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국회, 언론은 뭐했나?

입력 2010.12.18 (12:17) 수정 2011.01.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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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새해 예산안이 격렬한 몸싸움 끝에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특히 서민 복지예산이 깎이고, 실세 의원 지역구 예산이 늘어났느냐를 놓고서 여야 간의 논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언론도 많은 양의 기사를 쏟아냈는데요.

과연 이 사안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요?

유광석 기자와 함께 점검해 보겠습니다.

<질문>

유 기자!

올해도 여야 간의 거센 충돌 속에 예산안이 통과됐는데요.

언론 보도를 보면 싸우는 장면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아요?

<답변>

그렇습니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펼쳐진 여당과 야당의 몸싸움을 중계하는 화면과 기사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예산안의 세부내용과 충돌 원인 등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8일 2011년도 예산안과 친수구역활용특별법, 아랍에미리트연합 파견 동의안 등 쟁점 법안들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습니다.

당일 저녁 방송 3사는 관련 내용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녹취> "야야. 조용히 해. 놔 끌어내"

<녹취> "야, 이 야만적인 것들아 손대지마 조용히 해. 할 만큼 했어."

<녹취> "날치기! 날치기!"

의원들의 격한 말들이 그대로 방송에 나왔고, 몸싸움 과정은 설명을 통해 강조됐습니다.

<녹취> "야당 의원들이 하나 둘 단상 아래로 끌려 내려옵니다. 여성 의원들 간 충돌도 그 어느 때보다 거칠었습니다.”

<녹취> "본회의장 밖에서 벌어진 충돌상황. 출입구가 모두 막힌 채 여야 당직자와 보좌관 수백 명이 뒤엉켰습니다.”

<녹취>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충돌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립니다.”

다음날 신문 보도 역시 충돌 상황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물리적 충돌이 어떻게 벌어졌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때렸는지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김 의원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민주당 보좌진의 제지에 가로막혔으나 이들과 주먹다짐까지 한 끝에 저지선을 뚫고 동료 의원들과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김.강 두 의원은 모두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피도 흘렸다.”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은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게 발길질을 했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에게는 "쇼 좀 그만하라" 며 끌어내렸다."

여야 의원들의 충돌 과정을 시간대 별로 그래픽과 함께 상세히 전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여야의 잘못을 같이 꼬집는 양비론을 폈습니다.

"심야엔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한나라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자리 잡아 여야의 본회의장 동시 점거 사태까지 벌어졌다."

"4대강 예산 졸속 처리 저지를 내세워 막무가내로 국회의 발목을 잡은 야당도 문제지만 여당의 강행 처리에도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이렇게 기사가 폭력행위에 집중되다 보니 예산안의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여야가 왜 충돌했는지, 합의 처리 가능성은 없었는지, 또 통과된 예산 중에 문제가 있는 내용은 없었는지 등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방송3사는 예산안이 통과된 지난 8일부터 어제까지 모두 52건의 예산안 관련 보도를 했지만, 예산안의 세부 내용과 쟁점을 살피는 기사는 KBS의 국방예산 보도와 MBC와 SBS의 서민예산 보도 등 9건이 전부였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국회의원들의 주먹 다툼이라든가 상호비방, 의장석 점거를 위한 과격한 행위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보도 일색이 아니었나... 이런 것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에 대한 이런 보도가 필연적으로 시청자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 정치혐오감을 증대시켜 민주사회에 대한 민주적 절차에 대한 회의감들, 이런 것들을 낳게 하는 것 아닌가.."

<질문>

예산안이 처리된 뒤에는 당초 여야 합의안보다 삭감된 예산을 두고 논란이 거센데요.

언론은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까?

<답변>

당초 여야가 증액하기로 합의했던 서민 복지 예산이 빠지거나 대거 삭감된 점.

그리고 한나라당의 공약 예산이 강행 처리 와중에 누락된 점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언론에서 자체적으로 발굴했다기보다는 여야의 공방을 그대로 옮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각 신문과 방송은 한나라당이 불교계에 약속했던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고 전한 뒤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라며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불교계의 항의가 계기가 됐습니다.

조계종은 기사가 나오기 하루 전인 9일 정부 여당이 템플스테이 예산을 삭감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진상조사 후 관련자를 문책할 것이라고 말하자 언론들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서민 복지예산에 대한 보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언론이 민생 예산의 삭감이나 누락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새해 예산안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지난 10일 진보신당은 정책 브리핑 자료로, 민주당은 전현희 의원이 국회복지위원회 증액안 중 전액 삭감된 복지 예산만 80개라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제야 언론은 다음날 민생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예산안 처리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생 예산의 문제점을 자체적으로 지적한 것은 경향신문의 9일자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비 관련 기사가 유일했습니다.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지원비 338억 원과 장애인 연금사업비 312억 원, 기초노령연금 수급 확대예산 611억 원 등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기사화됐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 "뉴스를 누군가 만들어주면 움직이는 그런 수동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예산안 통과 뒤의 수많은 이야기들 정부와 여당이 내놨던 공약 예산마저 빠뜨린 이런 것들도 직접 취재하지 못하고 전언으로 취재를 시작했다는 것, 언론의 수동성, 비심층성,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들고.."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쟁점 법안을 점검하는 데도 언론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예산안이 처리된 날 본회의에서는 친수구역활용특별법과 서울대법인화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 등 법률 8건과 아랍에미리트연합 파견 동의안 등 모두 10건의 쟁점 법안이 함께 통과됐습니다.

이들 쟁점안의 내용에 대한 보도는 조선과 중앙, 한겨레가 각 1건에 불과했고, 방송3사는 법안이름 3~4개를 나열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아쉬운 것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된 법들이 몇 개가 있는데, 이러한 법들 같은 경우 언론들이 얼마든지 문제점, 혹은 거기에 대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보도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질문>

언론의 탐사보도, 심층보도가 실종되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사전에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사는 충분했습니까?

<답변>

기사량에 비해 기사의 내용은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예산안 처리 이후 보도도 소극적이었지만 사전 검증보도 역시 소홀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지난 10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2011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이른바 예산 국회가 본격 시작됐습니다.

이후 예산안이 처리되기 전날인 지난 7일까지의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방송3사와 5개 일간지의 예산안 관련 기사는 모두 115건.

이 가운데 예산안 심의과정을 다룬 기사는 58.3%, 예산안의 내용을 다룬 기사는 37.4%, 심의과정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는 4.3%였습니다.

그런데 예산안 심의과정을 다룬 기사의 대부분은 예산결산위원회의 파행과 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격돌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날의 몸싸움과 이후 정쟁 보도에 집중한 보도행태와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 쓰일 곳을 사전에 면밀하게 분석하고 국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각 정당의 입장들 또는 입장들 간의 충돌 속에서 발생하는 주변부의 문제들을 자꾸 언론의 중심에 놓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원래 문제보다 다른 주변 문제 갖고 판단하게 된다는 거죠."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방통위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지원예산과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예산,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지원예산 등 각 분야 예산심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다른 언론사보다 많이 내보냈습니다.

<질문>

국회의 정쟁 못지 않게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 역시 몇 년째 되풀이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변>

국회에서 예산안이 몸싸움 끝에 통과한 게 올해로 세 번째입니다.

언론은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언론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부자 감세안 논쟁으로 여야가 대치했습니다.

2009년엔 4대강 사업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때마다 언론은 국회의 몸싸움에 집중했고, 2010년 올해도 같은 보도가 반복됐습니다.

정작 언론은 국회를 비판하지만 언론 역시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언론도 달라져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소위 말하는 전문가란 분들도 매년 똑같은 이야길 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작년에 썼던 테이프 올해 써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방향성을 틀기 위해서는 언론이 보다 굉장히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그리고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닌가...지금의 현상만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회 예산안을 둘러싼 충돌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는 건 국회 예산안 심의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언론 보도는 그 시스템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예산안을 다루는 국회의원들의 자질과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예산 안 심사가 그 다음해 가 살림살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등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국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올해도 여전히 싸우는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런 탄식 속엔 국민이 낸 세금을 제 때, 제 곳에, 제대로 쓰여지도록 국회가 예산을 짜는지 언론이 충실히 감시하지 못한 책임도 큽니다.

유광석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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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1-01-12 17: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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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민주당 보좌진의 제지에 가로막혔으나 이들과 주먹다짐까지 한 끝에 저지선을 뚫고 동료 의원들과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김.강 두 의원은 모두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피도 흘렸다.”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은 민주당 최영희 의원에게 발길질을 했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에게는 "쇼 좀 그만하라" 며 끌어내렸다." 여야 의원들의 충돌 과정을 시간대 별로 그래픽과 함께 상세히 전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여야의 잘못을 같이 꼬집는 양비론을 폈습니다. "심야엔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한나라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자리 잡아 여야의 본회의장 동시 점거 사태까지 벌어졌다." "4대강 예산 졸속 처리 저지를 내세워 막무가내로 국회의 발목을 잡은 야당도 문제지만 여당의 강행 처리에도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이렇게 기사가 폭력행위에 집중되다 보니 예산안의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여야가 왜 충돌했는지, 합의 처리 가능성은 없었는지, 또 통과된 예산 중에 문제가 있는 내용은 없었는지 등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홀했습니다. 방송3사는 예산안이 통과된 지난 8일부터 어제까지 모두 52건의 예산안 관련 보도를 했지만, 예산안의 세부 내용과 쟁점을 살피는 기사는 KBS의 국방예산 보도와 MBC와 SBS의 서민예산 보도 등 9건이 전부였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국회의원들의 주먹 다툼이라든가 상호비방, 의장석 점거를 위한 과격한 행위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보도 일색이 아니었나... 이런 것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권에 대한 이런 보도가 필연적으로 시청자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 정치혐오감을 증대시켜 민주사회에 대한 민주적 절차에 대한 회의감들, 이런 것들을 낳게 하는 것 아닌가.." <질문> 예산안이 처리된 뒤에는 당초 여야 합의안보다 삭감된 예산을 두고 논란이 거센데요. 언론은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까? <답변> 당초 여야가 증액하기로 합의했던 서민 복지 예산이 빠지거나 대거 삭감된 점. 그리고 한나라당의 공약 예산이 강행 처리 와중에 누락된 점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언론에서 자체적으로 발굴했다기보다는 여야의 공방을 그대로 옮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각 신문과 방송은 한나라당이 불교계에 약속했던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고 전한 뒤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라며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불교계의 항의가 계기가 됐습니다. 조계종은 기사가 나오기 하루 전인 9일 정부 여당이 템플스테이 예산을 삭감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진상조사 후 관련자를 문책할 것이라고 말하자 언론들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서민 복지예산에 대한 보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언론이 민생 예산의 삭감이나 누락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새해 예산안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지난 10일 진보신당은 정책 브리핑 자료로, 민주당은 전현희 의원이 국회복지위원회 증액안 중 전액 삭감된 복지 예산만 80개라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제야 언론은 다음날 민생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예산안 처리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생 예산의 문제점을 자체적으로 지적한 것은 경향신문의 9일자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비 관련 기사가 유일했습니다.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지원비 338억 원과 장애인 연금사업비 312억 원, 기초노령연금 수급 확대예산 611억 원 등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기사화됐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 "뉴스를 누군가 만들어주면 움직이는 그런 수동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예산안 통과 뒤의 수많은 이야기들 정부와 여당이 내놨던 공약 예산마저 빠뜨린 이런 것들도 직접 취재하지 못하고 전언으로 취재를 시작했다는 것, 언론의 수동성, 비심층성,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들고.."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쟁점 법안을 점검하는 데도 언론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예산안이 처리된 날 본회의에서는 친수구역활용특별법과 서울대법인화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 등 법률 8건과 아랍에미리트연합 파견 동의안 등 모두 10건의 쟁점 법안이 함께 통과됐습니다. 이들 쟁점안의 내용에 대한 보도는 조선과 중앙, 한겨레가 각 1건에 불과했고, 방송3사는 법안이름 3~4개를 나열하는 데 그쳤습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아쉬운 것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된 법들이 몇 개가 있는데, 이러한 법들 같은 경우 언론들이 얼마든지 문제점, 혹은 거기에 대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보도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 <질문> 언론의 탐사보도, 심층보도가 실종되었다는 건데, 그렇다면 사전에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사는 충분했습니까? <답변> 기사량에 비해 기사의 내용은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예산안 처리 이후 보도도 소극적이었지만 사전 검증보도 역시 소홀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지난 10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2011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정부의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이른바 예산 국회가 본격 시작됐습니다. 이후 예산안이 처리되기 전날인 지난 7일까지의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방송3사와 5개 일간지의 예산안 관련 기사는 모두 115건. 이 가운데 예산안 심의과정을 다룬 기사는 58.3%, 예산안의 내용을 다룬 기사는 37.4%, 심의과정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는 4.3%였습니다. 그런데 예산안 심의과정을 다룬 기사의 대부분은 예산결산위원회의 파행과 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격돌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날의 몸싸움과 이후 정쟁 보도에 집중한 보도행태와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이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 쓰일 곳을 사전에 면밀하게 분석하고 국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각 정당의 입장들 또는 입장들 간의 충돌 속에서 발생하는 주변부의 문제들을 자꾸 언론의 중심에 놓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원래 문제보다 다른 주변 문제 갖고 판단하게 된다는 거죠."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방통위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지원예산과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예산,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지원예산 등 각 분야 예산심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다른 언론사보다 많이 내보냈습니다. <질문> 국회의 정쟁 못지 않게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 역시 몇 년째 되풀이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변> 국회에서 예산안이 몸싸움 끝에 통과한 게 올해로 세 번째입니다. 언론은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언론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부자 감세안 논쟁으로 여야가 대치했습니다. 2009년엔 4대강 사업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때마다 언론은 국회의 몸싸움에 집중했고, 2010년 올해도 같은 보도가 반복됐습니다. 정작 언론은 국회를 비판하지만 언론 역시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언론도 달라져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소위 말하는 전문가란 분들도 매년 똑같은 이야길 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작년에 썼던 테이프 올해 써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방향성을 틀기 위해서는 언론이 보다 굉장히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그리고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닌가...지금의 현상만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회 예산안을 둘러싼 충돌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는 건 국회 예산안 심의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언론 보도는 그 시스템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예산안을 다루는 국회의원들의 자질과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예산 안 심사가 그 다음해 가 살림살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등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국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올해도 여전히 싸우는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런 탄식 속엔 국민이 낸 세금을 제 때, 제 곳에, 제대로 쓰여지도록 국회가 예산을 짜는지 언론이 충실히 감시하지 못한 책임도 큽니다. 유광석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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