중국 둥관시 둥관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75㎏ 이상급 경기에 출전해 인상 130㎏, 용상 181㎏, 합계 311㎏에 성공하며 우승, 앞서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로 발길을 돌렸던 아쉬움을 모두 떨쳐냈다.
이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연속 우승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낸 장미란은 마지막 남은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일찌감치 국내 무대를 휩쓴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4연패의 위업을 이루며 여자 역도의 최정상을 지켜왔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없었다.
상지여중 3학년 때인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은 장미란은 곧 국내무대를 평정한 뒤 2002년 부산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직 주니어 시절로 기량이 무르익기 전이어서 합계 272.5㎏로 당시 일인자였던 중국의 탕공홍(287.5㎏)에 이은 은메달을 따내며 가능성을 확인한 데에 만족해야 했다.
2년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합계 302.5㎏로 탕공홍(305㎏)에 밀려 은메달을 땄던 장미란은 2005년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30㎏와 용상 172.5㎏, 합계 302.5㎏을 들어올리며 한국 여자역도 선수로 처음 세계 정상에 오른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장미란에게 약속된 무대 같았다.
그해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대회에서 318㎏으로 한국 역도 사상 첫 세계신기록을 썼고 10월 도미니카공화국 세계선수권대회는 314㎏으로 역시 한국 선수로 처음 세계선수권을 2연패한 선수로 기록되며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그 해 12월 카타르 도하에 입상했지만 결과는 중국 무솽솽(합계 317㎏)에 4㎏이 모자란 은메달이었다.
다시 한번 중국에 막혀 아시아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장미란은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구슬땀을 흘렸고, 정상의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 무대를 평정해 나갔다.
2007년 태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합계 319㎏으로 세계신기록을 쓰며 대회 3연패를 기록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인상 140㎏, 용상 186㎏, 합계 326㎏으로 3개 부문 모두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도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09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또다시 용상 세계신기록(187㎏)에 합계 323㎏으로 세계선수권 4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장미란 전성시대'를 열어제친다.
이제 그에게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은 유일하게 시상대 맨 위에 오르지 못한 아시안게임.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또 한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장미란은 올해 1월 교통사고로 동계훈련을 거른 데 이어 허리까지 다치고도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17㎏이나 떨어지는 기록 309㎏으로 동메달에 머물렀고 중국의 신예 멍수핑이 310㎏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도 입상에 성공했지만 그동안 이룬 눈부신 성과에 비해서는 뒷걸음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때에 이런 `실패'는 쓰디 썼다.
세계선수권대회 후 재활치료와 훈련을 병행하며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지만 정상일 때의 80~90% 상태였던 장미란은 광저우에 입성해서도 경기 당일 아침까지 허리 통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인상 1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10㎏ 낮은 130㎏을 간신히 들어올렸지만 시간을 채우지 못해 실패하며 힘든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2차 시기에서는 130㎏에 성공한 그는 3차 시기에서 134㎏를 드는 데에 실패했다. 인상 130㎏은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기록이다.
하지만 용상에서는 1차 시기에 175㎏을 들어올리며 멍수핑을 압도하더니 2차시기에 181㎏를 성공시키며 용상 2차시기까지 합계 311㎏을 들어올린 멍수핑과 같은 무게를 만들었다.
멍수핑이 마지막 3차 시기에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82㎏에 실패하면서 체중이 적은 장미란이 우승을 확정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 자신의 세계기록보다 1㎏ 무거운 용상 188㎏에 도전하는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바벨을 떨어뜨린 뒤에야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역도 여왕' 장미란이 3수만에 드디어 아시안게임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장미란은 19일 중국 둥관시 둥관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75㎏ 이상급 경기에 출전해 인상 130㎏, 용상 181㎏, 합계 311㎏에 성공하며 우승, 앞서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로 발길을 돌렸던 아쉬움을 모두 떨쳐냈다.
이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연속 우승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낸 장미란은 마지막 남은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일찌감치 국내 무대를 휩쓴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4연패의 위업을 이루며 여자 역도의 최정상을 지켜왔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없었다.
상지여중 3학년 때인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은 장미란은 곧 국내무대를 평정한 뒤 2002년 부산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직 주니어 시절로 기량이 무르익기 전이어서 합계 272.5㎏로 당시 일인자였던 중국의 탕공홍(287.5㎏)에 이은 은메달을 따내며 가능성을 확인한 데에 만족해야 했다.
2년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합계 302.5㎏로 탕공홍(305㎏)에 밀려 은메달을 땄던 장미란은 2005년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30㎏와 용상 172.5㎏, 합계 302.5㎏을 들어올리며 한국 여자역도 선수로 처음 세계 정상에 오른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장미란에게 약속된 무대 같았다.
그해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대회에서 318㎏으로 한국 역도 사상 첫 세계신기록을 썼고 10월 도미니카공화국 세계선수권대회는 314㎏으로 역시 한국 선수로 처음 세계선수권을 2연패한 선수로 기록되며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그 해 12월 카타르 도하에 입상했지만 결과는 중국 무솽솽(합계 317㎏)에 4㎏이 모자란 은메달이었다.
다시 한번 중국에 막혀 아시아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장미란은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구슬땀을 흘렸고, 정상의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 무대를 평정해 나갔다.
2007년 태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합계 319㎏으로 세계신기록을 쓰며 대회 3연패를 기록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인상 140㎏, 용상 186㎏, 합계 326㎏으로 3개 부문 모두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도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09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또다시 용상 세계신기록(187㎏)에 합계 323㎏으로 세계선수권 4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장미란 전성시대'를 열어제친다.
이제 그에게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은 유일하게 시상대 맨 위에 오르지 못한 아시안게임.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또 한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장미란은 올해 1월 교통사고로 동계훈련을 거른 데 이어 허리까지 다치고도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17㎏이나 떨어지는 기록 309㎏으로 동메달에 머물렀고 중국의 신예 멍수핑이 310㎏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도 입상에 성공했지만 그동안 이룬 눈부신 성과에 비해서는 뒷걸음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때에 이런 `실패'는 쓰디 썼다.
세계선수권대회 후 재활치료와 훈련을 병행하며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지만 정상일 때의 80~90% 상태였던 장미란은 광저우에 입성해서도 경기 당일 아침까지 허리 통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인상 1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10㎏ 낮은 130㎏을 간신히 들어올렸지만 시간을 채우지 못해 실패하며 힘든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2차 시기에서는 130㎏에 성공한 그는 3차 시기에서 134㎏를 드는 데에 실패했다. 인상 130㎏은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기록이다.
하지만 용상에서는 1차 시기에 175㎏을 들어올리며 멍수핑을 압도하더니 2차시기에 181㎏를 성공시키며 용상 2차시기까지 합계 311㎏을 들어올린 멍수핑과 같은 무게를 만들었다.
멍수핑이 마지막 3차 시기에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82㎏에 실패하면서 체중이 적은 장미란이 우승을 확정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 자신의 세계기록보다 1㎏ 무거운 용상 188㎏에 도전하는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바벨을 떨어뜨린 뒤에야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그랜드슬램 쾌거’ 장미란 전성시대!
-
- 입력 2010-11-19 19:45:33
- 수정2010-11-19 20:53:24
2002년 부산, 2006년 카타르 도하, 그리고 2010년 중국 광저우.
`역도 여왕' 장미란이 3수만에 드디어 아시안게임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장미란은 19일 중국 둥관시 둥관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75㎏ 이상급 경기에 출전해 인상 130㎏, 용상 181㎏, 합계 311㎏에 성공하며 우승, 앞서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로 발길을 돌렸던 아쉬움을 모두 떨쳐냈다.
이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연속 우승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낸 장미란은 마지막 남은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일찌감치 국내 무대를 휩쓴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4연패의 위업을 이루며 여자 역도의 최정상을 지켜왔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없었다.
상지여중 3학년 때인 1998년 10월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지도자의 권유로 바벨을 처음 잡은 장미란은 곧 국내무대를 평정한 뒤 2002년 부산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직 주니어 시절로 기량이 무르익기 전이어서 합계 272.5㎏로 당시 일인자였던 중국의 탕공홍(287.5㎏)에 이은 은메달을 따내며 가능성을 확인한 데에 만족해야 했다.
2년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합계 302.5㎏로 탕공홍(305㎏)에 밀려 은메달을 땄던 장미란은 2005년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30㎏와 용상 172.5㎏, 합계 302.5㎏을 들어올리며 한국 여자역도 선수로 처음 세계 정상에 오른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장미란에게 약속된 무대 같았다.
그해 5월 원주에서 열린 한중일 대회에서 318㎏으로 한국 역도 사상 첫 세계신기록을 썼고 10월 도미니카공화국 세계선수권대회는 314㎏으로 역시 한국 선수로 처음 세계선수권을 2연패한 선수로 기록되며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그 해 12월 카타르 도하에 입상했지만 결과는 중국 무솽솽(합계 317㎏)에 4㎏이 모자란 은메달이었다.
다시 한번 중국에 막혀 아시아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장미란은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구슬땀을 흘렸고, 정상의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 무대를 평정해 나갔다.
2007년 태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합계 319㎏으로 세계신기록을 쓰며 대회 3연패를 기록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인상 140㎏, 용상 186㎏, 합계 326㎏으로 3개 부문 모두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도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09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또다시 용상 세계신기록(187㎏)에 합계 323㎏으로 세계선수권 4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장미란 전성시대'를 열어제친다.
이제 그에게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은 유일하게 시상대 맨 위에 오르지 못한 아시안게임.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또 한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장미란은 올해 1월 교통사고로 동계훈련을 거른 데 이어 허리까지 다치고도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하지만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17㎏이나 떨어지는 기록 309㎏으로 동메달에 머물렀고 중국의 신예 멍수핑이 310㎏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도 입상에 성공했지만 그동안 이룬 눈부신 성과에 비해서는 뒷걸음질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때에 이런 `실패'는 쓰디 썼다.
세계선수권대회 후 재활치료와 훈련을 병행하며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지만 정상일 때의 80~90% 상태였던 장미란은 광저우에 입성해서도 경기 당일 아침까지 허리 통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인상 1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10㎏ 낮은 130㎏을 간신히 들어올렸지만 시간을 채우지 못해 실패하며 힘든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2차 시기에서는 130㎏에 성공한 그는 3차 시기에서 134㎏를 드는 데에 실패했다. 인상 130㎏은 지난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 기록이다.
하지만 용상에서는 1차 시기에 175㎏을 들어올리며 멍수핑을 압도하더니 2차시기에 181㎏를 성공시키며 용상 2차시기까지 합계 311㎏을 들어올린 멍수핑과 같은 무게를 만들었다.
멍수핑이 마지막 3차 시기에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82㎏에 실패하면서 체중이 적은 장미란이 우승을 확정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 자신의 세계기록보다 1㎏ 무거운 용상 188㎏에 도전하는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인 장미란은 바벨을 떨어뜨린 뒤에야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