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말년 휴가 앞두고”…“입대 3개월 만에”

입력 2010.11.25 (09:10) 수정 2010.11.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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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예고 없는 북한의 포격 도발은 갓 스무 살, 그리고 스물 두살 꽃다운 해병대원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온 국민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두 장병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슬픔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민우 기자, 사망 당시 이들이 곧 제대를 앞둔 병장, 그리고 갓 입대한 이병이었죠?



<리포트>



故 서정우 하사 제대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휴가를 나가려고 여객선에 타려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날아오는 포탄을 보고 부대로 자진복귀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고 문광욱 일병.



입대한지 3개월 된 이등병이었습니다.



이등병답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전투 준비하다 포탄을 맞았습니다.



군 면제 받으려고 생이빨까지 뽑아대는 요즘 포화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참 잘 생기고 듬직한 우리 아들들. 고맙습니다. 편히 쉬십시요.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잘 생긴 청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친구들과의 즐거운 한 때를 기념합니다.



하지만 청년은 이제 이 행복했던 시간 안에 멈춰있습니다.



故 서정우 병장.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하루 20만 명의 네티즌들이 서 병장의 홈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한장한장 사진 다 봤어요. 기억할게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편히 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마음이 아려오네요. 고마운 당신, 서정우 병장님!”



갑작스레 이 소식을 접한 서 병장의 친구. 받지 못했던 전화 한 통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정말 후회되는 게 지난 주말에 너한테 전화 왔는데. 근데. 단지 잠자고 있어서 너 전화를 안 받은 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 든다. 이게 뭐냐. 너 말년이라고 자랑했는데...“



제대까지는 이제 고작 한 달.



하지만 말년 휴가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배가 뜨길 간절히 기도하며 설레어 했습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휴가날, 연평도는 불바다가 됐습니다.



서 병장은 선착장에서 여객선에 탑승하던 순간 포탄을 목격하고 부대로 뛰어가던 중 포탄 파편에 맞아 변을 당했습니다.



제대를 하면 어려운 가정 형편을 먼저 생각해 공무원이 되겠다던 효자 법학도였습니다.



<인터뷰> 김형남(교수/단국대 법학과) : "부모님의 형편을 생각해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보다는 졸업(제대)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꾸준히 준비해서 졸업 후에 공무원 되는 것이 소원이다, 희망이다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짧았던 1년의 대학 생활. 이제 그가 돌아올 자리에는 학우들이 놓고 간 국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인터뷰> 이은주(故 서정우 병장 친구) : "너무 미안해서 계속 어제는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고 문광욱 이병.



대한민국 해병이 된지 이제 겨우 3개월입니다.



<인터뷰> 오상월(故 문광욱 이병 유가족) : "큰아버지랑 얼마나 말렸는데 3개월 반 만에 전사했어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에 지원했던 문 이병, 하지만 걱정과 달리 늠름한 해병이 된 아들이 부모님은 자랑스러웠습니다.



“8소대 3 생활관 문광욱 우리 아들 든든하고 멋지다. 멋진 해병이 되기까지 파이팅.”



“푸른 제복에 빨간 명찰 멋지게 폼 나는구나. 앞으로 해병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면서 건강하게 군복무 무사히 마치길 아빠는 기도할게. 장하다 우리아들 수고했다 우리아들”



아들을 위해 매순간 기도했던 아버지.



영정 속 사진으로 마주한 아들의 모습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 문영조(고 문광욱 이병 아버지) : "믿어지질 않고요. 불쌍한 놈 어떻게 보낼지..."



사망 3일전 친구에게 남긴 우정의 글은 보는 이를 더 안타깝게 했는데요.



“한솔아, 군대 오지 마. 한반도의 평화는 내가 지킨다.”



이등병의 힘든 군 생활,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비록 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 오지 말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조국의 최전방에서 5000만 국민의 믿음을 받는 연평도 해병대로서 한반도의 평화는 내가 지키겠다.”



<인터뷰> 강승모(故 문광욱 이병 친구) : "광욱이 아버님께서 해병대 출신이라서 광욱이가 남자라면 꼭 해병대를 가야하지 않느냐 하면서 자원입대를 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이유가 저희는 너무 자랑스러웠고 그랬어요."



전기 기사인 아버지를 돕겠다며 대학 전공도 전기과를 택했던 문 이병.



학교에서도 듬직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명석(교수/군장대학 신재생에너지계열) : "너무 착한 학생이어서 그리고 수업시간에도 아침에 30분 일찍 와서 수업준비를 했어요. 항상 제방에 와서 먼저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던 아주 성실한 학생입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도 눈에 너무 선하거든요. 그렇습니다."



故 서정우 병장, 문광욱 이병. 대한민국의 두 아들이 살던 동네에는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내 아들을 잃은 것 같은 비통함에 이웃들은 가슴이 먹먹합니다.



<인터뷰> 이은익(故 문광욱 이병 이웃) : "너무 놀랐어요. 너무 가슴 아프고 남의 자식 같지 않고 내 자식 같은데 이런 일을 당해서 너무 가슴 아파요."



<인터뷰> 조재관(故 서정우 병장 이웃) : "갑자기 뉴스를 보고 특히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들이 갑작스럽게 사망 한 건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당황스럽고 안쓰럽죠."



하늘나라에서 휴가를 맞게된 고 서정우 병장, 아직도 군기가 바짝 살아있을 것 만 같은 입대 3개월의 고 문광욱 이병.



죽는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믿음직한 해병이었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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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말년 휴가 앞두고”…“입대 3개월 만에”
    • 입력 2010-11-25 09:10:59
    • 수정2010-11-25 09: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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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예고 없는 북한의 포격 도발은 갓 스무 살, 그리고 스물 두살 꽃다운 해병대원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온 국민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두 장병의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슬픔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민우 기자, 사망 당시 이들이 곧 제대를 앞둔 병장, 그리고 갓 입대한 이병이었죠?

<리포트>

故 서정우 하사 제대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휴가를 나가려고 여객선에 타려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날아오는 포탄을 보고 부대로 자진복귀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고 문광욱 일병.

입대한지 3개월 된 이등병이었습니다.

이등병답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전투 준비하다 포탄을 맞았습니다.

군 면제 받으려고 생이빨까지 뽑아대는 요즘 포화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참 잘 생기고 듬직한 우리 아들들. 고맙습니다. 편히 쉬십시요.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잘 생긴 청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친구들과의 즐거운 한 때를 기념합니다.

하지만 청년은 이제 이 행복했던 시간 안에 멈춰있습니다.

故 서정우 병장.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하루 20만 명의 네티즌들이 서 병장의 홈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한장한장 사진 다 봤어요. 기억할게요.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편히 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마음이 아려오네요. 고마운 당신, 서정우 병장님!”

갑작스레 이 소식을 접한 서 병장의 친구. 받지 못했던 전화 한 통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정말 후회되는 게 지난 주말에 너한테 전화 왔는데. 근데. 단지 잠자고 있어서 너 전화를 안 받은 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 든다. 이게 뭐냐. 너 말년이라고 자랑했는데...“

제대까지는 이제 고작 한 달.

하지만 말년 휴가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배가 뜨길 간절히 기도하며 설레어 했습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휴가날, 연평도는 불바다가 됐습니다.

서 병장은 선착장에서 여객선에 탑승하던 순간 포탄을 목격하고 부대로 뛰어가던 중 포탄 파편에 맞아 변을 당했습니다.

제대를 하면 어려운 가정 형편을 먼저 생각해 공무원이 되겠다던 효자 법학도였습니다.

<인터뷰> 김형남(교수/단국대 법학과) : "부모님의 형편을 생각해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보다는 졸업(제대)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꾸준히 준비해서 졸업 후에 공무원 되는 것이 소원이다, 희망이다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짧았던 1년의 대학 생활. 이제 그가 돌아올 자리에는 학우들이 놓고 간 국화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인터뷰> 이은주(故 서정우 병장 친구) : "너무 미안해서 계속 어제는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고 문광욱 이병.

대한민국 해병이 된지 이제 겨우 3개월입니다.

<인터뷰> 오상월(故 문광욱 이병 유가족) : "큰아버지랑 얼마나 말렸는데 3개월 반 만에 전사했어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에 지원했던 문 이병, 하지만 걱정과 달리 늠름한 해병이 된 아들이 부모님은 자랑스러웠습니다.

“8소대 3 생활관 문광욱 우리 아들 든든하고 멋지다. 멋진 해병이 되기까지 파이팅.”

“푸른 제복에 빨간 명찰 멋지게 폼 나는구나. 앞으로 해병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면서 건강하게 군복무 무사히 마치길 아빠는 기도할게. 장하다 우리아들 수고했다 우리아들”

아들을 위해 매순간 기도했던 아버지.

영정 속 사진으로 마주한 아들의 모습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 문영조(고 문광욱 이병 아버지) : "믿어지질 않고요. 불쌍한 놈 어떻게 보낼지..."

사망 3일전 친구에게 남긴 우정의 글은 보는 이를 더 안타깝게 했는데요.

“한솔아, 군대 오지 마. 한반도의 평화는 내가 지킨다.”

이등병의 힘든 군 생활,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비록 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 오지 말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조국의 최전방에서 5000만 국민의 믿음을 받는 연평도 해병대로서 한반도의 평화는 내가 지키겠다.”

<인터뷰> 강승모(故 문광욱 이병 친구) : "광욱이 아버님께서 해병대 출신이라서 광욱이가 남자라면 꼭 해병대를 가야하지 않느냐 하면서 자원입대를 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이유가 저희는 너무 자랑스러웠고 그랬어요."

전기 기사인 아버지를 돕겠다며 대학 전공도 전기과를 택했던 문 이병.

학교에서도 듬직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명석(교수/군장대학 신재생에너지계열) : "너무 착한 학생이어서 그리고 수업시간에도 아침에 30분 일찍 와서 수업준비를 했어요. 항상 제방에 와서 먼저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던 아주 성실한 학생입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도 눈에 너무 선하거든요. 그렇습니다."

故 서정우 병장, 문광욱 이병. 대한민국의 두 아들이 살던 동네에는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내 아들을 잃은 것 같은 비통함에 이웃들은 가슴이 먹먹합니다.

<인터뷰> 이은익(故 문광욱 이병 이웃) : "너무 놀랐어요. 너무 가슴 아프고 남의 자식 같지 않고 내 자식 같은데 이런 일을 당해서 너무 가슴 아파요."

<인터뷰> 조재관(故 서정우 병장 이웃) : "갑자기 뉴스를 보고 특히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들이 갑작스럽게 사망 한 건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당황스럽고 안쓰럽죠."

하늘나라에서 휴가를 맞게된 고 서정우 병장, 아직도 군기가 바짝 살아있을 것 만 같은 입대 3개월의 고 문광욱 이병.

죽는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믿음직한 해병이었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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