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정지현, 그저 묵묵부답

입력 2010.11.21 (20:31) 수정 2010.11.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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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아쉬운 은메달에 그친 한국 레슬링의 간판스타 정지현(27.삼성생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급 결승이 열린 21일 저녁 광저우 화궁체육관.

경기를 마친 정지현은 얼굴을 감싸쥐고 그대로 매트 위에 드러누워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준결승까지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벌이던 정지현은 결승에서도 오미드 노루지(이란)에게 먼저 첫 라운드를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후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면서 역전패, 끝내 꿈꾸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이날 결승에서 맞붙은 노루지는 지난 9월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만나 정지현이 한 차례 승리를 거뒀던 상대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초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한 정지현은 경기를 마치고 치러진 시상식에서도 미처 분을 다 삭이지 못했다.

정지현은 이란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에도 게양대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정지현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레슬링 최고의 선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각오는 남달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면서 이미 한국 레슬링을 대표할 '제2의 심권호'로 주목받았던 정지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면서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나이에 정상에 오른 것이 굳었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면서 긴 슬럼프가 시작됐다.

조금씩 관리가 소홀해지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체중이 불어났고, 이듬해부터 66㎏급으로 체급을 올려 국제무대에 나섰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2006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2년 사이에 두 체급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는 일이 더 잦아졌다.

결국 2006년 대표선발전에서는 66㎏급에 도전했다 탈락, 아시안게임 무대를 아예 밟지조차 못했다.

절치부심한 정지현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원래 종목으로 돌아가기로 결심, 10㎏ 이상을 감량하고 경기에 나서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본선에서 잠시 방심한 틈에 역습을 허용, 8강에서 무너지면서 2연패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이듬해에는 허리 부상까지 겹치면서 다시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긴 내리막을 걷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정지현은 다시 투지를 불태웠다.

6년 동안 거듭 시련만 겪은 정지현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은 것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었다.

2003년부터 만나 온 한 살 연상의 아내와 지난해 6월 화촉을 밝힌 정지현은 태릉선수촌 인근에 신방을 차리고 '부활하겠다'는 일념으로 호된 훈련을 견뎠다.

나이는 어느새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을 쌓으면서 정지현은 올해 5차례 대표 선발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여 1년6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표팀 관계자들은 "금메달 후보 0순위"라며 정지현의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지현은 고대하던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막판 발목을 잡혀 결국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정지현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도 거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은메달을 손에 든 채 무거운 걸음으로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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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 숙인 정지현, 그저 묵묵부답
    • 입력 2010-11-21 20:31:43
    • 수정2010-11-21 20:38:24
    연합뉴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아쉬운 은메달에 그친 한국 레슬링의 간판스타 정지현(27.삼성생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급 결승이 열린 21일 저녁 광저우 화궁체육관. 경기를 마친 정지현은 얼굴을 감싸쥐고 그대로 매트 위에 드러누워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준결승까지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벌이던 정지현은 결승에서도 오미드 노루지(이란)에게 먼저 첫 라운드를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후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면서 역전패, 끝내 꿈꾸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이날 결승에서 맞붙은 노루지는 지난 9월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만나 정지현이 한 차례 승리를 거뒀던 상대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초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한 정지현은 경기를 마치고 치러진 시상식에서도 미처 분을 다 삭이지 못했다. 정지현은 이란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에도 게양대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정지현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레슬링 최고의 선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각오는 남달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면서 이미 한국 레슬링을 대표할 '제2의 심권호'로 주목받았던 정지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면서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나이에 정상에 오른 것이 굳었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면서 긴 슬럼프가 시작됐다. 조금씩 관리가 소홀해지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체중이 불어났고, 이듬해부터 66㎏급으로 체급을 올려 국제무대에 나섰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2006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2년 사이에 두 체급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는 일이 더 잦아졌다. 결국 2006년 대표선발전에서는 66㎏급에 도전했다 탈락, 아시안게임 무대를 아예 밟지조차 못했다. 절치부심한 정지현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원래 종목으로 돌아가기로 결심, 10㎏ 이상을 감량하고 경기에 나서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본선에서 잠시 방심한 틈에 역습을 허용, 8강에서 무너지면서 2연패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이듬해에는 허리 부상까지 겹치면서 다시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긴 내리막을 걷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정지현은 다시 투지를 불태웠다. 6년 동안 거듭 시련만 겪은 정지현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은 것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었다. 2003년부터 만나 온 한 살 연상의 아내와 지난해 6월 화촉을 밝힌 정지현은 태릉선수촌 인근에 신방을 차리고 '부활하겠다'는 일념으로 호된 훈련을 견뎠다. 나이는 어느새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을 쌓으면서 정지현은 올해 5차례 대표 선발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여 1년6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표팀 관계자들은 "금메달 후보 0순위"라며 정지현의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정지현은 고대하던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막판 발목을 잡혀 결국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정지현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도 거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은메달을 손에 든 채 무거운 걸음으로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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